와인의 역사 - 기원과 발전

by 임태홍

2025년 9월 25일 저녁, <세계사를 바꾼 술> 5주 차 강의가 예산군립도서관에서 있었습니다. 이번 주부터는 강사 선생님이 바뀌고 강의 제목도 <와인이 바꾼 세계사>로 바뀌었습니다. 말하자면 오늘 강의는 <와인이 바꾼 세계사> 첫 번째 강의입니다.


강의를 맡으신 유혜선 선생님은 숙명여자대학교 마케팅 경영학 박사를 취득하고 연세대, 숙대, 백석예술대학교 등에서 교수를 역임한 분입니다. <인문학살롱TV>를 운영하는 유튜버이며, 저서로 <나를 채우는 그림 인문학>, <스토리 마케팅>, <그림, 만나다> 등이 있습니다.


오늘 강의는 1. 인문학 살롱과 와인, 2. 역사와 철학 속의 와인, 3. 와인의 기원과 문명 등으로 진행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유럽 역사와 와인에 초점을 맞추어 정리를 해보려고 합니다.


<와인의 역사 - 고대>

와인 생산은 BC 8,000년경 조지아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조지아는 캅카스 산맥 아래,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합니다. 조지아의 북쪽은 러시아와 접하며 남쪽은 튀르키에,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젠과 이웃합니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이란이 있고 그 아래에 이라크에 속한 유프라티스강과 티그리스강이 흐르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상지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조지아까지는 1,500km 정도 떨어져 있으니 매우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들은 강의에서 맥주 생산은 BC 3,500 ∼ 4,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이 곡물을 발효시켜 처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조지아와 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거리상으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하면서 어떻게 한 곳은 와인 생산이 처음 시작된 곳이 되었고, 다른 한 곳은 맥주가 처음 생산된 곳이 되었을까요?


중국에서는 와인의 생산이 최초로 중국에서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오래된 토기의 주변에서 발견된 포도씨앗을 그 증거로 제시합니다. 사실 세계 최초로 와인이나 맥주가 생산된 곳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출토된 자료나 기록을 근거로 '세계 최초'라고 주장을 할 뿐입니다. 맥주 생산의 세계 최초 자료는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그리고 와인생산의 세계 최초 자료는 조지아 지역에서 발견되었을 뿐입니다. 이 지역은 수준이 높은 서양의 고고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유적조사와 발굴을 열심히 시도했던 지역입니다.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져 세계 최초의 술 생산지로 지목된 것입니다.


조지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6,000년경의 와인 저장용 토기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지아가 세계 최초의 와인 생산 타이틀의 영광을 쥐었습니다. 그런데 세계 최초의 토기 생산 기록은 아시아 지역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약 1만 6,500년 전의 토기가 출토되었다고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1만 2,000년 전의 토기가 제주도 고산리에서 나왔다고 합니다.(7,500년 전이라는 주장도 있음.)


빗살무늬토기는 원래 유럽에서 발견되어 화제가 된 것인데 나중에 한반도에서 출토된 것이 시기적으로 3,000년 이상 빨라 BC 4,000년경에 존재한 유럽의 빗살무늬토기 문화(Comb Ceramic culture)에 한반도의 토기문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요즘은 신석기시대 유럽의 초기 농경문화를 이끈 줄무늬토기(Linear Pottery, LBK, Linearbandkeramik)도 빗살무늬토기와의 관련성이 주목되고 있습니다. 우리 학계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앞으로 고고학자들은 우리나라 토기를 발견할 때는 토기 안팎을 더 잘 살펴봐야겠습니다. 혹시 포도 씨는 없는지, 술지게미 같은 것들은 없는지, 나아가 청동기나 주석 혹은 철기 찌꺼기가 담겨있는지 등등 말입니다.


조지아에서 발견된 저장용 토기는 '크베브리'(와인 항아리)라고 합니다. 크베브리로 와인을 만드는 양조법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제조법은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수확한 포도를 껍질채로 통째로 커다란 크베브리 안에 넣고 땅 속에 묻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김장독을 땅에 묻듯이 크베브리 항아리 뚜껑이 땅 위로 나오게 해서 흙과 재로 그 입구를 단단히 봉하고, 6개월 정도 자연 숙성시키면 와인이 됩니다. 포도 씨앗이나 껍질 등 찌꺼기는 항아리 아래에 쌓이고 위쪽 부분에는 얼큰하고 맑은 와인이 떠오릅니다.


와인 만들기가 이렇게 쉽기 때문에 항아리가 있고 포도가 있으면 와인은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고차원적인 생산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포도를 재배하는 기술과 항아리를 만드는 기술이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크베브리 항아리의 모습을 잘 살펴보면, 우리나라 고대의 빗살무늬토기처럼 밑이 뾰쪽합니다. 그리고 눕혀 놓은 모습이 마치 우리의 고분에서 나오는 옹관묘와 아주 많이 닮았습니다. 고고학자들은 크베브리가 원래 바닥이 평평한 토기였으나 BC 3세기 경에 끝이 뾰족하게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고대의 빗살무늬토기 중에는 바닥이 평평한 것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와인과 맥주는 서양 문화가 발전시킨 술 문화입니다. 우리의 빗살무늬토기도 술통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술 연구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100% 그렇게 사용했습니다.) 아마도 거기에 담은 술이 와인이나 맥주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포도의 원산지는 조지아가 위치한 캅카스 지역입니다. 조지아에서 8,000년 전의 포도 씨앗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포토 재배를 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와인 제조의 역사도 그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조지아 바로 북쪽에 높이 5,000m의 코카서스 산맥이 동서로 뻗어있습니다. 이 산맥이 덕분에 러시아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 막혀 포도나무가 냉해를 입지 않습니다. 남서쪽의 흑해로 이어지는 조지아 평원에는 14개의 큰 강이 포진해 있고, 각 강의 주변에는 또 25,000여 개의 크고 작은 하천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 수량이 풍부합니다. 또 그 토양은 미네랄이 많은 충적토이기 때문에 포도밭의 최적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이 와인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조지아의 포도 생산과 와인 제조기술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를 거쳐 로마로 전파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와인제조법을 습득하여 파라오의 제사나 장례에 사용하였으며, 와인을 미라와 함께 매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와인을 마시는 것이 상류층만이 누리는 특권이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역대 왕들 무덤에서는 수많은 와인 단지가 발견되어 특권계급이 즐기는 음료가 와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벽화에도 포도 수확과 와인제조 방법이 그려져 있어, 와인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높은 관심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이집트에서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한 노예나 서민들은 맥주를 노동의 대가로 받았습니다. 그 맥주는 걸쭉하고도 질이 나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 시대의 와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신들(12 신)은 올림포스 산 정상의 궁전에서 삽니다. 그들은 그곳에 거주하면서 각자가 맡은 여러 가지 영역을 관장합니다. (올림포스 12 신이라고 말하지만 반드시 12명의 신을 뜻한 것은 아닙니다.) 신들의 이름은 제우스(주신, 최고신), 레라(제우스의 아내, 결혼과 가정의 신), 포세이돈(바다의 신), 데메테르(곡물과 수확의 신), 아레스(전쟁의 신), 헤르메스(전령의 신), 헤파이스토스(맏아들이자 기술공예와 불의신), 아프로디테(미와 사랑의 여신), 아테나(제우스의 딸이자 지혜와 전쟁, 문명의 신), 아폴론(태양과 음악의 신), 아르테미스(달과 사냥의 여신), 헤스티아(화덕과 가정의 신), 그리고 디오니소스 등입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이 디오니소스(Dionysos)신이 술의 신이며, 포도주의 신입니다. 그리스에서는 맥주도 전해져 널리 음용하였지만 와인을 더 귀한 술로 여겼습니다. 디오니소스는 부활의 신이기도 하고, 봄의 신, 축제의 신, 도취와 몰입의 신, 그리고 황소와 염소, 산양의 신이기도 합니다. 로마 신화에서는 바쿠스(Bacchus)라는 신입니다. 참고로 디오니소스 신은 고통과 불행의 신이기도 하며, 연극의 신이자 광기의 신으로, 그리스 비극의 탄생과도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신입니다. 비극을 낳은 신이기도 합니다.


디오니소스는 그리스 본토가 아니라 동방에서 태어난 신이라고 합니다. 디오니소스(Dionysos)는 니사(Nysa)의 제우스(Dias)라고 풀이하는데, 니사는 그리스 북동쪽 트라키아나 소아시아의 프리기아, 혹은 리디아로 추정됩니다. 아라비아나 튀르키에 지역입니다. 신화에서 디오니소스는 정실부인 헤라가 아니라 정부인 테베의 공주 세멜레의 아들로 등장합니다. 제우스가 세멜레와 바람을 피워 낳은 아들이 디오니소스입니다. 이것은 디오니소스가 그리스 신들 계보에 비정상적으로 끼어들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한편 제우스 부인 헤라는 자기 남편과 바람을 피운 세멜레를 제우스의 번개에 타 죽게 만드는데, 세멜레가 죽어갈 때 제우스가 급히 태아상태에 있던 디오니소스를 꺼내 자신의 넓적 다리에 넣고 꿰매서 그 안에 두고 키웠습니다. 달이 차서 디오니소스가 태어난 뒤에는 죽은 세멜레의 언니 부부에게 디오니소스를 맡겼는데, 부인 헤라가 그 부부를 미치게 해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제우스는 어린 디오니소스를 새끼 염소로 변신시켜 소아시아 니사의 산에 사는 요정들에게 보내 키웠습니다. 그곳에서 자란 디오니소스는 소아시아 지방을 떠돌아다니며 포도 재배법과 포도주 제조법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가 스스로 알아내 전파했다고 하는데 그 지방에 살면서 배웠을 것입니다. 디오니소스는 나중에 자신에 대한 신앙을 확산시켜 그리스 땅으로 입성하고 올림포스 신들의 계보에도 들어가게 됩니다. 이 말은 동방에서 디오니소스신이 아주 유명했기 때문에 그리스 사람들이 자기들 신화에 디오니소스를 끼워 넣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다신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신 하나 정도는,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끼워 넣을 수 있었습니다. 디오니소스가 소아시아에서 그리스로 진출한 경로는 포도와 포도주가 그리스 세계로 전승되는 경로라고 합니다.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를 자기들 신앙에 넣었다는 것은 그리스 사람들이 그만큼 포도주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수업시간에 유튜브 동영상 <디오니소스 제전 속 비극경연대회(김현 교수)>를 시청했습니다. 그리스에서 비극이 어떻게 탄생하였는가를 설명한 동영상입니다. 그리스에서는 매년 풍년을 기원하며 풍요의 신 디오니소스 신에게 제사를 거행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대 디오니소스제전'입니다. 이 제사의 꽃은 비극 경연대회였습니다. 원래는 비극(트라고디아)이 아니라, 디오니소스 신에게 염소를 제물로 바칠 때 부르는 합창이 그 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합창이 경쟁을 통해서 점차 극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이러한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이 테스피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등 극작가들입니다.


그리스 3대 비극 시인으로는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를 듭니다. 비극의 아버지 아이스킬로스(BC 525-456)는 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그린 <페르시아인들>이 대표작입니다. 이 작품은 '2인극'의 시초입니다. 원래는 1인극이었던 비극을 배우 2명으로 늘려서 크게 호응을 받았습니다. 비극의 완성자라 불리는 소포클레스(BC 496-406)는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표현한 <오이디푸스 왕>이 대표작입니다. 그는 2명이던 배우를 3명으로 늘려 극적 갈등과 등장인물 간의 상호작용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비극의 이단아로 평가되는 에우리피데스(BC 480-406)는 버림받은 여성의 복수심을 생생하게 그린 <메데아>가 대표작입니다. 디오니소스 신이 공연예술의 신이자, 연극의 신으로 추앙받는 이유이며 또 그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세계의 다른 문화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우 고급스러우며, 차원이 높은 문화의 신이 디오니소스 신입니다.


그리스 와인의 전통은 현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케도니아산 와인 '파랑가(Paranga)'가 그것입니다. 그리스어로 '작고 낡은 오두막'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 와인은 알코올 도수 13.5도, 가격은 4만 원 정도 됩니다. 파스타, 피자, 스테이크에 어울립니다. 특히 소고기와 양고기 스테이크, 양 갈비와 소갈비, 그리고 양념하지 않은 소고기구이, 바비큐, 구운 채소, 그리고 고기 토핑을 올린 피자와 파스타에 어울린다고 합니다.


<프랑스 문화와 와인>

그리스 뒤를 이은 로마시대에는 군인들이 식수 대신 와인을 소비했습니다. 덕분에 포도 재배와 와인 제조기술이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 뒤를 이은 중세시대에는 가톨릭 교회와 수도원에서 와인 생산의 명맥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프랑스의 루이 14세, 15세, 16세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와인 이야기는 이 시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먼저 '살롱(salon)'과 '살로니에르(Salonnnière)'라는 프랑스 말을 배웠습니다. 살롱이라고 하면 고급술집이라는 것만 알았는데, 그것이 프랑스어에서 나온 단어이고 프랑스 문화와 역사에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살롱은 지식인들이 모여 토론하는 곳입니다. 물론 가끔 그곳에서는 와인도 마시고, 한쪽 깊숙한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간단히 밀회를 즐길 수 있는 방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당시 살롱 문화는 담론문화를 꽃피우고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정신을 만들어 냈습니다.


프랑스의 살롱은 계몽주의 시대, 귀족 여성들이 주최한 고급 사교모임을 뜻합니다. 그곳에서는 계몽주의 사상이 논의되고 혁명사상이 제시되기도 했습니다. 문학을 논하고 음악과 예술을 감상하였으며, 철학자들이 모여 정치, 철학, 과학 등 다양한 주제를 자유롭게 토론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문화는 17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절정을 이루었는데, 이 시기는 루이 14세(1638-1715), 루이 15세(1710-1774), 루이 16세(1754-1793)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루이 14세는 태양왕이라고 불린 왕이며, 루이 16세는 그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1770년–1793)와 함께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왕입니다. 루이 15세는 인물이 잘 생긴 왕으로 그 인물값으로 바람을 많이 피운 바람둥이 왕이기도 합니다. 프랑스의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대혁명이 일어나는데 크게 공헌한 왕입니다.


선생님이 보여준 그림(<1755년 마담 조프린의 살롱 Le salon de Madame Geoffrin>, 가브리엘 르모니에, 1812년작)에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 예를 들면 정치사상가 몽테스키외(1689-1755),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사회계약론자인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그리고 백과전서파를 대표하는 계몽주의 철학자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 등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은 볼테르의 흉상을 가운데 두고 볼테르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살로니에르(Salonnnière)란, 그런 살롱 모임을 주최하고 리드하는 여성(마담 madame)을 말합니다. 앞의 그림에서는 마담 조프린(Geoffrin)이 그런 역할을 합니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마담 퐁파두르도 일세를 풍미한 살로니에르였습니다.(퐁파두르가 나중에 소개하는 보르도 와인의 번창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들 살로니에르는 단순히 살롱의 주최자가 아니라 대리인이자 후원 기관의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권력과 영향력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연극을 관람하고, 어떤 예술 작품을 구매하는지를 결정하고, 작가, 시인, 예술가 중에서 재능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금을 마련했고, 평생 동안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그들의 도움 없이 성공한 철학자, 작가, 예술가는 거의 없었다고도 합니다. 그들은 계몽주의 시대의 문화와 사상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유혜선 선생님의 와인 강의는 이러한 살로니에르 정신이 배경으로 작용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루이 14세에서 루이 16세 시대까지는 프랑스 문화가 형성되는데 매우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선생님이 상당히 많이 강조했으며, 또 상세한 설명을 하셨기 때문에 여기에 몇 가지 내용을 덧붙입니다.


루이 14세 때는 바로코 시대입니다. 15세와 16세 시기는 로코코 시대입니다. 바로크 문화와 로코코 문화는 고등학교 때 세계사 시간에 배웠습니다. 그러나 입으로만 외웠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잊었는데 바로크, 로코코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머리가 뒤엉키고 복잡해졌습니다. 이 바로크, 로코코 문화는 유럽의 미술사, 건축사, 예술사, 음악사, 문학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각 분야에 공통된 어떤 양식이 있다고 하여 바로크 양식 혹은 로코코 양식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바로크 양식은 17세기부터 18세기 초반까지, 즉 루이 14세 시기에 유럽에서 건축, 미술, 음악, 문학 등의 분야에서 유행한 양식입니다. '바로크(barroco)'라는 말은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했는데,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불규칙하고 기괴한 모양을 의미합니다. 또 역동적이고 극적이며, 화려하고 웅장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로코코 양식을 이야기하기 전에 바로코 시대에 대해서 좀 더 덧붙입니다.


그런데 왜 바로크라는 단어가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한 것일까? 루이 14세 때 프랑스는 유럽의 선두주자는 아니었습니다. 서양 미술사에서 바로크 시대 이전은 르네상스 시대(약 14세기~16세기)입니다. 바로크의 극적이고도 격렬한 표현은 조화와 균형을 강조한 르네상스 미술을 극복하고자 시도한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이 활약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표현을 넘어서고자 노력한 사람들이 이탈리아의 카라바조를 비롯한 루벤스, 렘브란트 등 바로크 시대의 미술가들입니다. 루벤스는 독일 태생으로 벨기에에서 활동한 화가이고, 렘브란트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고 활동한 화가입니다.


이것을 보면 유럽문화의 주도권이 이탈리아에서 일시적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로 넘어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페인은 16세기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강대국이었습니다. 1492년에 스페인 왕실에서 후원한 콜럼버스가 대서양 건너편에서 신대륙을 발견하고, 1571년에 스페인 함대는 레판토 해전에서 베네치아 공화국 등과 함께 지중해로 진출하는 오스만 제국의 함대를 격퇴하고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했습니다. 스페인은 당시 유럽을 넘어서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강력한 제국을 형성했습니다. 루이 14세 시대의 프랑스는 이러한 스페인의 패권에 대항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포르투갈도 한때는 스페인에 속해 있었고, 네덜란드도 벨기에와 함께 스페인의 통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17세기에 포르투갈이 스페인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네덜란드도 스페인에서 독립했습니다. 이후 포르투갈은 적극적인 해외 진출 덕분에 금과 다이아몬드 수입으로 부유해지면서 바로크 양식을 채용한 건축, 예술 등에서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클레리구스 성당이나 마프라 왕궁 등이 바로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건축물입니다. 1631년에 착공을 시작한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도 이러한 양식을 채용하고 바로크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바로크 시대에 네덜란드 지역에서 활동한 루벤스나 렘브란트가 중요한 업적을 남긴 것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문화의 영향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문화적 영향력이 프랑스로 넘어가게 된 것은 루이 15세 때부터였습니다. 특히 1618년부터 1648년까지 벌어진 30년 전쟁은 프랑스가 유럽에서 강대국 지위를 차지하는데 큰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국제적인 전쟁 중인 1635년에 프랑스는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했고 이 전쟁은 이후 20년 넘게 끌다가 1659년에 피레네 조약을 맺고 끝이 났습니다. 이후 스페인의 국력은 프랑스에 밀리면서 차츰 쇠퇴해 갔습니다.


루이 14세의 통치하에, 즉 17세기 중반과 18세기 초에 프랑스는 유럽의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로서 선진국 지위에 올랐습니다. 프랑스는 군사적으로도 강대국이었으며, 인구 면에서도 유럽에서 프랑스를 넘볼 국가가 없었습니다. 루이 14세는 태양왕을 자처하고 왕권신수설을 기반으로 절대왕정을 구축하였으며, 베르사유 궁전을 짓고 귀족들을 통제하면서 절대 권력을 과시했습니다. 또한, 유럽에서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공격적인 대외 정책으로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아울러 중상주의 정책을 펼침으로써 문화적 영향력을 유럽 전역으로 확대하였습니다. 이러한 강력한 국력과 영향력을 배경으로 등장한 것이 프랑스의 로코코 양식 문화입니다. 로코코 시대의 문화로부터 우리는 프랑스 문화의 진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로코코 양식은 루이 15세(1710-1774)와 루이 16세(1754-1793) 통치기간 중에, 즉 18세기에 '프랑스에서' 시작된 양식으로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이 특징이며, 우아하면서도 가벼운 분위기가 특징입니다. 로코코라는 말은 '조개무늬(Rocaille)'에서 유래한 용어로 꽃이나 덩굴, 곡선 등을 활용한 섬세하고도 화려하며, 비대칭적인 장식이 두드러집니다. 그 색채는 밝고 경쾌하여 어둡고 웅장한 바로크와 대비됩니다. 특히 파스텔톤의 밝고 부드러운 색채를 많이 사용한 점이 특징입니다. 주로 귀족들의 성이나 대저택 내부의 실내 장식과 가구, 회화에 적용되었으며, 특히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면모를 잘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로코코 양식은 파리를 중심으로 퍼져나가 유럽 전역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소피 마르소가 주연한 영화 <마르키스(Marquise)>(1997년작)에 루이 14세가 등장하고 궁전 내부의 모습이 다양하게 등장하는데 로코코 문화 초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루이 15세 시기의 상류 귀족층의 문화를 보여주는 영화 <마담 퐁파두르>(1927년)나 <잔 뒤 바리>(2023년) 혹은 루이 16세의 아내가 주인공인 <마리 앙투아네트>(2006)에는 본격적인 로코코풍의 장식이나 소품이 많이 보입니다. 참고로 루이 14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왕의 춤(Le Loi Danse)>(2000)도 프랑스 문화의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로코코 양식이 번창한 이후에 프랑스 예술계는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등으로 유행이 바뀌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와 발전의 이면에는 격변하는 프랑스 사회의 혼란한 정치 상황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루이 16세 집권 말기에 프랑스 대혁명(1789~1792)이 일어나 부르봉왕조가 무너지고 제1공화국(1792~1799)이 들어섰습니다. 공화국 말기에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유럽 정복에 나서 일시적으로 유럽 전역에 자유주의를 확산시켰으나 몰락하고(제1제국, 1804-1814), 그 반동으로 부르봉 왕정이 다시 부활했습니다. 이후 군주제를 채용했는데 7월 혁명(1830년)과 2월 혁명(1848년)을 겪고, 제2제국(1852-1870)과 제3공화국(1870-1940) 등으로 혼란한 정세가 이어지다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과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됩니다. 이렇게 뒤에 이어지는, 몹시 혼란한 역사를 염두에 두고 로코코 시대의 프랑스를 다시 돌아본다면 그 시대의 문화가 얼마나 화려하고 여성적이며 평화로운 것이었는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두 지역과 와인>

프랑스 와인을 알기 위해서는 두 지역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는 보르도(Bordeaux) 지역이고 다음은 보르고뉴(Bourgogne) 지역입니다. 보르도 지역은 프랑스의 서쪽 대서양 연안에 인접한 지역으로 해양성 기후대에 속합니다. 특히 서양과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여름은 따뜻하고 겨울은 상대적으로 온화한 편이며, 연중 비가 많이 옵니다. 지롱드 강의 양쪽 강변에 포도밭이 개발되어 있습니다. 이 지역은 연평균 기온이 10도에서 12도 사이로, 가장 추운 2월에도 최저 기온이 약 3도로 영상기온을 유지하며 온화합니다. 가장 더운 달인 8월은 약 26도입니다. 반면에 보르고뉴 지역은 프랑스 중부의 동쪽에 위치하는데 파리와 리옹 사이에 걸쳐있습니다. 연평균 기온은 약 7도이며 겨울에는 영하 7도까지 떨어지기도 합니다. 겨울이 춥고 길며, 여름은 덥고 건조한 준대륙성 기후지대입니다. 이렇게 두 지역의 차이가 두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맛과 풍미를 좌우합니다.


보르도 지역은 귀족의 와인이라 불리며, 샤또(Château)라고 하는 포도원에서 생산됩니다. 샤또는 프랑스어로 성(Castle)을 의미하는데, 그 의미를 바꿔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원이나 양조장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합니다. 와인 라벨에 샤또가 붙어 있으면 보르도 지역의 고급 와인이라는 뜻이며 샤또 다음에 나오는 이름을 보고 그 생산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보르도 지역에 5대 샤또가 있는데, '샤또 라피트 로췰드'는 라피트 로췰드에서 생산되는 와인이고, 샤또 라투르는 라투르에서 생산된 와인입니다. 이렇게 샤또 마고, 샤또 오 브리옹, 샤또 무통 로췰드가 있습니다. 이러한 보르도의 와인은 대개 여러 가지 포도를 혼합(블렌딩)하여 숙성시킨 혼합 와인이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보르고뉴 지역은 보르고뉴 와인이 생산되는데 주로 단일 품종 중심의 와인을 생산합니다. 이 지역의 와인은 옛날에 주로 수도원에서 생산되는 특징이 있었기 때문에 수도원 와인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당시 권력자에게 휘둘리지 않고 수도원이 자체적으로 자립을 하기 위해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했습니다. 성찬의식에 사용하는 와인을 스스로 조달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현재는 반드시 수도원에서 생산하지는 않습니다. 또 이 지역 와인 라벨의 특징은 생산자나 생산지를 도메인(Domaine)이라 부르고 그곳을 표시하여 출하합니다. 샤또 와인은 단일한 포도밭에서 생산하는 경우가 많아 그 포도밭 이름을 샤또 뒤에 표기하는데, 보르고뉴 와인은 하나의 밭을 여러 도메인(생산자)이 나누어 소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밭이라도 도메인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또 라벨에 혹시 '도메인에서 병에 담음(Mis en bouteille au domaine)'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면, 생산자가 포도밭에서 포도를 수확하여 직접 자신의 양조장에서 와인을 병에 담았다는 의미입니다. 도메인 뒤에는 그 생산자가 표시됩니다. 보르고뉴 와인은 값비싼 와인이 많은데, 병당 수천만 원이나 나가는 로마네 꽁티(Romanée-Conti)가 이 지역의 대표적인 와인입니다.


보르도 와인과 부르고뉴 와인은 병 모습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보르도 와인은 병의 주둥이 아래 부분이 남성의 어깨처럼 직각에 가깝게 펼쳐 저 있으며, 부르고뉴 와인은 여성의 어깨처럼 부드럽게 흘러 내려갑니다. 맛에 있어서도 보르도 와인은 남성적이며 강렬한 것이 특징이고, 보르고뉴 와인은 여성적이며 부드러우며 그 여운이 오래가는 은은한 맛이라고 합니다. 보르고뉴 와인의 이러한 풍미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기후환경과 척박한 땅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더 상세한 차이는 서울 트리뷴의 <프랑스 와인의 양대 산맥,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차이점>이라는 기사에 더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수업 중에 소개된 것 중에는 와인에 대해서 더 깊이 알고 싶을 때 도움 되는 사이트, 영화, 만화 등이 있어서 여기에 함께 소개합니다.


첫 번째는 와인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과 와인 제품에 대에 대해서 소개한 사이트입니다. 사이트 이름은 <김박사의 와인랩>. Winston Kim 김옥성박사의 유튜브 사이트입니다.


두 번째는 캘리포니아산 와인의 성공스토리를 담은 영화 <와인 미라클>입니다. 1976년 미국 캘리포니아산 와인 사토 몬텔넬라(Chateau Montelena)가 파리 심판에서 우승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선생님은 어떤 와인을 마셔야 할지 잘 모를 때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산 와인을 고르면 무난하다고 합니다. 이미 품질면에서 프랑스 산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만화 <신의 물방울>(스토리 : 아기 타다시, 작화: 오키모토 슈)입니다. 이 만화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애플 TV에서 방영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화를 소개하는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Je0EkPPttEY)이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업 끝에 와인을 마시는 목적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정의가 있었는데, 기억 속에 깊은 여운이 남아있어 소개합니다.


"와인은 신의 물방울. 와인의 맛이 그려내는 이미지는 와인 숫자만큼 존재한다. 와인을 마시는 목적은 취하는 데 있지 않다. 와인을 마시는 행위의 본질은 글라스 안에 일렁이는 아름답고 심오한 세계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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