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에 얽힌 역사, 문명 이야기

by 임태홍

9월 11일 목요일, 2025년 예산군립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세계사를 바꾼 술, 와인이 바꾼 세계사> 두 번째 강의가 있었습니다. 강사는 광고홍보학 박사 이병우 선생님, 우아포인트 연구소 대표입니다. 강의 주제는 <인류문명과 함께 태어난 맥주>입니다. 지난 1주 차 강의 때도 상당히 많은 강의 자료를 받았는데, 오늘도 30쪽 가까운 자료를 받았습니다. 술과 관련된 강좌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공부할 것이 많아 정신이 바짝 듭니다.


강의 마지막에 들은 한문 글귀가 가장 마음에 남아 먼저 소개합니다.


"꽃은 반쯤 피었을 때 보고(花看半開), 술은 약간 취할 정도로 마셔라(酒飮微醉). 참다운 아름다움이 거기에 있다(此中大有佳趣)."(채근담)


꽃이 반쯤 피었을 때 보면, 저 꽃이 언제 활짝 다 필까? 그때는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상상하게 됩니다. 술에 살짝 취하면, 어디 더 맛있는 술이 없을까? 좀 더 취하면 좋을 텐데 하면서 빈 잔을 확인합니다. 다 충족되지 않은 거기에 커다란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니 마음에 새겨둬야겠습니다. 인간은 웬일인지 만족을 모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더 많이를 외치면서 불행한 곳으로 돌진합니다. 적당히 멈출 줄도 알아야겠습니다.



강의는 1. 맥주의 기원과 문명, 2. 맥주의 발전과 맥주 문화, 3. 맥주의 정의와 종류로 나누어 진행되었습니다. 세 번째 부분인 <맥주의 정의와 종류>에는 맥주와 관련된 기초 상식과 같은 내용이 많았는데, 이 부분의 강의를 듣고 맥주에 대해서 기본적인 상식도 없이 그저 술이 좋다고만 생각하고 마셨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동안 맥주에 대해 제가 잘못 생각했던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1) 맥주는 Mac-ju(맥주)다. ( x )


맥주의 맥자가 보리 맥(麥)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맥주에 대한 지식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실지로 만드는 과정에 보리가 사용된다는 상상 해보지 못했습니다. 맥주는 서양 사람들이 만든 술이고 그래서 아마도 서양말 '맥(mac)'을 한자로 표기하기 위해서 보리 맥자를 차용한 줄로만 알았습니다.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맥주는 '보리를 싹 틔워 만든 맥아로 즙을 만들어 여과한 후에 홉(hop)을 첨가하고 효모로 발효시켜 만든 술'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맥아(麥芽)란 보리 싹을 말하며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엿이나 식해를 만들 때 쓰는 '엿기름'과 같은 것입니다. 엿기름은 보리에 물을 부어 싹을 내, 말린 것입니다. 보리가 싹을 틔우는 과정에서 전분을 분해하는 효소가 활성화되어 단맛을 냅니다. 식해용 엿기름은 보리싹이 보리 길이의 1.5배에서 2배, 즉 1∼2cm 정도 자란 것을 쓰고, 맥주용은 그것보다는 짧아 보리 길이의 2/3 정도 되는 것을 씁니다. 보리싹이 너무 길면 단맛이 줄어듭니다.


보리싹(엿기름)으로 단맛이 나는 즙을 만든 뒤에 여과하여 효모로 발효시키면 술이 되는데, 거기에 홉(hop)라고 하는 식물을 향신료로 첨가합니다. 홉의 암꽃이 향과 쓴맛을 내는 향신료인데 방부제 역할도 합니다. 독일에서는 1993년까지는 맥아, 홉, 효모, 물 이렇게 4가지 성분만을 사용해서 맥주를 만들도록 규정했습니다.('맥주 순수령'의 규정임) 우리나라는 맥아, 홉, 효모, 물 외에도 백미와 옥수수 등 부가원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주세법에 정의되어 있습니다.


2) 생맥주는 맥주에 소주와 물을 탄 것이다.( x )


대학교 다닐 때 학교 주변의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후배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 말로는 호프집 생맥주는 맥주와 소주, 그리고 수돗물을 섞어 만든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호프집을 돌아다니면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고, 또 너무도 단정적으로 말해서 그 말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생맥주란 일종의 소맥이고, 결국은 수돗물 칵테일이라고만 생각하고 최대한 멀리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선생님이 설명에 따르면 맥주는 발효 방식에 의해서 병맥주와 생맥주로 나뉘는데, 병맥주는 효모를 열처리하여 죽이거나 비열처리로 살균한 것이고, 생맥주는 효모를 그대로 살아 있는 채로 판매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효모가 살아 있기 때문에 맛이 미묘하게 다르고 숙성 기간이 길어지면 변질될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효모가 살아 있기 때문에 생맥주라는 것입니다. 괜히 생맥주를 미워하고 오해했습니다.


3) 에일 맥주는 고급맥주다.( x )


몇 년 전에 미국에서 온 친구가 에일맥주와 라거맥주에 대해서 설명을 해줬습니다. 맥주를 마시면서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설명을 듣고 다양한 맥주를 마셨는데, 술에 많이 취했습니다. 그리고 기억에 남은 것은 '에일 맥주는 쓴맛이 나는 고급 맥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지만 정확한 말도 아닙니다. 오늘 설명을 듣고 에일 맥주에 대해서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맥주는 발효 방식에 따라서 구분할 수 있는데 상온(15도∼25도)에서 발효시킨 맥주는 에일(Ale) 맥주이고 저온(5도∼10도)으로 발효시킨 것은 라거(Lager) 맥주입니다. 발효통 안에서 발효가 일어나는 장소에 따라 에일은 상면 발효맥주라고 하고, 라거는 하면 발효맥주라고도 합니다. 에일은 위쪽에서, 라거는 아래쪽에서 발효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에일 맥주는 전통적으로 인류가 오랫동안 만들어 먹은 맥주입니다. 반면에 라거 맥주는 저온 환경을 만들어내는 기술과 도구가 필요했기 때문에 근대 이후에 등장한 맥주입니다. 19세기 초반 독일 뮌헨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이후 냉장 기술이 발달하면서 대중화되었습니다. 에일 맥주는 작은 규모의 수제 맥주(Craft beer)가 많으며, 라거맥주는 대규모로 만드는 공장 맥주(공업 맥주, 산업용 맥주)가 많습니다.


에일 맥주는 숙성기간이 짧고 맥주의 향이 풍부하며, 쓴맛이 강한 맥주이며, 색이 짙고 알코올 도수도 높습니다. 시중에서 수제맥주라고 파는 곰표 맥주, 골맹이맥주, 광화문 맥주 등이 에일맥주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IPA(India Pale Ale)맥주도 에일맥주입니다. 이 맥주는 인도에 주둔한 영국군을 위해서 영국에서 만든 맥주인데 열대지방을 경유하는 긴 항해 시간을 고려하여 방부제 역할의 홉을 다량 추가하고 발효가 일어나는 중간에 당과 곡물을 추가해서 만든 맥주입니다. 반면에 라거 맥주는 카스, 테라, 클라우드, 하이트 등이 그것인데 숙성기간이 길고, 부드러우며 알코올 도수가 낮아 마시기에 편안한 맥주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83% 이상)의 맥주가 이 라거맥주입니다.


4) 발포주는 가짜 술이다.( x )


20여 년 전 일본에서 처음으로 발포주(happoshu, 핫포슈)를 먹었을 때, 맛이 너무 밋밋해서 이거 가짜술이구나 생각했었습니다. 가격이 싸서 좋은데 아무래도 이런 가짜술을 먹으면 안 되겠지 하고 그 뒤로는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수업을 듣고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맥주는 맥아 함량이 10% 이상일 때 '맥주'라고 상표를 붙일 수 있고, 세금은 판매가격의 72%를 냅니다. 그런데 발포주는 맥아 함량이 10% 미만이기 때문에 '기타 주류'로 분류되어 주세를 30%만 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격이 싼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맥아 함량이 50% 이상이 되어야 맥주로 인정받습니다. 곡류, 홉, 물 이외의 부재료는 맥아 대비 5% 이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맥주보다는 더 엄격합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발포주는 맥아 함량이 25% 이내입니다. 우리나라 법에 따르면 제가 마셨던 일본 발포주는 진짜 '맥주'였습니다.


발포주는 가짜 술이 아니라 맥아 함량이 적은 술입니다. 맥아 함량이 적으면 풍미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으나 알코올 도수는 일반 맥주(4.5% ~ 6% 정도)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필라이트(하이트진로)는 알코올 도수 4.5%, 필굿 (오비맥주)은 4.0%, 필굿 세븐 (오비맥주)은 7.0%입니다. 참고로 국내 맥주의 맥아 함량은 대략 60~70% 정도이며, 일본은 66.7% 이상, 독일은 100%입니다. 여러해 전에 독일에서 맛본 맥주 맛이 이상했던 것은 맥아가 이렇게 많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 수업에서 제가 가장 주의 깊게 들은 부분은 맥주와 관련된 역사, 문화, 그리고 문명입니다. 사실은 맥주에 대한 관심보다는 맥주를 통해서 서양 문명과 서양 사람들의 실생활 모습에 대해서 알고 싶은 욕심이 많았습니다. 다음은 수업에서 들은 첫 부분 <맥주의 기원과 문명>과 두 번째 부분 <맥주의 발전과 맥주 문화> 가운데 흥미로웠던 점을 일부 정리해 봅니다. 수업 자료도 참고하고 개인적으로 더 알고 싶었던 부분은 다른 자료를 뒤져서 추가합니다.


1) 수메르인들의 자부심, 맥주 마시는 문화


수메르 신화를 기록한 <길가메시 서사시>에 맥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길가메시(Gilgamesh)는 수메르의 제1왕조 5대 왕 우루크(Uruk)를 말합니다. 그는 2/3가 신이며 1/3은 인간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다음은 수업 자료 가운데 소개된 맥주 관련 내용입니다.


'그들은 그의 앞에 음식을 놓아두었네. 그들은 그의 앞에 맥주를 놓아두었네. 엔키두는 빵을 먹는 것을 알지 못했고, 맥주를 마시는 방법도 전혀 알지 못했네. "음식을 들어요, 엔키두. 이것이 바로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이에요. 맥주를 마셔요. 이것이 이 나라의 관습이랍니다.'


여기에 나오는 엔키두(Enkidu)는 야만인에서 인간으로 개화된 인물로 길가메시의 친구이자 형제이기도 합니다. 엔키두는 원래 털로 덮여 있었고, 영양(염소를 닮은 야생동물)들과 함께 풀을 뜯어먹었고, 물웅덩이에서 물을 마시며 갈증을 해소했습니다.(주1) 물웅덩이 물이란 '진흙투성이의 물'을 암시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깨끗한 물을 갈망했습니다.(주2) 위에 나오는 맥주는 바로 그 '깨끗한 물'의 대용품이었습니다. 빵과 맥주는 말하자면 밥과 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산해가 번역한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는 엔키두가 빵과 맥주를 먹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엔키두가 식탁에 앉았다. 목동들은 그 앞에 빵과 맥주를 내놓았다. 그는 빵을 먹을 줄 몰랐으며, 맥주를 들이키는 법을 배운 일도 없었다. 창녀(샴하트)가 엔키두에게 말했다. "음식을 드세요. 엔키두. 그것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어요. 맥주를 마셔요. 땅에서 살아가는 관습이에요." 엔키두는 배가 터지게 빵을 먹었고, 일곱 단지나 되는 맥주를 마셨다!'(주3)


창녀로 나오는 샴하트(Samhat)는 수메르 수도인 우르크의 신전에서 일하는 여성이자 매춘부입니다. 이 여성이 엔키두를 문명과 성(sex)에 눈뜨게 함으로써 야만인에서 문명인으로 개화될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샴하트를 '음탕한 여자', '창녀' 등으로 묘사하여 성적인 역할을 강조하였는데 사실 샴하트는 신전에서 일하는 사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실지로 그녀는 신적인 존재인 우르크 왕과 야만인 엔키두 사이를 중재하고,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나라 무당과 같은 역할입니다. 이러한 샴하트 덕분에 엔키두는 빵과 맥주를 마시는 문명인이 되었고, 수메르 국왕 길가메시와 함께 나라를 경영하는데 동참했습니다.


수메르 문명은 BC 3,500-1,950년, 혹은 BC 5,500-1,750년 사이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존재했던 도시 국가 연맹체입니다. 거기에는 우루크, 우르, 에리두, 라가시 등 여러 국가가 있었습니다. 이들 국가는 강력한 신권정치를 펼치는 왕과 사제들이 통치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라는 말은 두 강(pota)의 중간(meso)에 있는 도시(mia)라는 말입니다. 두 강이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말합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란 원래 이 두 강 사이의 땅을 말하는데 나중에 그 범위가 넓어져 두 강을 포함한 주변지역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현재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은 하류에서는 알쿼라는 곳에서 하나로 합쳐지는데, 알쿼는 페르시아만에서 약 150km 올라간 곳입니다. 알쿼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강이 유프라테스강 북쪽으로 흐르는 강이 티그리스강입니다. 수메르 문명은 두 강의 하류 쪽에서 일어났으며 그 뒤를 이은 아카드제국(B.C. 2334-2154)과 바빌로니아왕국(B.C. 1895-1595)은 중류, 아시리아제국(B.C. 934-609)은 상류에서 일어났습니다. 말하자면 수메르문명의 선진 문화가 시대를 거듭하면서 두 강의 상류로 확대되어 퍼져나간 것입니다.


<길가메시 서사시>에 등장하는 엔키두는 털이 많고 동물들과 잘 구별할 수 없는 생활을 하는 야만인입니다. 길가메시는 BC 2,800년경에 우루크를 통치한 국왕인데 이 때는 수메르문명이 몰락하기 약 1,000년 전, 그리고 아카드제국이 등장하기 약 500년 전입니다. 아마도 엔키두는 수메르 지역보다 상류에 살았던 원주민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인용문을 보면 수메르인들은 이러한 원주민을 털이 많고 동물처럼 더러운 웅덩이 물을 마시는 야만인으로 천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메르인들 자신은 몸에 털이 없는 사람들이었을까요?


유튜브에서 어떤 코미디언의 영상(동양인의 인종차별)을 보면 동양인들은 '털 많은 동양인(인도인, 파키스탄인, 스리랑카인, 뱅골인, 네팔인)과 털 없는 동양인(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대만인, 티베트인)'으로 구별됩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서아시아) 사람들도 털 많은 동양인에 속하는데, 혹시 수메르인들 중 일부는 그런 서아시아 사람들과는 다른 '털 없는 동양인'이었을 가능성은 없을까 생각해 봅니다.


또 흥미로운 것은 수메르어는 교착어라는 사실입니다. 교착어는 어근에 다른 말(접사, 어미)을 붙어서 의미를 완성시켜 나가는 언어로 한국어, 일본어, 우랄어, 몽골어, 튀르크어, 핀란드어, 헝가리어, 그리고 인도 남부의 타밀어가 있습니다. 반면에 단어의 형태를 바꿔서 말의 의미를 완성해 가는 굴절어가 있는데 라틴어, 러시아어, 폴란드어, 인도유럽어, 아랍어, 그리고 셈어가 이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셈어족에 속하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언어인 아카드어도 굴절어입니다. 아카드어는 수메르 문명 바로 뒤에 등장하는 아카드제국의 언어입니다. 아카드 뒤를 이은 바빌로니아의 언어도 굴절어입니다. 굴절어 지역에 교착어인 수메르어가 이질적으로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수메르 점토판에 보이는 항아리 술통도 흥미롭습니다. 항아리 아래쪽이 뾰족합니다. 밑바닥이 뾰족한 토기는 우리나라 빗살무늬토기를 연상시킵니다.("오천 년 전 양조 기록 점토판 보셨나요?") 또 두 사람이 항아리에 빨대를 넣고 술을 먹는 모습도 있는데, 밑이 둥근 술병도 있지만 뾰족하여 받침대를 댄 술병도 있습니다. 점토판의 그림을 봐도 밑이 뾰족한 술항아리가 많습니다. 수메르 문명의 기초가 된 우바이드(Ubaid) 문화층(BC 5400-3200)에서도 빗살무늬토기 스타일의 밑이 뾰족한 토기(Ubaid pottery)가 발견되었으니 아무래도 그것과 유사한 토기를 수메르 지역보다 3,000여 년 전에 이미 만들어낸 우리 고대문화와의 관련성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수메르인들은 쐐기 문자(설형 문자)를 발명했습니다. 이 문자는 인류 최초의 문자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 이 문자를 사용해 점토판에 행정과 거래, 그리고 각종 법전과 시문 등 다양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진흙을 벽돌로 만들어 주택이나 성벽을 만들었고, 도시의 중심에는 거대한 신전인 지구라트(Ziggurat)를 세워 수호신을 모셨습니다. 그들은 다신교를 믿었으며, 그들이 모신 신들은 인간의 모습과 감정을 가진 존재로 <길가메시 서사시>에 신들의 그런 모습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수메르 인들이 만든 맥주는 보리를 사용한 것으로, 보리를 물에 담가 놓으면 발아되어 단맛이 납니다. 계속 그대로 놔두면 천연 효모의 작용으로 보리죽이 알코올 발효를 하는데 이것이 그들이 마신 맥주입니다. 수메르인들은 닌카시(Ninkasi)라고 하는 여신을 숭배했는데 이 여신이 맥주의 여신입니다. <닌카시의 찬가>에는 BC 4,000년경의 맥주 제조 기술에 대한 설명도 전해져 옵니다.


그런데 수메르인들이 정말로 인류 최초로 맥주를 만들어 먹었을까요? 아마도 '최초'로 만든 것은 아닐 겁니다. 그들이 남긴 기록이 맥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기 때문에 최초라는 타이틀이 그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지난 강의 시간에 들은 대로 인간은 원숭이 때부터 술을 찾아 먹었으며, 인간이 곡물 생산을 한 근본적인 이유가 술을 만들어 먹기 위한 것이었습니다.(고고학자 패트릭 맥가번 Patric MaGovern의 주장) 그러므로 세계 최초의 곡물 생산지가 세계 최초의 맥주 생산지였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 최초의 곡물 생산지는 어디인지, 특히 보리의 원산지는 어디인지 아직 분명히 확인된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주1) 김산해,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휴머니스트출판그룹, 2020년, 79쪽.

주2) 김산해,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254-255쪽.

주3) 김산해,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103-104쪽.



2) 맥주를 법으로 관리한 바빌로니아 문명


수메르문명의 뒤를 이어 아카드 제국(BC 2334-2154)이 일어났고, 그 뒤에 바빌로니아 왕국(BC 1895-1595)이 일어났습니다. 수도는 바빌론이었으며, 함무라비 왕 시기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일하고 강력한 제국으로 성장했으며, 최초의 성문법으로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으로 유명합니다.


이때 만든 법전 안에는 다양한 맥주 관련 법들, 예를 들면 맥주의 제조, 판매, 품질관리, 그리고 술집에 관한 법률도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맥주 제조 시 불순물을 넣을 경우 엄벌에 처하는 규정도 마련되었습니다. 맥주에 관한 최초의 법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법률에 근거하여 이 시대에 맥주 생산이 활발하게 일어나 곡물 원료에 따라 20여 종류의 맥주가 생산되었습니다. 당시 맥주는 걸쭉한 죽의 형태로 식사 대신 음용하였으며 이집드로도 수출되었습니다.



3) 피라미드 건설에 맥주를 이용한 이집트인들


세계 4대 문명은 시기순으로 나열한다면 메소포타미아 문명(BC 4,500년경)이 가장 빠르고, 그 다음이 인더스 문명(BC 3,300년경), 그리고 이집트 문명(BC 3,150년경), 중국 황하 문명(BC 2,000년경) 순입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은 약 1,000년 이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황하 문명은 거기에서 또 1,000년 정도 뒤졌습니다. 참고로 최근에는 중국의 북방 요하지역에서 홍산문화가 발견되어 이를 황화문명과 비견하여 홍산문명으로 높이 평가하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홍산문명은 BC 3,500년∼4,000년경에 시작되었습니다. 이 홍산문명은 고대의 고조선 지역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홍산문화 유물은 주로 옥기가 많으며 술과 관련하여서는 특별히 주목받는 유물이 없습니다. 맥주 관련 기록이나 유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뒤를 이은 황화문명에서도 맥주와 관련된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좁쌀, 기장 등 각종 곡물이 재배되었고, 여러 가지 모양의 토기 유물이 발굴되었기 때문에 곡물을 이용한 발효 음료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상나라 시대에는 미주(米酒)라는 술이 있었는데, 이는 쌀이나 보리, 기장 등을 발효시켜 만든 술로, 맥주와는 다릅니다. 이것을 보면 맥주는 역시 서양문화에서 탄생한 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는 직접적으로 수메르 문화의 영향을 받아 맥주를 제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이집트로 가려면, 유프라테스강을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중간에 강을 벗어나 육로를 통해 서쪽으로 이동한 뒤 지중해로 나가서 해상을 이용하거나, 지중해 연안을 따라 내려가면 아라비아 반도와 시나이 반도를 거쳐서 갈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육로를 통한 교역이 아카드 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맥주를 음료수로 이용한 외에도 풍부한 영양분 덕분에 헤크(HEK) 즉 '액체로 된 빵'이라고 부르고 식사 대용으로도 사용했습니다. 또 왕(파라오)들은 매년 많은 양의 맥주를 신에게 바쳤으며 화폐로도 활용했습니다. 예를 들면 노예에게 맥주를 임금으로 지급했습니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은 것인지, 서양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맥주 등 술을 급료 지급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16세기의 영국선원, 17세기의 네덜란드 선원, 18세기의 러시아 해군, 그리고 스웨덴이나 폴란드 군인들이 임금으로 맥주나 다른 종류의 술을 받았습니다.


이집트 문화에서 맥주의 중요성은 "만약 충분한 맥주 공급이 없었다면 피라미드 건설이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Patrick McGovern)라는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맥주는 식수와 음료수로서, 그리고 식사 대용품으로 나아가 화폐로서도 기능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맥주는 정서적, 종교적 역할도 일정 부분 담당했습니다.


BC 4,000년경 수메르유적 중에는 두 사람이 술통을 가운데 두고 빨대로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있는데, 이러한 전통이 이집트에도 전해져 유사한 풍습의 그림이 이집트 유물에도 그려져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맥주홀에 앉아있다'는 것은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의미로 통했습니다. 아울러 이집트에서는 메소포타미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신비스러운 발효과정을 통해 탄생되는 알코올 음료를 신이 준 선물로 인식하였습니다. 또 술을 마시고 취하는 것은 기쁨을 표현하는 일이었으며 신의 뜻을 따름으로써 맛볼 수 있는 생명의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4) 맥주를 천대한 그리스 문화


수메르 문명은 유프라티스 강의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 아키드 문명, 바빌로니아 문명, 그리고 앗시리아 문명과 히타이트 문명을 통해서 서쪽으로 나가 지중해로 전파되었습니다. 철의 제국 히타이트 문명이 메소포타미아 북부지역, 즉 지금의 티르키아 지역에서 번성하던 당시, 그리스와 에게해 일대는 아직 청동기 시대였고, 미케네 문명이 존재했습니다. 미케네 문명 이전은 미노아 문명(Minoan civilization)이 있었습니다. 미노아 문명은 미노스 문명 혹은 크레타 문명이라고도 합니다.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발달한 이 문명은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등장한 문명으로 그리스 최초의 문명입니다.


그리스 지역에서 맥주는 처음에 인기가 있었으나 차츰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맥주보다는 와인을 더 선호했습니다. 당시 맥주는 발효기법이 발달하지 않아 여전히 걸쭉한 죽의 형태였고, 제작 과정이 복잡하면서도 맛은 시금털털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달콤 새콤한 맛이 나는 와인을 찾았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수메르 사람들과는 달리 다른 선택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와인은 신화에도 자주 등장하듯 신의 음료로 인정을 받아, 왕족과 귀족, 그리고 신관들이 즐겨 마셨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디오니소스는 포도의 신이자 와인의 신입니다. 맥주의 신은 없습니다. 그만큼 맥주는 인기가 없었습니다.


포도는 원산지가 현재의 중동 지역, 특히 카스피해와 흑해 연안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8,000년 전부터 재배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는 이곳과 가깝고 위도도 비슷하니 일찍부터 포도 재배가 널리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도 있어 와인은 그리스에서 맥주를 대신하여 식생활에 대량으로 소비되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는 넥타르(Nectar, 영어 발음은 넥타)라고 하는 '신의 음료'도 있습니다. 신의 음식 혹은 불사의 음식이라는 '암브로시아'와 함께 먹는다고 합니다. 이 넥타르는 꿀이나 과일로 만든 음료수입니다. 젊었을 때 하와이나 LA를 여행하면서, 왜 서양 사람들은 식사할 때 콜라나 달콤한 음료수를 많이 마시는지 궁금했었는데, 빵과 함께 달콤한 음료수나 술을 마시는 것은 서양의 오랜 전통인 듯합니다.



5) 유럽 전역에 맥주 문화를 전파한 로마인들


그리스의 문화는 발칸반도 북부에서 일어난 마케도니아 왕국을 거쳐 이탈리아 반도에서 일어난 로마로 전해졌습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 사람들 보다 더 와인을 숭상하고 생활화하였습니다. 지배층은 고급와인을 마시고 돈이 없는 서민들은 저급한 싸구려 와인을 마시거나 포도즙이나 식초를 마셨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영토가 확대되어 대제국으로 발전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그들도 맥주를 마셔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특히 제국의 변방(이탈리아 북쪽, 지금의 유럽 중심부)에 나가 있던 지휘관과 병사들, 그리고 성직자들은 와인생산에 적합하지 않은 점령지 기후 때문에 와인보다 맥주를 마셔야 했습니다. 당시 맥주는 약간 상한 보리즙 형태였습니다. 타키투스는 <게르마니아>에서 말하길, 게르만인은 중대한 사안을 결정할 때 맥주를 많이 마신다고 했습니다. 유럽 대륙 중심부에 정착한 게르만인들은 와인보다는 맥주를 더 가까이 했다는 말입니다.


맥주가 유럽의 중심부에 전파되면서 각지의 수도원들은 맥주를 생산하고 민간에 전파하는 거점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수도원마다 각자 고유의 양조 전통이 확립되었습니다. 당시 수도원은 여관 기능도 겸하고 있었는데 순례자들이 방문객들에게 맥주를 제공했습니다. 맥주는 영양이 풍부하고 포만감도 주었기 때문에 식사를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의 <바이헨슈테판>이나 벨기에의 <레퍼> 등은 그렇게 수도원에서 유래한 맥주입니다.



6) 맥주에 진심이었던 독일 사람들


1516년에 독일 바이에른 공국 빌헬름 4세가 '맥주 순수령(麥酒純粹令, Reinheitsgebot 라인하이츠게보트)'을 제정했습니다. 이는 맥주 제조의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여 맥주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한 법률이었습니다. 일반 양조장은 보리와 물 그리고 홉(Hop)으로만 맥주를 제조하고, 더 고급술인 밀로 만든 맥주는 궁정 양조장이 독점하도록 하였습니다.(1993년 개정된 독일 맥주법에서는 일반 양조장도 밀맥주 생산이 가능함.)


독일 이외의 지역에서는 향신료로 홉 대신에 구르트(Gruit)나 다른 향신료를 사용했습니다. 구르트는 다양한 허브를 섞어서 만든 향신료입니다. 예를 들면 히스(Heather, 단맛이 남), 톱풀(Yarrow, 쓰고 매콤한 맛), 고수플, 쑥, 로즈마리, 생강, 계피, 민트 등을 적절히 선택해서 혼합한 것입니다.


맥주 순수령 덕분에 독일 맥주는 정체성을 분명해지고, 독일이 맥주의 종주국으로서 위상을 굳건히 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우리가 오늘날 접하는 현대 맥주의 기초가 이로써 확립되었습니다. 맥주의 본격적인 역사는, '게르만족의 강렬한 힘이 세계 무대에 등장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Dr. Rehlen, <산업의 역사>, 1855)고 평가될 정도로 맥주에 대한 독일의 기여는 타국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1688-1740)는 "선조들은 맥주 밖에 몰랐는데 커피가 다 무엇인가? 맥주야 말로 우리 기후에 안성맞춤인 음료이다"라고 하여 커피 원두 수입을 금지했습니다. 독일은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훨씬 더 높습니다. 우리나라는 북위 37도, 독일은 대략 북위 47도에서 55도 사이이니 약 10~18도 더 높아, 날씨가 더 춥습니다.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12-14도 사이인데, 독일의 연평균 기후는 9도 정도입니다.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서늘합니다. 독하지 않은 맥주가 잘 어울리는 기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인당 맥주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 순위(Statista Alcoholic Drinks Report 2018)를 보면 체코, 폴란드, 독일, 오스트리아가 상위를 차지합니다. 독일 문화권이라고 볼 수 있는 나라들입니다. 그 다음은 리투아니아, 크로아티아, 아일랜드, 라트비아, 슬로베니아입니다. 또 그 다음을 보면 루마니아, 불가리아, 미국, 호주, 에스토니아, 벨기에로 맥주를 많이 마시는 나라들은 유럽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수메르 문명에서부터 시작된 오래된 맥주 역사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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