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4일, 예산 군립도서관에서 교양강의를 들었습니다. 제목은 <세계사를 바꾼 술, 와인이 바꾼 세계사> 첫 번째 강의 <술과 인류 문명>입니다. 만약에 제목이 <막걸리가 바꾼 세계사>였다면 강의 신청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막걸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에게는 너무 가까이 있는 술이라 흥미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와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많은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마셔도 마셔도 알 수 없는 와인, 들어도 들어도 생소한 유럽사, 이 두 가지 호기심이 증폭되어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첫날 강의는 이병우 광고홍보학 박사, 우아포인트 연구소 대표님이 강사로 나왔습니다. 대표님은 광주대학교와 단국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셨고 <무협소설에서 찾아낸 마윈의 성공 비즈니스 전략>, <문학소설에서 찾아낸 5가지 파워 브랜드 스토리>라는 두 권의 단행본도 펴낸 분입니다. 다음은 이날 강의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과 제가 느낀 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술을 좋아하지만 항상 술을 경계합니다. 젊어서 직장에 다닐 때, 직장 상사가 술을 좋아했습니다. 그 상사는 퇴근 시간 무렵이 되면 여기저기 전화해 술친구를 찾았습니다. 저도 가끔 상사의 술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술은 1차, 2차, 3차로 이어지고 어쩔 때는 밤을 새우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 상사는 40세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습니다. 가까운 친척 중에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도 몇 사람 있었습니다. 그들이 술 때문에 얼마나 고통받는지를 여실히 목격했기 때문에 술은 최대한 멀리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술이 가진 좋은 점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술 한잔 합시다"와 "차 한잔 합시다"의 차이점을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술은 한잔 나누면서 평소에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말도 내보일 수 있습니다. '취중 진담'입니다. 사업을 하면서 혹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술이 주는 좋은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술독에 빠져서는 안 될 일입니다.
이는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의 고고학자 패트릭 맥가번(Patrick McGovern)교수의 말이라고 합니다. 인류가 오랜 수렵생활을 접고 농경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술에 대한 욕구가 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농경을 시작한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인류는 그 조상인 유인원 때부터 이미 발효된 과일을 즐겨 먹었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로버트 두들리(Robert Dudley) 교수의 '술 취한 원숭이' 가설입니다.(데일리포스트, 2022.4.5) 그러니까 우리 인류는 인간이 되기 전부터 술을 좋아했다는 것이지요. 다소 충격적이지만 흥미로웠습니다.
술은 또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다가 사람들과 대화 속에서 큰 발견과 발명을 하기도 합니다. 연구실에서 갇혀서 연구만 하다가 부딪히는 한계를 여유롭게 술을 마시면서 돌파하기도 합니다. 근대에는 커다란 정치 운동이 술집에서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3.1 독립운동 때 민족대표들이 요릿집 태화관에 모여서 독립선언을 한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미국이 독립혁명을 추진하던 당시 혁명 지도자들은 선술집에 모여서 정보를 교환했습니다.(2024년 겨울, 한국에서는 햄버거 집에서 쿠데타 모의를 한 경우가 있었으나 이것은 실패 사례입니다^^)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 혁명은 1773년 12월 16일 보스턴의 선술집 The Green Dragon Tavern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혁명 지도부, 예를 들면 조지 워싱턴이나 토마스 제퍼슨, 사무엘 아담스, 벤자민 플랭클린 등은 주류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조지 워싱턴은 위스키 증류소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그가 사망한 1799년에 그는 미국에서 가장 큰 위스키 양조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양조업자 토마스 제퍼슨은 대통령 재직 중에도 맥주를 직접 양조했으며, 와인 애호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포도나무 재배법과 와인 제조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미국의 위스키는 버번위스키라고 불립니다. 버번은 부르봉(Bourbon)인데, 프랑스 말을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입니다. 미국은 독립운동 당시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기리기 위해서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술과 정치가 어우러져 탄생한 이름입니다. 이러한 버번위스키는 옥수수를 원료로 한 콘 위스키입니다.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는 와인은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게 된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1789년 당시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는 파리로 들어오는 와인에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그러자 와인 값이 3배나 급등했습니다. 당시 부르봉 왕조의 재정은 파탄 직전에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매일 마시는 와인 가격이 급등하자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그해 여름(7월 11일)에 파리 세관을 습격하고 이어서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여 정권을 뒤집었습니다. 루이 16세를 퇴위시키고 반혁명 혐의로 단두대에서 목을 잘라 버렸습니다. 이것이 프랑스 대혁명입니다.
언젠가 히틀러 생애 관련 영상을 보다 그가 맥주집을 자주 다니는 것을 보고 알코올중독자인가 생각했습니다. 히틀러는 맥주홀에서 연설하면서 뮌헨에서 정치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1920년 나치당 창당 때는 호프브로이하우스라는 호프집에서 창당 선언을 했습니다. 3년 뒤 뮌헨 폭동 때는 뷔르거브로이켈러라는 맥주집에서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맥주홀의 반란이라고 합니다. 히틀러가 맥주집 주변을 어슬렁 거린 것은 그가 주정뱅이라서가 아니었습니다. 독일사회에서 맥주집이 가지는 위상은 특별합니다.
독일 사람들은 맥주를 '사회민주주의 주스'(휘브너 네기나, <독일인의 갈증>)라고 부른 답니다. 사람들은 호프집에 모여서 정치 토론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히틀러의 활동이 호프집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게르만족(독일 사람들)은 중요한 큰 일을 논의할 때 맥주를 마신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 말입니다. 중요한 일은 그 중요도가 크면 클수록 스트레스가 커지는데, 술 한잔 마시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논의한다면 새로운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독일 사람들은 맥주를 앞에 두면 어떤 신성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독일 사람을 만나게 되면 한번 물어봐야겠습니다. 우리 인류의 역사는 이렇게 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발전해 왔습니다.
이병우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수메르인들이 맥주를 처음 발견하고 그 거래를 기록하기 위해서 문자를 발명했다고 합니다. 수메르 문명은 기원전 6,000년 혹은 5,000년 경에 출현하여 청동기 초기까지 존속하였는데 인류 최초의 고대문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현재의 이라크에 속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주변지역에 살면서 밀과 보리 등을 재배하여 생활하였습니다. 그들이 남긴 점토판에는 쐐기 모양의 설형문자가 기록되어 있는데 기원전 3,200년 경에 새겨진 점토판에 맥주통을 뜻하는 문자가 남아 있습니다. 기원전 6,000년경에 음료를 저장할 수 있는 그릇이 개발되었고, 이후 시행착오를 거쳐서 맥아(보리싹, 엿기름)를 물에 넣고 끓인 뒤 발효시켜 맥주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맥주는 와인보다 먼저 출현했는데 포도 재배보다 곡물 경작이 더 쉽고, 먼저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은 또 인류는 수렵채집 시기에 포도, 야자, 벌꿀 등의 당분을 발효시킨 양조주를 탄생시켰고, 농경 시작과 도시의 출현이 이루어지면서 곡물을 당화하여(달게 만들어) 발효시킨 양조주가 제조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7세기부터 14세기까지 유라시아 여러 문명의 대 교류기에 이슬람에서 증류기가 발명되고 증류기술이 개발되어 동서로 퍼져나갔습니다. 이 덕분에 증류주가 널리 제조되었고, 15세기부터 17 세끼까지의 대항해 시대에는 과일 등을 이용한 혼성주가 등장하였으며, 19세기 산업혁명 이후에는 대량생산에 의한 술생산과 상품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설명을 듣고 우리나라의 술문화에 대해서 궁금해졌습니다. 곡물 생산은 우리나라가 아주 빠른데 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우리나라와의 관련성은 없을까? 충북 청주시 소로리 일대에서 발굴된 소로리 볍씨는 15,000년 전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주1) 한반도에서 벼농사는 말하자면 중동지역(서아시아)보다 1만년 정도 빠릅니다. 그렇다면 인류의 곡물 생산과 함께 술의 생산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소로리에서도 맥주와 비슷한 술이 존재하였지 않았을까? 당연히 존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반도 신석기시대 문화의 대표적인 유물로 빗살무늬토기가 있는데 이 토기는 기원천 8천 년에서 1만 년 사이에 사용된 것입니다. 이런 용기가 있었다는 것은 역시 술을 담는 용도로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빗살무늬토기는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폴란드에서도 발견되었는데 우리나라의 토기가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지역의 술 문화도 토기와 함께 전래됐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나라 농경은 신석기시대(기원전 8000년 ∼ 1,500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때의 대표적인 토기가 빗살무늬토기였기 때문에 빗살무늬토기 시대라고도 불리는데, 밭농사를 지어 조, 피, 보리, 수수, 콩 등을 재배하고 소로리처럼 벼농사도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술의 역사도 당연히 기원전 8천 년 이전으로 올라가고 이는 수메르문명의 맥주보다 더 이른 시기입니다. 요즘도 우리 술 가운데는 조(좁쌀)로 만든 조껍데기 막걸리, 좁쌀주 혹은 수수로 만든 수수 소주가 있습니다. 고대에 조와 보리, 피, 수수 등을 생산하였을 때부터 이미 이런 곡물로 술을 만들었을 텐데 그런 전통이 현대로 어떻게 이어졌을까 궁금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동의 수메르의 점토판과 같은 기록물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술의 역사가 있었더라도 인정은 받지 못하겠지요.
선생님이 제공한 자료에 몹시 신기한 사진이 있었습니다. 어린아이가 맥주잔을 들고 있는 그림입니다. 코넬리스 피콜레(Cornelis Picolet, 1626-1679)의 작품 <A boy Drinking>(1679)입니다. 작가는 네덜란드 출신의 초상화 전문 화가입니다. 제목이 'A boy Drinking'이라면 '물 마시는 소년'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물이 아니라 '술 마시는' 소년입니다. 당시는 술이 바로 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1700년 중반의 영국 도시 풍경 그림(William Hogarth의 <Beer Street & Gin Lane>, 1751)도 보았습니다. 술 취한 사람들로 가득찬 거리. 아기를 돌보는 엄마도 몽롱한 취기에 헤롱거리고, 엄마 품에서 벗어난 아기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계단 난간에 거꾸로 매달려있습니다.
16∼17세기의 영국, 셰익스피어 시대에 맥주는 일상생활의 필수품으로 가난한 사람부터 여왕까지 모두 마셨다고 합니다. 의사들도 물대신 맥주를 마시라고 권하고 물을 마실 바에는 차라리 빗물을 받아 마시도록 했습니다. 강물이 오염되어서 깨끗한 식수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영국 사람들이 주로 마신 술은 맥주였습니다. 맥주는 거의 유일한 안전 음료였습니다. 상온에서 쉽게 발효할 수 있는 에일(Ale) 맥주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와인도 있었지만 에일보다 10배 이상 비쌌다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마시던 맥주는 도수가 낮았습니다. 이를 스몰 비어(Small Beer)라고 하는데 1도에서 3도 정도 되었습니다.(요즘 맥주는 4∼6%.) 그리고 아이들과 여성들은 더 낮은 도수의 맥주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가정에서는 매월 한번 정도 맥주를 직접 제조하였으며 1577년에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당시 영국 거리에 술집이 16,000개나 되었다고 합니다. 아침에 출근 전에 펍(Pub)에 들러 술을 마시는 것이 일상사였고, 노동자들은 하루에 보통 4리터 정도의 맥주를 마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는 38편의 희곡을 발표했는데 거의 모든 작품에서 한번 이상 술을 언급했다고 합니다. 당시 술에 쩔어 있던 영국 사회의 모습이 반영된 것입니다.
유럽 대륙은 아주 먼 옛날에 얕은 바다였습니다. 그래서 땅을 파보면 깊은 곳에 해양 생물체의 껍데기 등이 쌓여 굳어진 석회암이 드러납니다. 이 석회암은 물에 잘 녹는 성질이 있어 물을 퍼올리면 그 안에 석회 성분이 섞여 들어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럽은 강물 오염도 심각했습니다. 자연에서 얻는 물을 식수로 사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제조과정에서 오염이 제거된 술을 식수로 사용했습니다.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석회성분은 바닥으로 침전되어 분리됩니다. 와인은 포도만 으깨서 술을 만드니 포도 외에 불순물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커피는 유럽에 1450년경에 전래되었습니다. 그리고 1610년에 차가 수입되면서 커피와 차가 물과 술을 대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커피와 차는 물을 끓여서 만들기 때문에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했습니다. 1670년대 네덜란드의 직물 상인이자 현미경 제작가인 안톤 판 레벤후크(Anton van Leeuwenhoek, 1632~1723)는 미생물을 발견하고, 1882년에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는 미생물이 발효와 질병을 유발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저온 살균법을 개발했으며, 콜레라 백신을 발명했습니다. 나아가 더러운 물을 끓임으로써 살균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파스퇴르는 이때(1866년) 발효를 일으키는 효모의 존재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에서 1760년에서 1820년 사이에 산업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기술 혁신과 새로운 제조 산업의 등장으로 영국 사회가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기계를 활용한 섬유산업도 이때 일어났는데, 술에 취한 노동자들이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전통적인 농업은 술을 마시고도 작업을 할 수 있었으나, 공장에서는 위험하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산업혁명이 본격화됨으로써 노동 효율과 시간 규율이 중시되어 영국사회는 술을 경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차(특히 홍차)를 대량으로 수입했습니다. 술 대신 차를 마시게 되어 대량의 차가 소비된 것입니다. 영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은으로 대금을 지불했는데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 아편을 팔다가 1839년 아편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결국 더러운 물 때문에 일어난 전쟁입니다. 이후(19세기 중후반) 유럽 사람들은 상하수도를 정비하고 공공 보건을 개혁하여 맑고 깨끗한 물을 확보함으로써 물이 안전한 음료로 자리를 잡아, 술보다 물을 더 많이 마시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퀴즈를 냈습니다. "와인에는 지혜가 있고, 맥주에는 자유가 있으며, 물에는 ( )이 있다." 답은 '세균'입니다. 항상 깨끗한 물을 마시고 산 우리 입장에서는 조금 충격입니다. 물에 세균이 있다니. 물론 우리나라 산천 주변의 물도 더러운 경우가 있지만, 계곡에서 졸졸 흘러나오는 물이나 마을 한가운데 깊이 뚫어놓은 우물은 항상 맑은 물이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럽의 물과는 질적으로 다른 우리나라 물은 화강암 대지가 만들어낸 맑고 깨끗한 물입니다. 거기다 전국토의 70%가 산이고, 국토가 좁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으니 강물은 더러워질 틈이 없이 급히 바다로 빠져나갑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강은 압록강으로 803km이며, 그 다음으로 두만강이 521km입니다. 낙동강은 510km, 한강은 482km, 금강은 402km, 그리고 섬진강은 225km입니다. 반면에 유럽에서 가장 긴 강은 볼가강으로 3,530km, 그다음은 도나우(다뉴브) 강이 2,857km입니다. 드네프르강이 2,201km, 돈강이 1,870km, 라인강이 1,233km, 엘베강이 1,094km, 비스와 강이 1,047km, 그리고 짧다고 하는 세느강이 777km입니다. 평지를 느리게 구불구불 흐르는 유럽의 강들은 기본적으로 더러운 데다 석회질 성분까지 잔뜩 머금고 있어 우리나라 강물과는 질적으로 많이 다릅니다.
와인이 지혜의 술로 불리는 것은 그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포도를 키우고, 관리하고 포도주로 만드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또 맥주보다 비싸고 품질에 따라 가격차이도 많습니다. 반면에 맥주는 대량으로 쉽게 만들 수 있어서 가격이 싸고 상품 별로 가격 차이도 많이 나지 않습니다. 맥주 에는 계급이 없어서 평등한 '사회민주주의 쥬스'라고도 불립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프랑스에서 시민혁명(1789~1799)이 일어난 것은 이해할 만합니다. 파리 시민들은 날마다 식수대신 마셨던 와인의 가격을 보면서 불평등한 계급적 현실을 크게 깨달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디오니소스 신은 술과 자유 그리고 광기의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술은 포도주, 즉 와인입니다. 로마 신화에서는 바쿠스(Bacchus) 신입니다. 이 신은 재배의 신이며, 농업, 다산, 그리고 영감의 신이기도 합니다.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는 맥주의 신이 없습니다. 와인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점이기도 합니다.
요즘 대학교에서 자주 개최되는 심포지엄(symposium, 학술 토론회)은 원래 고대 그리스의 심포지온(sympósion)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와인을 마시면서 어떤 주제에 관해 토론을 했습니다. 심포지엄이라는 말은 '함께(sym) 마시다(posis)'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식사 후 열리던 연회에서 술(와인)을 마시며 대화하던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와인이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칭송했습니다. 그의 저서인 <향연>에서는 와인을 마시며 대화하는 것이 상대의 내면을 꿰뚫어 보고 진실을 탐색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약간 취기가 올라오면 사람들이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겠지요. 당시 와인은 철학적 대화와 사교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이러한 전통 덕분에 와인은 지혜의 술로 알려진 것입니다.
와인은 또 신성한 술이라는 이미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B.C. 7 ? - A.D.33)의 '말씀' 때문입니다.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관할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예수는 장성하여 목수, 석공 등 기술자로 활동하다 종교활동에 나섰습니다. 그는 가나에서 열린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을 일으켰다고 전해집니다. 종교적인 해석에 따르면 그는 이런 행위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고, 절망적인 상황을 생명의 풍요로움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예수는 33년 4월 3일경,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에서 사망하기 전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하면서(최후의 만찬),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떼어서 주는 이 빵은 나의 몸이요, 내가 주는 이 잔의 포도주는 나의 피다.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왜 포도주일까? 성경을 읽을 때마다 궁금한 것은 포도주가 무엇인데 이렇게 중요한 장소에서, 그리고 중요한 시간에 등장하는 것일까? 그동안은 막연하게 포도주는 색깔이 피와 같으니, 그리고 아마도 신성한 음료수이기 때문에 예수의 삶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수업을 듣고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포도주가 유럽인들에게는 식수였다는 사실입니다. 예수의 '포도주'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맑고 깨끗한 물'이라는 뜻입니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했던 장소는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 마가의 다락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포함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은 그 지반이 전체적으로 주로 석회암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지역은 유럽의 영국,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과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지반은 신기하게도 석회암으로 같습니다. 아시아에서 태어나 아시아인으로 산 예수의 삶과 인종이 다른 유럽인의 삶이 겹치는 부분입니다.
마르코복음서(14장 22-26절)에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한 말로 이런 말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것(포도주)은 나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약속)의 피다. 잘 들어두어라.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나는 결코 포도로 빚은 것을 마시지 않겠다."
몇 년 전에 폴란드 바르샤바에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민박을 했는데 주인이 내준 커피포트에 하얀 석회가루가 끼어 있었습니다. 수돗물을 끓어 마셔도 되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물을 끓인 뒤에 보니 석회가루가 더 많아졌습니다. 한두 번은 괜찮겠지만 석회가 섞인 물을 자주 마시면 신장 결석 등의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석회질 성분은 몸에 축적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이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올리브 오일이나 올리브 열매를 주기적으로 섭취하여 몸에 쌓인 석회를 중화시켰다고 합니다. 로마 군인이 못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박아서 세운 골고다 언덕(갈보리)은 예루살렘 성벽 바로 바깥에 있었습니다. 이 언덕은 예수가 기도를 올린 겟세마네 동산과 함께,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올리브산(감람산)에 속해 있습니다. 올리브산은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한 뒤 밤이 되면 제자들과 함께 머물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그는 제자들을 가르치고, 같이 기도를 하며, 같이 모여 있다 나중에 군인들에게 붙잡혔습니다. 올리브산은 당시 올리브가 많이 심어져 있어 그렇게 불렸다고 합니다 석회가 많은 곳에서 올리브는 생명의 나무이기도합니다. 사람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러운 물 대신 식수로 사용된 포도주는 바로 생명의 물이었습니다. 예수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나는 결코 포도로 빚은 것을 마시지 않겠다'라고 한 것은 다른 말로 한다면 죽을 때까지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는 말이며, 우리 말로 바꾸면 '맑은 물을 마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식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자신은 죽음을 각오하고 있으며, 자신의 믿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뜻입니다.
'한 사회의 문화적 특성은 그 사회의 음식문화에 압축되어 있다'(마르셀 모스 M.Mauss)고 합니다. 어떤 나라의 술을 잘 이해한다면 그 나라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술은 최고의 문화 상품이며 그런 점에서 "한류의 완성은 우리 술(K-Sool)"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수업시간에 받은 자료에는 다음과 같이 각 나라별로 고유한 술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영국 : 위스키(위스키는 맥주를 증류한 술입니다.)
미국 : 맥주와 위스키(특히 버번위스키. 버번은 부르봉 Bourbon 왕조에서 나온 말)
프랑스 : 와인과 브랜디(브랜디는 와인을 증류한 술로, 코냑도 그 일종입니다.)
독일 : 맥주 (맥주의 표준을 만들고 대중화에 기여함)
러시아 : 보드카(곡물이나 감자 등을 발효하여, 증류한 술)
중국 : 고량주(수수를 쪄서 발효한 뒤에 증류한 술)
일본 : 청주(양조주인 사케), 쇼츄(증류주)
한국 : 막걸리(양조주), 소주(증류주)
일본 청주는 사케(酒, 니혼슈日本酒)라고도 합니다. 쌀을 주원료로 하여 누룩과 물을 이용해 발효시켜 만듭니다. 양조주인 사케와 달리 증류주인 쇼츄(燒酒)가 있습니다. 쇼츄는 고구마나 쌀, 보리 등을 발효한 뒤, 증류하여 알코올을 분리해 낸 술입니다. 사케는 보통 15∼16도, 쇼츄는 25∼45도 정도 됩니다.
미국에서 증류주는 일반식당에서 판매할 수 없으나 우리나라 소주는 증류주이지만 뉴욕주, LA 등 일부 주에서는 특별히 판매가 가능합니다. 교포들이 소주의 대중성을 어필해서 그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도 쇼츄를 Soju로 표기하여 수출함으로써 우리 소주와 함께 일반식당에서도 판매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위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럼주라는 술도 있습니다. 럼주는 사탕수수에서 즙을 뽑아 설탕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 당밀 혹은 사탕수수 즙 그 자체를 발효시킨 뒤에 증류한 술입니다. 콜럼버스는 신대륙 발견 당시, 1492년 첫 번째 항해 때 카리브해에 있는 바하마 제도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두 번째 항해 때는 아프리카 서북쪽에 있는 카나리아에서 사탕수수 뿌리를 캐서 가져가 카리브해 지역에 전해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중남미 지역에서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 생산 그리고 럼주 제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럼주는 카리브해 지역, 브라질, 남아메리카 북부 지역의 영국 식민지, 스페인 식민지, 프랑스 식민지 등의 사탕수수 제배지에서 널리 제조, 애용되었습니다. 럼주 도수는 최소 40도이며 콜라와 섞고 얼음을 넣어 마시며 다양한 칵테일 제조에 밑술로 이용됩니다.
이러한 럼주는 미국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된 술이기도 합니다. 영국은 당시(18세기) 자국령 이외에서 생산되는 당밀에는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식민지였던 미국은 그런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 프랑스령 식문지에서 생산된 당밀을 밀수하여 들여왔습니다. 영국은 그래서 1764년에 당밀 조례를 제정하여 미대륙 13개주에서 당밀 밀수를 단속했는데 이것으로 영국과 식민지 미국 사이에 대립이 격화되었습니다. 1773년 12월 16일에 일어난 보스턴 차 사건은 그런 대립이 폭발한 사건입니다. 영국 본토의 과도한 세금에 반발한 식민지 주민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위장하고 보스턴 항에 정박하던 배에서 홍차 300여 상자를 탈취하여 바다에 내던져버렸습니다. 이 사건으로 영국은 식민지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였는데, 이것이 미국 독립 전쟁을 촉발한 것입니다. 그래서 존 아담스는 당밀이 미국 독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럼주를 마시면서, 기억해둬야겠습니다.
한편, 우리나라 막걸리는 쌀을 씻고 불려서 찝니다. 쌀을 물에 닿지 않게 찜통이나 시루에 넣은 뒤에 수증기로 쪄내는데 이것을 고두밥이라고 합니다. 이 밥이 식으면, 누룩과 물을 섞어서 발효시킵니다. 항아리나 병에 넣고 20~25도 온도에서 며칠간 두면 자연발효가 됩니다. 발효된 액제를 걸러내면 그것이 막걸리입니다. 막걸리 재료는 쌀, 즉 찹쌀이나 멥쌀도 가능하고, 그 외에 밀, 옥수수, 좁쌀(조), 수수로도 만듭니다. 중국의 고량주는 수수를 발효한 뒤 증류한 술입니다.
소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증류주로 시중에 판매되는 소주는 대개 희석식 소주입니다. 이 소주는 먼저 쌀, 보리 등 곡물로 밑술(양조주)을 만든 뒤에 증류 공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고순도의 알코올(주정)을 확보한 뒤에 거기에 물과 감미료 등을 섞어 만들어 낸 것이 초록색의 소주병에 담긴 소주입니다. 우리 나라 술의 특징은 각종 안주와 같이 먹을 수 있도록 맛이 담백한 점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대부분의 외국 술은 향기가 있어서 안주에 의존하지 않고 술 자체만으로 그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제조된다고 합니다. 어쩐지 외국 술은 우리나라 안주나 한식 요리와 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술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나라 물과 음식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조국의 독립을 준비하던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중국으로 넘어가 중국 남부 광둥 성에 있는 황포군관학교에 많이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중국의 강물을 보고 놀랐습니다. 너무 더러웠기 때문입니다. 더럽게 보인 것은 누런 황토가루가 강물에 대량으로 섞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외쳤습니다. "나는 죽어도 저런 더러운 강물에 빠져 죽지는 않겠다." 중국의 황하강이나 양자강은 누런 강물로 유명합니다. 황하라는 이름도 그 때문에 생겼습니다. 황포군관학교는 중국의 남부 한쪽 귀퉁이에 있습니다. 광저우 근방인데도 강물은 중원지방과 똑같이 황토 투성이입니다. 그래서 홍콩 앞바다 강물도 상하이나 텐진 앞바다 바닷물처럼 누렇습니다. 광저우에 여행 갔을 때, 시내에서 2m 정도 땅을 파고 공사하던 곳이 있어 그곳의 흙을 구해다 물컵에 담아 놓은 적이 있습니다. 며칠이 지나도록 물은 맑아지지 않았습니다. 황토 입자 크기가 너무 작았기 때문입니다. 바람에 실려 왔거나 아니면 물에 실려 아주 먼 내륙에서부터 흘러내려온 것입니다.
같은 유라시아 대륙에 속하지만 동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물은 아주 특별합니다. 유럽도 중국도 가지지 못한 물. 화강암 대지가 만들어낸, 맑고 깨끗한 물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음식을 기름으로 볶는 것은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더러운 물 때문입니다. 황토물로 채소를 씻어도 말끔하게 씻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럽사람들이 물을 사용하는 요리를 발전시키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로 더러운 물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유럽뿐만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의 북쪽지방에 위치한 러시아도 그리고 남쪽 지방에 위치한 인도도 물 사정은 마찬가지 입니다. 석회암 성분과 다른 불순물이 많이 녹아 있습니다. 이점은 미국과 캐나다, 중남미 국가들이 위치한 아메리카 대륙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간혹 깨끗한 물이 있기도 하지만 석회성분이 섞인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대만, 태국,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지하수나 수돗물에도 석회가 들어있습니다.
된장, 간장, 고추장, 그리고 김치 등 발효음식의 기초는 깨끗한 물입니다. 불순물이 섞인 물은 미생물의 활동을 방해하거나 유해물질을 생성하거나 또 발효과정을 왜곡하여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맑고 깨끗한 물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한식에는 각종 탕 음식이나 국물 음식도, 비빔밥이나 김밥 그리고 또 다양한 종류의 쌈밥, 묵밥, 그리고 수많은 나물 음식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맑고 깨끗한 물'은 다른 나라에서는 인류가 근대 과학과 문명의 발전을 통해서 겨우 확보한, 극히 최근의 산물입니다. 지구 위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게 된 것은 겨우 100년 정도입니다. 그것도 대부분의 경우 병에 담아서 조금씩 마실 뿐입니다. 반면에 우리 민족은 한반도와 만주지역에서 살면서 사시사철 항상 콸콸 흐르는, 수정같이 맑고 깨끗한 물을 옆에 끼고 살아왔습니다.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그 물을 사용하여 고민하고 궁리해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 맛의 절정체가 한식입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한식의 세계에 발을 담그면 신세계를 경험한 듯 놀라고 갈수록 빠져 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들에게 한국의 음식(K-Food)과 요리(K-Cuisine)는 가히 먼미래 세계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음식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맑은 물을 마음껏 쓰면서 수백, 수천년을 살아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주1) 이기환, 홀연히 나타난 1만5000년전 '청주 소로리 볍씨'의 정체, 2019.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