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 맞으며 달린 동대문 마라톤 - 10km 9번째

by 임태홍

2025년 9월 28일 (일요일), 오늘은 제14회 동대문 마라톤대회가 있는 날입니다. 대회 장소는 중랑천 제1체육공원, 마라톤 시작 시각은 8시 30분입니다. 제 숙소에서 장한평 역까지는 지하철로 1시간 정도 거리, 30분 여유를 두고 출발한다면 늦어도 7시에는 집을 나서야 합니다.


6시 30분쯤 일어나 아침으로 고구마 1개, 그리고 생선찌개를 뒤져서 남은 고등어 두 조각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가방을 쌌습니다. 그런데 배번호는 어디 갔지? 갑자기 배번호가 보이지 않아 여기저기 한참을 뒤졌습니다. 대회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니 배번호와 지급품은 현장 배부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렇지. 만약 받았다면 잘 챙겨뒀을 텐데." 이번 대회는 선착순으로 2,500명을 모집한다고 하였으니 오늘 참가자들은 많아야 그 정도로 소규모 대회입니다.


그런데 날씨가 서늘하니 반바지, 반팔을 입을까, 아니면 긴바지, 긴팔을 입을까 한참 고민을 합니다. 결론을 내지 못하고 일단 각각 1벌씩 가방에 넣고 출발을 합니다. 벌써 7시 12분, 바깥 온도는 20도, 바람이 조금 약하게 불고 있고, 실내온도는 22.4도입니다. 이번 동대문 마라톤 대회는 대회본부에서 사전에 문자연락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렇게 사전 연락이 없는 것은 처음입니다.


집 바깥으로 나오니 비가 내립니다. 오잉? 비가 내리는 것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부터 날씨가 흐리고 비 올 조짐이 있었으니 당연히 걱정을 해야 하는데 신경이 쓰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지난 8월 마라톤 때, 비를 맞으며 달린 것이 좋아서 그랬나 봅니다. 그때는 한여름이었고 지금은 날씨가 쌀쌀한 가을. 비를 맞으면서 뛰기는 부담이 큽니다. 거기다 요 며칠 감기 기운이 있어서 몸이 으슬으슬 춥기까지 한데 걱정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장한평 역에 거의 다와 가는데 뱃속이 찌릿찌릿합니다. 뭘 잘못 먹었을까? 장한평 역에 내려서 화장실을 가면 참가자들이 많이 몰려있겠지? 그래서 한 정거장을 남겨놓고 답십리역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을 찾는데 찾기도 쉽지 않고 아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일을 보고 다시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오니 그 사이에 10분이 훨씬 더 지났습니다. 천천히 느긋하게 들어오는 지하철을 타고 장한평 역에 내리니 화장실이 바로 앞에 있고 텅텅 비어있습니다. 괜히 미리 내려서 화장실 찾은 것을 후회합니다. 준비를 잘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시간은 벌써 8시가 넘어서 출발시각에 가까이 다가오는데 장한평 역에서 대회장까지 보통 거리가 아닙니다. 4번 출구를 나와 군자교 쪽으로 500m를 달려갑니다. 거기에서 왼쪽으로 돌아 장안 벚꽃로를 따라 북쪽으로 다시 800여m를 달려가니 동대문구민체육센터가 나오고 바로 옆에 장평근린공원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동쪽을 올려다보니 수변공원으로 내려가는 육교가 보입니다.

육교를 건너서 내려오니 마라톤대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공원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시간은 벌써 8시 30분. 배번호를 받기 위해서 줄을 섰는데 제 앞에 200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늦어도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나 배번호를 받아야 출발을 할 수 있으니, 줄의 맨뒤에 서서 줄을 따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줄이 빨리빨리 줄어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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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걱정하고 있는 사이에 하프팀이 출발을 합니다. 8시 35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배번호를 받고 있으니 조금은 더 늦게 출발해도 좋을 텐데 대회본부는 인정사정없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10분 뒤인 8시 45분에 10km 팀이 출발합니다. 아아, 우리 팀이 저렇게 먼저 가버리는구나. 어차피 저는 낙오한 참가자입니다. 배번호를 언제 받을지 모르나,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또 10분쯤 지나자 5km 참가자들 A팀이 출발합니다. 10여분 있으니 5km 참가자 B팀이 출발합니다. 이렇게 모두 출발한 뒤에도 배번호 줄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한참을 더 기다리며 따라가니, 앞에 10여 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맨 앞에서 줄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줄이 또 있습니다. 왼쪽으로 돌아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구불어진 줄이 30m 넘게 이어집니다.


오른쪽 사진은 배번호를 기다리는 마지막 줄입니다. 배번호를 배포하는 테이블에 다가가니 10여 명의 배포 요원들이 부지런히 이름을 대조하고, 배번호를 나눠주고, 기념품으로 마련된 티셔츠를 나눠주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느리나 살펴보니 참가자 명단이 딱 한 부이고, 그 명단을 교대로 체크하는 사람이 두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병목현상이 일어나 번호표 배포가 늦어진 것입니다. 명단을 복사해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나눠줬더라면 좀 더 빨랐을 텐데. 이번 마라톤 관련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이 대회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여러차레 개최했는데도, 대회운영이 미숙하다고 불만 댓글이 많습니다.

배번호를 받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짐을 맡긴 다음에 부지런히 출발선으로 가서 출발합니다. 비는 더 세차게 내립니다.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비닐봉지 한 장에 구멍을 뚫어 뒤집어썼습니다. 머리와 두 팔만 내놓고 가슴을 감쌌습니다. 1시간 동안 장대비를 맞으면서 뛰다가는 감기가 더 악화될지 모르니 최소한의 보호장치입니다.



오늘 코스는 중랑천을 따라 북쪽으로 5km를 올라갔다 내려옵니다. 출발지점은 제1체육공원(장안 1 수변공원) 광장입니다.


비가 줄줄 내리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출발했으나 같이 달리는 사람들이 없어서 홀가분합니다. 도로는 폭이 15m 정도. 달리다 보니 자전거 도로로 왕복 2차선이 있고 한쪽에 붉은색의 인도가 죽 뻗어 있습니다. 오른쪽으로는 멀리 중랑천이 흐르고 왼쪽으로는 역시 멀리 동부간선도로가 지나갑니다. 도로에는 달리는 차들이 많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도로 바닥에는 빗물 고인 곳이 많습니다. 이리저리 피하면서 달립니다. 본진은 이미 아주 저 멀리 가버렸기 때문에 보이지 않으나 마음으로는 곧 따라갈 것 같아 서둘러 달립니다. 급히 뛰다 보니 벌써 다리(겸재교) 밑에 설치되어 있는 급수대입니다.


어떤 대회 관계자가 묻습니다. "아니 왜 이제 오세요?" "배번호를 이제 받았어요."라고 말하니 그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라고 응답합니다. 꽤 직급이 높고 연륜이 있는 관리자같은데 여기에서 식수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출발지에서 현장지휘를 해야하는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바닥에 '5km 반환점'이라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아니 벌써 5km 달려왔나? 이상하네.'라고 생각하면서 안내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10km 뛰는 사람은 앞으로 계속 달리라고 합니다. 알고 보니 이곳은 '5km를 달리는 사람들의 반환점'입니다. 좀 전에 물을 마시던 급수대는 2km 정도 되는 곳에 설치된 급수대입니다. 비가 오니 다리밑으로 옮겨갔습니다. 앞으로 또 2.5km를 달려야 합니다. 실망 속에서 터벅터벅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반대편 길에는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하프팀인지 10km 팀인지 비를 맞으며 열심히 뛰어옵니다. 빗방울이 커졌습니다. 푹 눌러쓴 모자 사이로 빗물이 줄기차게 흘러내립니다. 가슴 부분은 비닐봉지로 덮어서 후끈후끈하지만 두 팔다리는 빗물에 젖어 서늘합니다. 티셔츠를 파고든 빗물이 몸 안쪽으로 줄줄 스며듭니다. 비 내리는 일요일 아침. 동부간선도로의 차들은 쉴 새 없이 오갑니다. 쏟아지는 빗물이 막아주지 않았으면 차량에서 내뿜는 배기가스가 이곳까지 날라올텐데. 많은 차들이 달리는 도로와 마라톤 코스가 꽤 가까이 붙어 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같이 달립니다.


이제 5km 지점의 식수대. 이곳도 역시 비를 피해서 다리(이화교) 아래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음료수 드세요." 안내하는 아가씨가 외칩니다. 달콤한 음료수를 한컵 마시고 다시 앞으로 달립니다. 500여 미터를 더 달려 반환점을 돌아옵니다. 석계초등학교 부근입니다. 중랑천은 물이 불어나서 그런지 수면이 도로 높이까지 바짝 올라왔습니다. 운동화가 비에 젖어 축축해졌습니다. 이왕에 빗속을 달리는 마라톤. 모자까지 벗고 달립니다. 빗줄기가 바로 눈앞에서 쏟아져 얼굴에 부딪힙니다. 가슴을 펴고 빗방울을 쓸어 담으며 달립니다. 시원하고 상큼한 우중런. 달리면서 느끼는 자유로움. 빗속 마라톤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남은 5km. 아무도 없는 도로 한가운데에서 차선을 밟으며 달립니다. 차선 위에 태양광 LED 도로표지등이 줄줄이 박혀있습니다. 느긋하게 천천히 뛰니 표지등 간격이 6 발자국 거리입니다. 급하게 빨리 머리를 잔뜩 숙이고 뛰니 4 발자국 거리입니다. 4 발자국만 뛰어서 다음 표지등에 도달하도록 높이 높이, 멀리 멀리 뜁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4 발자국씩 지칠 때까지 그렇게 달립니다. 그러다가 또 천천히 달리다가 다시 속도를 높입니다.

어느덧 멀리 골인아치가 보입니다. 빗줄기는 이제 조금 가늘어졌습니다. 그래도 셔츠며 바지는 모두 젖었습니다. 양말도 젖어서 축축합니다. 하프팀이 들어오는 시간인지 도로 양쪽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있습니다. 보폭을 넓게 잡고 무릎을 높이 올리며 마지막 질주를 합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골인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길 양쪽에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쳐줍니다.


완주 메달을 받고, 빵이며 음료수며 간식을 받고 또 맥주까지 받았습니다. 발포주입니다. 그래도 알코올이 들어있는 술입니다. 마라톤대회에서 술을 받아보기는 처음입니다. 맡긴 짐을 찾아 한쪽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빵을 먹고 음료수를 마십니다. 그리고 비가 내리는 마라톤 광장을 바라보며 천막 안에서 맥주도 마십니다.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임태홍 님의 10km 기록은 00:39:23입니다." 그런데 뭐가 잘못됐나 봅니다. 기록이 전혀 엉뚱합니다. 혹시 5km 기록으로 잘못 계산하였을까? 상세한 내용을 보니 출발 시각이 00:00:00입니다. 너무 늦게 출발해서, 기록이 찍히지 않았을까? 마라톤대회 관련 홈페이지를 방문해 봤습니다. 게시판에 여러 가지 불편했던 점에 대한 댓글들이 많이 올라와있습니다. 기록도 정확하지 않다는 불만이 많습니다. 제 기록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틀 뒤, 9월 30일 화요일, "완주를 축하드립니다"라는 문자가 또 들어왔습니다. 10km 기록이 01:09:23이랍니다. 잘못된 기록을 수정한 것입니다. 1시간 9분대는 저로서는 잘 달린 기록입니다. 출발 시각은 09:24:38, 도착시각은 10:34:00. 속도는 km 당 6분 56초, 시간당 8.6km였습니다. 처음 5km까지는 33분 57초, 이후 10km 까지는 35분 26초였습니다. 돌아오는 시간이 1분 29초 정도 느렸습니다. 전체순위는 847명 중 666등, 남자 중에는 559명 중 486등이었습니다.


이번 대회는 제가 중간 순위도 못한 것을 보아, 잘 뛰는 사람들이 많았던 대회였나 봅니다. 다른 대회에서는 중간 정도 했는데 그 기록과 비교해 보면 그렇습니다. 오늘은 비가 많이 와서 그랬는지, 배번호만 받고 가버린 사람들도 많았고 배번호를 받으러 오지 않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배포처 천막 한쪽에는 받아가지 않은 기념 티셔츠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비를 맞고 뛴 사람들은 참으로 마라톤에 진심인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제 기록과 비교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본 어떤 글이 생각납니다. "바람 불지 않는 인생은 없다. '바람이 불어야 나무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이유다.’(이철환) 모든 사람들이 장애물에 부딪히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장애물을 자신이 선택한 목표를 향해 더 높이 올라가는 데 사용하는 디딤돌로 바꾼 사람들입니다."(조영탁, <행복한 경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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