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와인 - 상품 이야기(2)

by 임태홍

2005년 10월 16일, 예산 군립도서관에서 <와인이 바꾼 세계사> 3주 차 강의가 있었습니다. 강사는 <인문학 살롱 TV>의 유혜선 선생님이었습니다. 이번 주는 '예술가가 사랑한 와인'이라는 부제목으로 와인과 예술의 관련성을 주목한 강의였습니다.


강의에 소개된 와인 제품은 1) <샤또 무통 로칠드>, 2) <샤토 마고>, 3) <돔 페리뇽>, 4) <파이퍼 하이직>, 5) <키안티 클라시코>, 6) <오퍼스 원>이었습니다. 이들 와인에 대해서 정리, 소개하고, 제가 강의를 듣고 며칠 뒤 시골 읍에 나가 대형 식자재 마트에서 산 7) <롱샴 카베르네 쇼비뇽>에 대한 소개도 덧붙입니다.


와인은 예술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와인의 생산과정 자체가 예술적인 창의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포도 품종을 선택하고, 혹은 각기 다른 풍미를 지닌 품종을 조합하고 양조하며, 숙성시키며 블렌딩 하는 일 자체가 많은 인내와 창조의 고통이 동반됩니다. 와인의 생산은 마치 화가가 캔버스 위에서 각종 색채와 도형을 조합하면서 작품을 완성해 가는 것과 같습니다. 생산자는 창의성과 개성을 발휘하여 와인을 만들어 갑니다.


<레미제라블>을 쓴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는 "신은 물을 만들었지만 인간은 와인을 만들었다.(God made water, but man made wine.)"고 했습니다. 물은 자연 그대로 존재하지만 와인은 인간의 손길이 개입되어 포도를 재배하고, 발효시키고, 숙성시키는 과정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서구의 예술가, 작가, 사상가들은 특히 와인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피카소, 구스타포 클림트, 엔디 워홀, 프랜시스 베이컨 등은 와인을 마시면서 작품 활동을 하기도 하고, 소설가 헤밍웨이는 와인 <샤토 마고>를 너무나 좋아해서 자신의 손녀딸 이름을 '마고'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와인을 예술을 위한 술, 창조성과 영감을 주는 술이라고도 칭송하기도 합니다. 많은 번뇌 끝에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와 와인은 서로 의지하면서 우리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켜 줍니다.


와인은 또 깊은 스토리를 담은 문화적 상품이기도 합니다. 생산된 지역의 토양과 기후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와 문화를 담기도 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간직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와인은 여유 있는 음미와 깊이 있는 경험, 그리고 예술적인 감상을 요구합니다. 시각과 미각, 후각 등 오감을 열고 다가가야 와인의 그러한 요구에 부응할 수 있습니다. 와인의 색깔과 맛을 표현하는 감상평 자체가 예술 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와인은 대체로 세 가지 맛이 기본입니다. 단맛(sweet), 신맛(산도 Acidity), 떫은맛(탄닌감 Tannin)이 그것입니다. 단맛은 달콤하다, 달달하다, 부드럽다, 밋밋하다, 달지 않다(dry 드라이하다) 등으로 표현할 수 있으며, 신맛(산도 Acidity)은, 시큼하다, 신선하다, 생생하다 등으로 표현됩니다. 떫은맛은 거칠다, 강하다, 부드럽다, 우아하다, 무겁다, 걸쭉하다, 건조하다 등으로 표현합니다.


와인의 질감을 나타내는 '바디감(body, 무게감)'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와인을 입안에 머금었을 때 느껴지는 묵직함을 말합니다. 물과 같이 가벼우면 영어로 right body(라이트 바디), 우유와 같은 질감은 medium body(미디엄 바디), 두유처럼 느껴지면 full body(풀 바디)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 와인에서는 보존 용기나 사용된 포도 품종에 따라 각종 과일 향기이나 꽃 향기, 혹은 가죽 향이나 흙 내음, 탄 맛, 향신료 맛(스파이스), 나아가 각종 견과류 향이 다양하게 나기도 하는데 이러한 맛과 향기를 찾아내는 것도 와인을 즐기는 매력입니다.


1) 프랑스 레드 와인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무통 로칠드 (Château Mouton Rothschild 혹은 샤또 무똥 로쉴드)는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북서쪽으로 50 km 거리에 있는 메독(포이약 마을)에 위치한 양조장(샤토, 와이너리)에서 생산되는 와인입니다.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로 하여 다른 품종과 섞어 불렌딩한 와인으로 깊고 복합적인 맛과 향을 발현합니다. '보르도 5대 샤토' 중 하나이며, 도수는 13도 혹은 14도, 가격은 대략 10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입니다. 보르도 와인 중 가장 비싼 술로 알려져 있는데, 이 와이너리 제품은 한정 판매 등을 통해 가격을 비싸게 책정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생산연도(빈티지)에 따라 400만 원 혹은 2억 원 이상의 호가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샤토 무통 로칠드는 유대계의 재벌 가문인 로스 차일드 가문이 1853년에 인수하였으며 샤또 라피트 로칠드와 함께 로칠드 가문의 대표적인 와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스 차일드 가문은 샤토 무통 로칠드를 루이비통과 합병하여 와인 브랜드의 고급화를 추구했습니다. 그 결과 유럽에서 최고급 와인의 지위를 확보하고 왕가나 귀족 혹은 국빈용 와인으로 널리 사랑을 받았습니다. 매년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라벨 디자인을 바꾸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스페인 화가 피카소, 영국의 조각가 헨리 무어, 프랑스 화가 마르크 샤갈 등이 상표(라벨)에 그림을 그렸으며, 영국 왕실의 찰스 황태자의 그림도 2004년 빈티지 라벨로 사용된 적이 있습니다.


이 와인은 로스 차일드 가문(Davis Rothschild family)이 인수한 뒤로 120년간 2등급에 머물러 있었으나 1973년에 처음 특 1등급 와인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피카소(1881-1793)로부터 그림을 받아 라벨로 사용하였는데 바로 뒤에 그가 사망하여 더욱 주목을 받았습니다.


유럽의 3대 명문가 중 하나인 로스 차일드 가문은 독일 유대계의 국제 금융 가문으로 18세기에서 20세기 사이에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태리를 거점으로 금융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18세기말에 이 가문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사업을 시작하여 5명의 아들을 런던, 파리, 빈, 나폴리 등 유럽 주요 도시에 파견하여 각지에 지점을 세웠습니다. 최초의 국제적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입니다.


사치와 부의 대명사로 알려진 이 가문은 나폴레옹 전쟁 때 상당한 부를 쌓았으며, 워털루 전쟁 때에는 영국이 승리한 것을 속이고 패배했다고 소문을 내서 영국 국채를 싼값에 무더기로 사들여 막대한 이익을 챙겼습니다. 이것으로 세계적인 금융제국의 밑거름을 마련했습니다. 또 이 가문은 왕실이나 대부호 가문들과 정략 결혼을 하여 부를 축적했습니다. 나아가 유럽 각국의 산업화 정책에 맞추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여 이득을 확보했으며, 세계 각국의 철도 부설사업에 참여하고, 수에즈 운하와 같은 거대 정부 사업에 투자했습니다. 이 외에도 로스 차일드 가문은 예술품을 수집하고, 와인 사업에도 뛰어들었으며 자선 사업으로도 유명합니다.


참고로 유럽의 3대 명문 가문으로 로스 차일드 가문 외에 합스부르크 가문과 메디치 가문이 꼽힙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루돌프 1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명문 가문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현재의 독일, 스페인, 오스트리아 지역을 비롯하여 유럽 전역에 걸쳐 15세기와 19세기 사이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유럽의 장모라고 불리는 마리아 테레지아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1세(Franz I, 1708-1765, 재위 1745-1765)와의 결혼하여 요제프 2세, 레오폴트 2세, 마리 앙투아네트 등 아들 5명과 딸 11명 등 모두 16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이들 자녀를 유럽 주요 국가의 왕족들과 결혼시킴으로써 영토를 확장하고 제국의 영향력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혼인전략은 나중에 근친혼으로 귀결되어 신성로제국의 몰락을 재촉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명문 가문인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 시대, 즉 14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 존재감을 뽐낸 이탈리아 가문입니다. 피렌체를 중심으로 금융과 예술을 후원하여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메디치 가문은 특히 예술 작품에 투자하여 큰 부를 획득하였는데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은 이 가문의 후원을 바탕으로 화려한 꽃을 피웠습니다. 또한 교황 3명을 배출하는 등 종교와 정치, 경제 분야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2) 프랑스산 레드 와인 <샤토 마고(Chateau Margaux)>


<샤토 마고>는 프랑스 보르도의 5대 샤토(와인 양조장) 중 하나입니다. 참고로 5대 샤토는 샤토 무똥 로칠드, 샤토 라투르, 샤토 라피트, 샤토 오 브리옹 그리고 샤토 마고입니다. "프랑스인의 마음 한가운데에 보르도가 있고 보르도에 샤토 마고가 있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독일 아데나워(1876-1967) 총리가 세계 2차 대전 때 프랑스 침공에 대해서 사죄한 말 중에 나왔습니다. 그는 사죄 장소로 마고 성(샤토 마고. 성castle은 불어로 샤토임.)을 선정했습니다. 사람들이 그곳을 선정한 이유를 묻자 그는 "프랑스인들 마음 한가운데에 보르도가 있고, 보르도의 한가운데 샤토 마고가 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히틀러(1889-1945)는 프랑스를 침공한 뒤에 프랑스의 항복 문서를 샤토 마고 와이너리(마고 성의 와인 양조장)에서 조인하게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만큼 보르도의 마고성과 와인 양조장은 프랑스인들에게 중요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히틀러는 전쟁 기간 중에 프랑스에서 수백만병의 와인을 탈취했습니다. 그중에는 샤토 마고, 로마네 콩티, 샤토 라피트 로트쉴드 등 프랑스 최고의 명품 와인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별장(독수리 요새)에 마련한 저장고에 수십만 병의 프랑스 와인을 보관해두기도 했습니다.


<샤토 마고> 와인의 병에 붙은 라벨을 보면 마고성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과 같이 생긴 마고성은 1811년 건축가 루이 꽁브(Louis Combes)가 설계를 했습니다. 이 성은 네오 팔라디안(Neo-Palladian)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이 양식은 16세기 이탈리아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디자인에서 유래한 새로운 양식입니다. 이 건물은 뛰어난 건축미 때문에 '메독(Médoc)의 베르사이유 (궁전)'라고도 불립니다. 보르도 지방에 속한 메독은 마고 마을이 위치한 곳입니다.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1899-1961)는 <샤토 마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내 삶에서 변하지 않았던 것은 내 손녀와 사토 마고에 대한 사랑이다."

그는 프랑스 보르도를 여행하다 <샤토 마고>의 맛과 향에 반하여, 1961년에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이 와인을 열정적으로 사랑했습니다. 그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가장 위로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와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손녀의 이름도 '마고'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주의 경제학자로 유명한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 1895)도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그것은 바로 샤토 마고 1848이다'라고 답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도 보르도 최고 와인으로 <샤토 마고>를 들어 격찬했습니다. 이러한 <샤토 마고>는 일본 소설 <실낙원>에도 등장합니다. 남녀 두 주인공이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마신 와인이 바로 이 와인이었습니다. 삼성 그룹 이재용 회장도 즐겨 마신다고 전해집니다.


가격이 비싼 와인은 맛이 가볍지 않고 점액질 느낌이 강하고 그 질감이 묵직하며 강하다고 합니다. 특히 와인이 목으로 넘어갈 때 천천히 흘러 들어가 목 넘김이 좋으며, 그 느낌에 집중하면 상당한 쾌감을 느낌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고 합니다. '와인의 여왕'이라 불리는 <샤토 마고>는 바로 그러한 와인입니다.


<샤토 마고>는 흙내음과 꽃 향기, 그리고 과일향과 향수의 향기를 느끼게 합니다. 떫은맛(탄닌감)이 매우 부드러워서 매끄럽게 넘어가는 것이 마치 실크 같은 부드럽다고 하며, 목을 넘긴 이후에도 그 향과 맛은 오랫동안의 긴 여운을 남긴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더욱 최고급 와인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다만 가격이 약 100만 원에서 200만 원을 호가하니 쉽게 맛볼 수 있는 와인은 아닙니다.



3) 프랑스 샴페인 <돔 페리뇽(Dom Pérignon)>


<돔 페리뇽>은 샴페인 중 가장 대표적이고 고급스러운 샴페인 브랜드입니다. 프랑스의 베네딕토회 수도사 돔 피에르 페리뇽(1638-1715)의 이름을 딴 와인입니다. 돔 페리뇽은 샹파뉴 지방에 있는 조그만 마을의 공무원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 가문은 여러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페리뇽은 수도사가 된 뒤에 수도원의 지하실 관리자로 일했습니다. 당시 지하실은 와인을 숙성시키는 창고로 사용되었는데 봄이 되면 저장했던 와인 통이 깨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겨울에 멈췄던 발효 현상이 기온이 오르면서 맹렬하게 다시 시작되어 술통을 깨뜨리고 폭발하는 것입니다.


페리뇽은 포도나무 성장을 조절하고, 썩거나 알맹이가 큰 포도는 버리고, 포도액과 껍질의 침용을 최소화하는 등 다양한 실험을 거쳐 와인의 재발효를 억제하고 술통이 깨지는 현상을 극복했습니다. 당시 상파뉴 지역 와인은 레드 와인이 주류였으나 페리뇽의 노력으로 샴페인 와인의 품질이 향상되고 생산이 획기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는 또 와인생산에 이물질을 첨가하지 않고 자연적인 발효를 통해 와인을 생산했습니다.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발명한 사람도 돔 페리뇽 수도사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돔 페리뇽> 샴페인은 알코올 도수가 약 12도이며 가격은 20만 원에서 100만 원 정도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포도 품종은 샤르도네와 피노누아가 많으며, 마실 때 온도는 6도에서 8도 정도가 좋습니다. 코스 요리에서는 보통 식사 시작 전에 나오는 음료이며, 잘 맞는 음식은 치즈, 조개류, 돼지고기 등입니다. 참고로 샴페인은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된 와인만 그렇게 부르며, 다른 곳에서는 스파클링(Sparkling) 와인이라고 표시합니다.


<돔 페리뇽>은 루이뷔통 그룹(LVMH) 산하 모엣 샹동(Moet & Chandon)이 생산합니다. 이 회사는 자사의 샴페인 홍보를 위해 칼 라커펠트, 마크 뉴슨, 앤디 워홀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 예술가들과 함께 광고 캠페인을 전개하고 부단히 새로운 상품 이미지를 창조 해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참고로 미국 출신의 앤디 워홀(Andrew Warhola Jr., 1928-1987)은 20세기의 대표적 아티스트로 꼽히는 예술가입니다. 미술, 영화 프로듀서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팝 아티스트로 대중문화와 광고, 및 소비 등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여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인물입니다. <돔 페리뇽 엔디 워홀 컬랙션>이 유명합니다.



4) 샹파뉴 지방의 샴페인 <파이퍼 하이직 >


프랑스 상파뉴 지방의 3대 샴페인으로 돔 페리뇽, 모엣 샹동, 그리고 뵈브 클리코를 꼽습니다. 돔 페리뇽 가격은 20원에서 100만 원 정도, 모엣 샹동은 약 10만 원, 뵈브 클리코 역시 10만 원 수준입니다. 그러나 가격이 30만 원에서 70만 원 정도 하는 <파이퍼 하이직>도 프랑스의 대표적인 샴페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파이퍼 하이직>은 맑은 느낌의 샴페인으로 망고, 키위 등의 열대 과일 향과 헤이즐넛, 아몬드 향의 섬세한 맛이 특징입니다. 상쾌하고 깔끔한 맛을 내며, 빵이나 토스트 혹은 신선한 과일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연말 연시나 화이트 데이에 특히 많이 팔리는 와인으로, 식후에 마시는 음료로도 인기가 있으며 마릴린 몬로(1926-1965)가 매일 아침에 한잔씩 마신다고 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몬로는 미국 LA 출신의 배우이자 모델 겸 가수로 1950년대와 1960년대 초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섹스 심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금발 미녀' 콘셉트로 유명한 그녀는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캐네디와 친했으며 각별한 관계였다고도 전해집니다. 미국 FBI는 그녀를 친 소련 공산주의자로 분류하고 감시하였고, 그녀의 지인 중에는 미국 공산당 당원들이 많아, 정치적인 화제를 몰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1962년 36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이러한 몬로는 샴페인 300병을 욕조에 풀어서 샴페인 목욕을 했는데 이때 사용한 샴페인이 <파이퍼 하이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샤넬 넘버 5(향수)를 입고(즉 알몸으로) 잠이 들고, 파이퍼 하이직 한잔으로 아침을 시작해요.” (Simon & Schuster, 1979년 5월)라고 발언하여 스스로 이 샴페인의 광팬임을 널리 자랑했습니다.


이런 <파이퍼 하이직>은 18세기 프랑스 궁정의 마리 앙트와네트 왕비가 즐겨 마셨으며, 유럽 14개 왕실의 공식 샴페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역사적인 와인입니다. 1785년 플로렌스 루이 하이직 (Florens Louis Heidsieck)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여왕을 위한 최고급 샴페인’을 생산한다는 목표로 와이너리를 설립했으며, 1837년에는 앙리 귀욤 파이퍼 (Henri-Guillaume Piper)가 회사를 물려받아 <파이퍼 하이직(Piper Heidsieck)>으로 개명했습니다. 그는 유명한 보석 및 패션 디자이너와 협업을 통해 와인의 럭셔리함을 홍보했습니다. 2011년에는 프랑스의 고급 와인 그룹 EPI가 이를 인수했습니다. 현재 이 샴페인은 칸 국제 영화제의 공식 샴페인입니다.



5) 이태리산 레드와인 <키얀티 클라시코>


<키안티 클라시코>는 이탈리아 키안티 지역 중에서도 전통과 역사가 깊은 투스카니(Tuskany) 지역에서 생산된 고품질 와인을 의미합니다. 투스카니에서 생산된 품종인 산지오베제를 80% 이상 사용해야 그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외에는 <키안티>라는 이름으로 와인을 생산, 판매합니다. 일반 <키얀티> 와인은 몇 만 원 수준의 와인이며, <키얀티 클라시코>는 17만 원에서 35만 원 수준의 고품질 와인입니다. 특히 이 와인은 엄격하게 관리하여 낮은 수확량을 유지하며, 높은 품질을 추구한다고 합합니다. 알코올 도수는 13도에서 14.5도 사이입니다.


<키얀티 클라시코>는 라벨에 '검은 수탉(Gallo Nero)' 상징이 붙어 있어 일반 키안티 와인과 구별됩니다. 검은 수탁 라벨은 오래된 역사적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830년대 이탈리아는 아직 통일되지 않은 도시국가 형태였습니다. 도시국가였던 피렌체(플로렌스)는 역시 도시국가인 시에나 사이에 오랫동안 영토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두 국가가 피를 흘리지 않고 국경을 정하기로 협상을 했는데, 그 방법은 각자의 수탉을 가지고 있다가 그 수탉이 울면 기병이 달려 나가 서로 만나는 지점을 국경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시에나 측은 크고 튼튼한, 하얀 색깔의 닭을 준비하여 잘 먹였습니다. 반면에, 피렌체는 작고 단단한 검은 닭을 선택하여 밤새 굶겼습니다. 새벽이 되자 시에나의 닭은 배가 불러서 여전히 자고 있었고, 피렌체의 닭은 배가 고파서 일찍 일어나 울었습니다. 덕분에 피렌체의 기병은 일찍 출발하여 시에나의 성 부근까지 달려 나가 넓은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키얀티 클라시코>는 이러한 이야기를 담아 라벨에 수탁 이미지를 강조했습니다.


오드리 헵번이 나오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도 <키얀티 클라시코>가 등장합니다. 이 와인은 풍부한 과일 향이 특징으로 체리, 라즈베리 등 붉은색 계통의 과일 향이 풍부하며, 신맛이 강한 편이며 떫은 맛이 부드럽고 복합적인 구조감을 가진다고 합니다. 숙성될 경우 커피나 가죽 향이 더해지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막걸리와 유사한 이 와인은 우리나라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



6) 미국산 고급 와인 <오퍼스 원>


1976년 5월 24일, 파리에서 와인 시음 행사가 있었습니다. 심사자들은 눈을 가리고 테이블 위에 올라오는 와인의 맛과 향을 심판했습니다. 결과는 미국의 캘리포니아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압도해 1등을 차지했습니다. 그동안 와인이라고 하면 프랑스 와인을 최고로 꼽았으며 당연히 프랑스 와인이 1등을 차지할 줄 알았는데 미국의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압도해 모든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행사를 '파리의 심판'이라고 부르는데, 파리의 와인 혁명이라고 불립니다. 이 정도로 프랑스 와인만이 최고급 와인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깨고 미국의 와인 특히 캘리포니아산 와인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린 사건이 파리의 심판입니다. 이후로 캘리포니아산 와인은 세계 최고 품질의 와인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오퍼스 원(Opus One)'이란 위대한 작곡가의 첫 번째 걸작이라는 뜻입니다. 미국산 레드와인 <오퍼스 원>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샤토 무통 로칠드와 미국을 대표하는 로버트 몬다비가 합작하여 만든 제품으로 미국에서는 고급 와인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 많은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트린 와인입니다. 프랑스의 전통적인 와인 양조법과 미국의 현대적이고도 혁신적인 양조 기술이 만나 탄생한 이 와인은 가격이 60만 원에서 80만 원 정도로 형성되어 있으며, 포도 품종은 카베르네 쇼비뇽이 주품종(77%)이고, 카베르네 프랑, 말벡, 메를로, 쁘띠 베르도 등이 섞여 있습니다. 쇠고기 스테이크나 갈비구이 등과 잘 어울리며 대기업 CEO들의 승진 인사 때 많이 팔리는 와인으로 유명합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의 소설 <와인 한잔의 진실>에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7) 프랑스 레드와인 <롱샴 까베르네 쇼비뇽>


와인 수업을 듣고 며칠 후, 시골 읍에 나가 대형 식자재 마트를 방문했습니다. 한쪽 코너에 위의 사진과 같이 무척 많은 와인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공간도 꽤 넓어서 놀랐습니다. 평소에 별 관심 없이 지나다녔는데, 와인 강의를 듣고 나서 보니 하나하나가 관심을 끕니다. 어느 나라 산일까? 프랑스 산 와인은 어떤 것이 있을까? 가격은 얼마나 될까? 둘러 보니 대략 다음과 같은 와인들이 있었습니다.


- 마주앙 레드와인 카버네쇼비뇽은 14,800원.

- 마주앙 화이트와인 샤도네이는 11,000원. (와인 다음에 나오는 단어는 포도 품종 이름입니다.)

- 마주앙 레드와인 메도크는 23,0000원. (여기에 나오는 메도크는 프랑스의 보르도 포도 산지의 지역 이름입니다. 이 상품은 마주앙이 메도크의 와인 양조장에 OEM 방식으로 생산을 의뢰한 제품입니다.)

- 산타리아 레드와인 카버네소비뇽은 15,000원.

- 롯데 베어풋 레드와인 피노누아는 16,500원.(피노 누아 Pinot Noir는 부르고뉴 레드 와인의 대표적인 품종으로 부르고뉴 전체 포도밭의 약 36%를 이 품종이 차지한다고 합니다. 투명한 색감과 섬세한 향이 특징인데, 피노 누아는 그늘에서 잘 자라며, 생산량 매우 적다고 합니다.)

- 옐로운테일 화이트와인 샤도네이는 11,330원.(샤도네이는 샤르도네 Chardonnay와 함께 브루고뉴 지방의 대표 품종으로 청포도(백포도)입니다. 참고로 부르고뉴 지방은 화이트 와인의 생산이 비교적 많습니다. 아울러 여러 가지 포도 품종을 섞어서 블렌딩 하는 보르도 와인과는 달리 단일 품종을 사용하여 포도주를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르고뉴의 와인은 동일한 품종이라도 생산한 마을이나 밭의 위치, 혹은 토양의 성분 등에 따라 맛이 서로 다릅니다. '테루아의 예술' 즉 '포도밭을 둘러싼 자연환경이 만들어낸 예술적인 맛과 향'은 이러한 특성을 가진 부르고뉴 와인을 칭송하는 말입니다.)

- 베인지 레드와인 샤또 마뇰은 47,360원.(샤또라는 말은 성곽이나 양조장의 뜻입니다. 샤또 마뇰은 프랑스 보르도의 메독 지역에 있는 마뇰 양조장, 즉 먀뇰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제품이라는 뜻입니다.)

- 스페인산 돈 산티아고 화이트 와인은 7,900원.(알코올 11도)

- 칠레산 1865 레드와인 꺄베르네 쇼비뇽은 37,900원.

- 칠레산 파타곤 리제르바 레드와인 까베르네 쇼비뇽은 25,000원.

- 프랑스산 롱샴 레드와인 까베르네쇼비뇽은 15,000원.(알코올 도수 13도)


가격은 대체로 1만 원에서 5만 원 사이였습니다. 저는 이 중에서 프랑스산 레드와인 롱샴 까베르네쇼비뇽을 골랐습니다. 정가 3만 원인데, 50% 할인하여 15,000원이라고 합니다. 제조사는 BARDINET VINS, 라벨에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ugnon) 100%'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와인은 짙은 보랏빛이 도는 진한 레드색상을 띠며 블랙베리향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으며, 각종 육류 요리와 치즈, 불고기 등과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


이 와인에 사용된 포도의 생산지는 알 수없습니다. '뱅 드 프랑스(Vin de France)'라고 쓰여 있으니 프랑스 안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보르도 지방에서 생산되었다면 '보르도(Bordeaux)'라는 표시를 하는데 가격은 훨씬 더 비싸집니다. '뱅 드 프랑스'란 프랑스 산 테이블 와인의 한 등급으로, 와인 등급 중 가장 낮은 것입니다. 이 등급은 일상 소비용 와인으로, 포도 생산지에 제한이 없어서 가격이 저렴합니다.


와인을 사 가지고 와 맛을 보고 싶었으나, 이날은 읍내 보건소에서 독감 접종을 한 날이었기 때문에 술을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접종이 끝나고 간호사가 "오늘과 내일은 술을 마시면 절대 안 됩니다"라고 해서 "막걸리 한잔만 마셔도 안 된가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막걸리는 와인보다 도수가 더 약하니 "한잔 정도는 괜찮습니다"라고 호응해 줄 줄 알았으나 간호사는 단호하게 "안 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마치 학생을 꾸짖는 학교 선생님 같은 엄한 표정을 지으며 자칫하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으니 절대 금주하라고 재차 강조합니다. 말하자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집에는 와인 따개도 없어서 코르크 마개로 된 뚜껑을 열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며칠 뒤 서울에 있는 딸 집까지 가지고 가서 조금 맛을 보았습니다. 맛을 보기는 했지만 역시 초보 중에 초보라서 알코올 맛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화이트 와인이나 막걸리보다는 취기가 더 많이, 더 빨리 올라왔습니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마셔야 제 맛을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종류의 와인을 자주 마셔봐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혜선 선생님이 강의 중에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와인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알려고 노력하고, 또 그 맛을 충분히 이해하려고 한다면 강남 아파트 두 채를 팔아도 부족합니다. 와인에 대해서는 상식 정도만 알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으며, 많이도 필요 없이 좋아하는 와인 하나만 있어도 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씀도 기억에 남습니다.


"와인테이블에서 중요한 것은 와인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어떤 와인을 마셨는지, 얼마나 비싼 와인을 마셨는지가 아니라 누구와 마셨는지가 중요하지요. 와인의 의미를 알게 된다면 인생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풍부해지고 우아해지고, 그래서 건강해지고, 사는 것이 즐거워지는 것이 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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