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농부학교 수업일지
12월 6일, 오늘은 2023년 겨울농사 학교 4번째 강의가 있었습니다.
제목은 <토종씨앗 이름에서 보는 전통농업>, 강사는 씨앗도서관협의회 대표 박영재 선생님입니다. 수업 자료는 2종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환경보존과 토종종자>라는 PPT자료이며 다른 하나는 약 18매 정도 되는 씨앗 관련 이야기 자료입니다. 생명과 씨앗 관련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먼저 PPT자료 목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생명의 출현
2. 식물의 등장
3. 식물의 진화
4. 씨앗의 생존법
5. 식물에서 작물로
6. 녹색혁명
7. 녹색혁명의 그늘
8. 씨앗이 전하는 이야기
강의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앞부분은 생명의 탄생부터 인간사회에서 녹색혁명이 일어나기까지의 이야기이며, 뒷부분은 씨앗과 관련된, 즉 씨앗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앞부분 내용은 어렵기도 하고 또 재미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선생님의 자료와 설명, 그리고 개인적으로 조사한 것을 토대로 이 부분을 주로 소개합니다.
생명의 출현은 수소와 수증기와 암모니아, 그리고 메탄이 가득 찬 원시의 대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번개가 그것을 재촉했습니다. 지구가 막 태어났을 때부터 약 10 억년 간, 즉 45억 년 전부터 35억 년 전까지 번개가 연평균 수십억 번을 내리쳤습니다.(주 1) 덕분에 아미노산이 생기고 단백질이 나타났으며 무기호흡하는 생물이 탄생하고, 광합성을 하는 생물(식물), 나중에는 유기호흡을 하는 생물(동물)이 나타났습니다.
생명의 출현은 세포(박테리아)의 공생으로 이어졌습니다. 박테리아라는 말은 '작은 막대기'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세균에는 막대기 모양 외에도 공모양도 있고 나선형 모양도 있고 다양합니다. 이런 다양한 모양의 세균들이 자기가 잘하는 것을 내세워 서로 도우면서 복잡한 구조의 생명체가 출현합니다.
동물보다 먼저 식물이 등장합니다. 식물은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과정을 통해서 진화를 거듭합니다. 뿌리, 줄기, 잎 등의 구별이 거의 없는 바닷속 조류에서 선태식물, 양치식물 그리고 종자식물로 진화를 합니다. 양치식물에 이르러서는 뿌리로 물을 흡수하고, 줄기와 잎이 생겼습니다. 이때만 해도 식물이 수정하는데 물이 필요하였으나 종자식물에 이르러서는 물도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바다에서 완전히 독립한 것입니다. 물기가 거의 없고 습하지 않는 땅에서도 식물은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식물의 진화는 토양과 기후 변화에 대해 적응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열대우림 지역에서도 반건조, 사막에서도, 타이가나 툰드라 지역에서도 식물들은 환경에 적응해 갔습니다. 종자식물은 겉씨식물에서 속씨식물로 발전했습니다. 이들 식물은 종자로 번식한 것은 같으나 겉씨식물은 석송이나 쇠뜨기처럼 포자수라고 하는 생식기관을 이용해 번식하며 속씨식물은 꽃이 생식기관입니다. 속씨식물의 종류는 26만 종으로 지구상의 거의 모든 식물이 이 속씨식물에 속합니다.
식물의 진화는 지구 표면을 이루고 있는 흙의 화학적인 원소를 잘 활용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흙의 구성비율을 보면 산소 47%, 규소 28%, 알루미늄 8%, 철 5%, 칼슘 4%, 나트륨 3%, 칼륨 3%, 마그네슘 2%, 기타 2%입니다. 말하자면 식물은 이러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진화한 것입니다.
식물의 진화에 따라 광합성 방식도 다양해졌습니다. 콩과 같은 온대 식물(C3식물)은 낮에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광합성 활동을 하지만 고온 건조 지역에 사는 옥수수나 사탕수수 등(C4식물)은 낮에 이산화탄소를 저장한 뒤에 그것을 가지고 광합성 활동을 합니다. 반면에 선인장이나 돌나물과 같은 사막의 식물은 밤에 이산화탄소를 저장했다가 낮에 그것을 이용하여 광합성 활동을 합니다.
씨앗은 휴면과 발아를 통해서 생명활동을 합니다. 가을 수확기간에 씨앗은 휴면을 하기 시작하여 다음 해 봄까지 생명활동을 정지합니다. 봄이 되면 발아를 시작하여 새싹을 틔워서 생명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번식을 위해서 동물들의 도움을 이용합니다. 개미는 1m 정도의 거리를, 원숭이는 850m 정도의 거리를, 그리고 코뿔소는 2km 정도의 거리를 이동하면서 씨앗을 널리 퍼뜨려줍니다. 둥근 귀 코끼리는 6km, 아프리카 코끼리는 65km까지 씨앗을 옮겨줍니다.
식물이 진화하는 과정을 들어보니 생명체의 변화와 발전 과정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어떻게 자연 스스로 이러한 진화를 해왔을까요? 정말로 어떤 전지전능한 신적인 존재가 있는 것일까요? 원시 대기 중에는 산소가 거의 없었습니다. 식물이 산소를 만들어 놓은 덕분에 동물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지구에는 질소가 78%, 산소가 21%, 나머지 1%는 이산화탄소를 포함하여 수소, 헬륨, 오존 등이 있습니다. 동물은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합니다.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활용하여 광합성 활동을 합니다. 식물과 동물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식물 중 일부는 인간의 농업혁명을 통해서 작물로 재탄생했습니다. 청주에서 발견된 소로리 볍씨와 같은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인간이 농사로 그것들을 이용하기 전에는 야생의 풀에 불과했으나 농업에 이용하면서 작물이 된 것입니다. 작물화가 가능한 식물은 아직도 많다고 합니다. 당장 시골에서는 집 주위의 잡초도 잘 지켜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뒤이어 일어난 요리혁명도 작물의 확대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설탕, 소금, 식초 등을 이용하면서 더 많은 식물을 식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멘델과 찰스 다윈 등이 불러일으킨 녹색혁명도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식물의 종류를 비약적으로 확대시켰습니다. 곡물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높인 유전자 변형 식물이 등장한 것도 이러한 혁명 덕분입니다. 그러나 녹색혁명 덕분에 작물의 다양성은 오히려 감소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녹색혁명이 불러온 부작용 때문에 농업에서 환경을 중시하는 농생태학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나친 개입이 지구 환경을 훼손하게 되니 인간 스스로 각성을 하게 된 것입니다. 과학의 힘을 맹종하고 자연의 오묘한 질서를 무시한 행동은 결국 인간을 파멸로 몰아갈 것 같습니다.
생명과 농생태학에 관한 설명 뒤에 선생님의 전문 분야인 '씨앗이 전하는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그중에 흥미로웠던 점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곡식농사는 씨앗 2개를 함께 땅에 심어 부부로 키운다. 그렇게 서로 의지해서 키우면 수확량이 많아진다.
- 콩은 대개 3개를 심어 하나는 사람이 먹고, 또 하나는 땅에 주고 다른 하나는 새에게 준다.
- 콩 하나만 심는 것도 있는데 그런 콩은 홀아비콩(밤콩), 하나갈이콩(메주콩)이라고 부른다.
- 우리나라 전통시대에는 기장, 조, 수수, 보리를 주로 먹고살았다. 이때 밥을 먹을 때 쌈을 싸서 먹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고려쌈을 들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추가 자료로 다음과 같은 현장 조사 자료들이 제공되었습니다.
1장 무도사 배추도사
2장 불로초 상추
3장 약파를 찾아서
4장 콩
5장 팥
6장 녹두
7장 완두
8장 강낭콩
이 자료는 박영재 선생님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토종 씨앗을 수집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를 적은 것입니다.
흥미로운 내용이 아주 많지만 몇 가지 눈에 띄는 내용을 간략히 소개합니다.
- 1장 : 순무는 우리나라에서 기원전에서부터 재배를 하였는데, 감자나 고구마가 나오기 전에는 대표적인 구황작물이었다. 배추는 고려말, 조선초에 개성상인들이 중국의 배추씨앗을 도입하여 전국에 퍼졌다. 속이 노란 잎으로 꽉 찬 결구배추는 임오군란 때 들어온 청나라 병사들을 통해서 도입되었다.
- 2장 : 상추는 고려시대 전에 중국을 통해서 전래되었다. 상추의 원래 이름은 부루다. 생으로 먹는 채소라는 뜻의 생채라는 말이 상추가 되었다. 정조 때의 학자 이옥의 <필운지>에 밴댕이회를 상추쌈으로 먹는 방법을 묘사한 글이 나온다.
- 3장 : 소변과 버무려진 재를 감사거름이라고 한다. 보통 과수원에서 낙엽이 진 이후에 주는 거름을 감사거름이라고 한다. 약파는 내한성이 강하여 김장철까지 잘 살아서 김장에 사용할 수 있다. 향이 좋고 누린내가 없어 육수 내는 요리에 제격이다.
- 4장 : 유럽과 아프리카는 주식으로 병아리콩을 섭취했고, 남미는 옥수수를 주식으로 강낭콩을 단백질원으로 삼았다. 아시아 지역은 쌀과 조, 수수, 기장을 주식으로 대두콩을 단백질원으로 삼았다. 러시아학자 바빌로프는 콩의 기원지로 한반도를 포함한 만주 일대라고 주장했다.
- 5장 : 콩과 작물 가운데 땅의 비옥도나 수분량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는 대표적인 작물이 팥이다. 재배일 수가 콩보다 짧아서 콩을 파종한 뒤에 빈 공간에 '듬성듬성 심는다.(부룩치기라 부름)' 그래서 이런 팥들은 그루팥, 부루팥이라 부른다. 수수도 그런 역할을 하는데 팥과 수수는 밭에서 서로 잘 어울린다.
- 6장 : 콩작물은 결실기의 낮 길이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낮의 길이가 긴 고위도 지방에서는 콩 알이 커진다. 제주도와 같은 저위도 지방에서는 알이 작아진다. 녹두는 그런 영향을 받지 않아 전국적으로 많이 심어 녹두나물, 즉 숙주나물을 만들었다. 풀을 뽑아 쌓아 놓고 그 위에 재를 덮고, 흙을 덮은 뒤 빽빽하게 녹두를 심었다가, 한 달 반 정도 지나 녹두가 꽃을 피우기 전에 뽑아서 모종용 흙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 7장 : 완두콩은 남부지방에서는 보리콩이라고 부르는데 북부지방에서는 마마콩 또는 인두마마콩이라고 부른다. 완두콩은 1년에 두 차례 수확할 수 있어서 두벌콩이라고도 부른다. 가을 파종도 가능한데, 가지나 고추를 수확한 뒤에 그 주변에 완두콩을 파종하여 이른 봄에 싹이 난 완두가 마른 가지나 줄기를 잡고 자라게 한다.
- 8장 : 강낭콩은 중국 강남을 통해서 도입된 작물이라는 뜻이다. 남미가 원산이며 남미에서는 대표적인 탄수화물원인 옥수수와 궁합을 이루는 단백질원이다. 광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꼬투리가 넓고 길다는 의미를 담았다. 강낭콩과 같은 넝쿨 작물을 옥수수와 같이 심을 때는 옥수수가 잘 버티도록 씨앗을 직파해야 한다.
자료 가운데는(7장) 농사의 시기와 관련된 전통시대 지혜가 나오는데 마지막으로 소개합니다. 기후(氣候)라는 글자는 24 절기의 '기(氣)'와 5일을 뜻하는 '후(候)'로 구성됩니다. 절기는 농사의 주요한 전환점입니다. 후는 절기 간격인 15일을 3으로 나눈 것인데 농사에서 풀매기나 수확 같이 반복되는 작업과 관련됩니다. 특히 수확물이 나오는 시기와 관련됩니다. 전통 장날이 5일 간격인 것은 이후 때문입니다. 또 '순(旬)'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한 달을 초순, 중순, 하순으로 나누듯이 순은 10일 간격입니다. 10일 사이에 비가 오지 않으면 가물었다고 하며, 비가 자주 오면 장마 졌다고 합니다. 10일을 염두에 두고 그 사이에 비가 오지 않으면 작물에 물을 주면 됩니다. 가물지 않는 한, 비는 알아서 내리니 일부러 물통을 들고 왔다 갔다 수고하지 말고 하늘에 맡기면 됩니다. 이 땅에 비가 오는 것을 지켜본 선인들의 지혜입니다. 이런 지혜를 전해주신 박영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주 1) <동아사이언스> 이현경 기자, '연간 50억 번 내리친 번개, 원시 생명체 탄생 도왔다', 2021.3.17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44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