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태홍 Dec 25. 2023

버림받은 아기 고양이 몽골이

시골 고양이 금순이 이야기

11월 27일, 아기 고양이 몽골이가 엄마하고 같이 외출한 지 이틀이 되었습니다.

엄마 고양이 금순이와 함께 나간 그저께, 밤 온도는 영하 7도까지 떨어졌습니다. 오늘도 최저기온이 영하 4도입니다. 엄마는 아기를 어디다 버리고 왔을까요? 다음날 혼자 돌아온 엄마 고양이는 하우스 안에서 우두커니 앉아있습니다.


시골 고양이 금순이는 하우스를 자기 집으로 알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하우스는 편안한 곳이 아닙니다. 하우스에 들어찬 온갖 물건들은 자연의 것들이 아닙니다. 의자며 작두기, 호미, 낫, 삽, 망치, 집게, 항아리, 물통 등등 모두가 낯선 것들입니다. 그래서 하우스의 옆구리 치마비닐을 넘어와 앉을 때는 항상 이 낯선 것들을 마주하고 앉습니다. 낯선 물건들을 관리하는 제가 하우스에 들어서면 금순이는 경계를 시작합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하악거립니다. 이 모습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지속적으로 먹이를 주면서 아부를 해왔는데도 변함없습니다.


그런데 아기 고양이 몽골이를 숲 속에 두고 하우스로 돌아온 첫날은 하루종일 숲 속을 향해서 앉아 있습니다. 치마비닐 옆에 놓아둔 박스에 앉아서 제가 가까이 가도 뒤돌아보지 않습니다. 두 귀는 숲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혹시 바람소리라도 크게 들리면 두 귀를 쫑긋거립니다. 아기 울음소리라도 들리는지 아니면 아기 발자국 소리라도 들리는지 온 신경을 그곳으로 집중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참 매정하기도 하고 혹독하기도 합니다. 영하 7도까지 떨어진 날씨에 아직 잘 뛰지도 못한 아기고양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엄마도 먹이가 없어서 저에게 신세를 지는 처지입니다. 그런 아기를 숲 속에 버려 놓으면 배고픈 살쾡이나 너구리에게 잡혀 먹힐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러기 전에 굶어 죽기 딱 좋습니다. 특히 겁이 많은 몽골이는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결국 굶어 죽겠지요.


금순이가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가 사료를 옆에 놓아주었습니다. 사료 통은 아기와 함께 쓰던 일회용 도시락 통입니다. 먹이를 한번 쳐다보고 먹지 않습니다. 바깥에서 일을 하고 몇 시간 뒤 하우스에 돌아가서 보니 여전히 밥을 먹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 봤습니다. 고양이도 상실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주1) 아기하고 같이 먹던 밥 그릇을 보고 아기가 생각나 먹이를 먹을 수 없었겠지요. 다른 도시락 통을 찾아 멀리 떨어진 곳에 두고 사료를 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 다시 돌아와 보니 그 통의 사료는 다 먹었습니다. 배가 고팠을 것입니다. 아기와 함께 먹던 통의 사료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엄마 고양이는 다시 치마비닐 옆의 박스에 올라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엄마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 몽골이를 숲 속에 버린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10월 말 경, 아직 코스모스와 노란 국화가 피어있을 때입니다. 그때는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면서 가을이 깊어 가던 시기였습니다. 엄마 고양이 금순이가 몽골이를 데리고 나가던 그날도 낮에는 날씨가 좋았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는 했지만 햇빛이 화창했습니다.


엄마 뒤를 따라가는 몽골이는 그날도 썩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문을 열고 바깥에 나오다가 그 모습을 봤습니다. 몽골이가 꾸물꾸물 엄마 뒤를 따라오는데 땅만 보고 움직입니다. 그러다 몽골이 앞에 큰 바위가 나타났습니다. 하우스 파이프를 땅에 박다가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아서 땅을 파서 캐낸 바위입니다. 높이는 몽골이 키의 3배 정도 되고 길이도 그 정도입니다. 바위가 비탈져서 몽골이는 무심결에 그 바위 위로 올라갔습니다. 비탈길이라고 생각하고 올라간 길이었는데 그것이 바위였고 몽골이 앞에 갑자기 낭떠러지가 나타났습니다. 


당황한 몽골이는 끙끙거리며 좌우를 살펴봅니다. 앞으로 몸을 내밀어 보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옆으로 돌아서 내려가려고 하지만 발이 바위 위에 붙어 있습니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움직여보는데 머리만 움직입니다. 겨우 1달 정도 지난 몽골이는 머리가 반이고 몸통이 반을 차지합니다. 가분수도 그런 가분수가 없습니다. 결국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무거운 머리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바위 옆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몽골이는 가을에 태어나서 털만 수북한 털복숭이입니다. 옆으로 굴러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둥그런 털실이 구르는 것과 같습니다. 두세 번 구르다 벌떡 일어납니다.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전혀 아프지 않은 모습입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엄마를 따라갑니다. 엄마 고양이는 벌써 저 멀리 가고 있습니다. 몽골이 발걸음도 빨라졌습니다. 그렇게 엄마와 아기는 숲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그 길 옆으로 하얀 구절초와 노란 국화가 함께 피어 가을 햇살에 반짝거렸습니다.


그날 저녁에 갑자기 천둥이 치고 비가 내렸습니다. 날씨가 으스스하게 바뀌고 다음날도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엄마는 아이와 같이 이틀을 지내고 혼자서 하우스로 돌아왔습니다. 동물들은 날씨에 민감할 텐데, 왜 그렇게 변동이 심한 날을 선택해서 아이를 분가시켰을까요? 낮에 출발할 때는 화창한 날 소풍 가듯이 갔습니다. 그리고 숲 속에 버리고 온날 저녁은 비가 내리거나 유독 쌀쌀하고 추웠습니다. 하우스에 살면서 인간에게 신세를 지기 시작하면 자연에서 살기 힘들 것이라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자연에 버리는 것이 몽골이에게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왜 하필 극한의 상황에 내던져 놓았을까요? 그것은 너무도 잔인합니다. 


다시 생각해 봅니다. 자연은 우리 동물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완전합니다. 동물들이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자연은 다양한 실험을 했습니다. 수만 년, 수억 년 동안 번창한 식물의 세계가 그렇습니다. 식물 이전에는 수많은 박테리아, 곰팡이 그리고 세포라는 생명체를 가지고 수십억 년을 지켜보면서 실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 결과 자연은 알았을 것입니다. '모든 생명은 죽지 않을 만큼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주어야 번창한다.' 


아마도 자연은 우리들 생명을 가진 존재들에게 3가지 큰 행복을 준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행복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생명체가 태어난 뒤, 고통 속에 사는 행복입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즉물적으로 바라보고 불행이라 생각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른 색깔의 행복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러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기쁨을 줍니다. 그것은 죽음의 행복입니다. 몽골이는 두 번째 행복을 찾아서 떠났습니다.



주1) 캡랩, https://cat-lab.co.kr/bbs/board.php?bo_table=0301&wr_id=520


매거진의 이전글 생애 두 번째, 5km 마라톤을 뛰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