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이야기
12월 16일, 마라톤 대회 두 번째로 참가하는 날입니다.
어제 서울은 영하 8도까지 떨어졌습니다. 한강시민공원 뚝섬 수변광장에서 2시에 출발합니다. 오후에 뛰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여유가 있습니다. 마라톤 코스도 이미 경험해 본 곳입니다. 10시쯤 아침 겸 점심을 먹었습니다. 마라톤을 뛸 때 부담이 있으니 물 마시는 것은 자제합니다.
준비물을 챙깁니다. 지난번에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양복바지를 입고 그냥 가서 뛰었지만 이번에는 잘 준비를 합니다. 신발과 양말은 아들에게서 사용하지 않는 것을 얻었습니다. 셔츠와 바지 그리고 셔츠 위에 입을 방한 조끼는 딸이 사 왔습니다. 나이 먹으면서 옷은 가능하면 사지 않는데 그것을 알고 딸이 챙겨줍니다. 사실은 여름에 입는 운동복을 준비했는데 날씨가 추우니 잘 됐습니다. 아이들의 지원을 받았으니 당분간은 마라톤을 계속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친김에 다음 달에도 그리고 그다음 달에도 마라톤 등록을 해둡니다.
집에서 준비한 운동복을 미리 입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헐렁한 바지를 입고, 두꺼운 잠바를 껴 입었습니다. 현장에서 번거로울까 봐 러닝화도 집에서부터 신고 나갑니다. 바깥에 나서니 찬바람이 붑니다. 온도를 재보니 영하 3도입니다. 그럼 오후에는 기온이 더 내려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추운 날 마라톤은 어떤 것일까? 어제저녁에 비가 왔다는데 달리는 도로가 얼지는 않았을까? 달리면서 찬공기를 마시면서 숨 쉬는 것은 괜찮을까? 날이 추우니 걱정이 많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스크가 없습니다. 다시 돌아가 마스크를 찾아 가지고 나와 버스에 오릅니다.
지하철로 바꿔 타고 7호선 뚝섬 유원지역에 도착했습니다. 처음에 왔을 때와는 달리 마음이 편합니다. 지하철 출구 부근에 마라톤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습니다. 옷을 갈아입기도 하고 친구들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단체로 함께 참가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수변 광장으로 내려가니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매우 세차게 붑니다. 한강의 물살이 마치 파도치듯이 몰려옵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행사 진행 본부 천막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런 천막도 없습니다. 진행 관계자가 방송으로 천막 철거에 대한 안내를 합니다. 바람이 너무 세차서 위험하니 천막을 설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마라톤 행사를 안내하는 현수막도 바닥에 눕혀놨습니다. 바람이 너무 세니 세우면 날아가버릴 것 같습니다. 온도를 재보니 영하 2도입니다. 온도는 조금 올라갔는데 바람이 세차니 추위가 더 심하게 느껴집니다.
번호표를 받고 참가 기념품으로 마스크를 받았습니다. 옷이며 가방을 보관할 커다란 비닐봉지를 받았습니다. 허허벌판에서 옷을 벗어 봉투에 담으려고 하니 비닐이 바람에 세차게 날립니다. 바람을 피해 트럭 옆으로 가니 차량 배기 파이프에서 매캐한 가스 냄새가 몰려옵니다. 다시 장소를 옮겨 급히 가방이며 바지와 잠바를 벗어 비닐봉지에 집어넣고 보관장소에 맡겼습니다.
바람은 갈수록 세게 붑니다. 뛰면서 저체온증을 조심하라는 방송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사방을 둘러보니 일회용 비닐 옷을 입은 사람들도 여러 사람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큰 비닐봉지에 구멍을 3개 뚫어 머리와 두 팔을 집어넣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 추운 날씨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도 있습니다. 패딩 재킷을 입은 사람, 긴 목도리에 긴 점퍼를 입은 사람도 있습니다. 단체로 참가한 사람들은 함께 준비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날씨가 추우니 부지런히 몸을 움직입니다. 높이 뛰어보기도 하고 팔 굽혀 펴기 운동도 해봅니다. 그 사이에 하프코스와 10km 뛰는 사람들이 출발했습니다.
5km 뛰는 사람들도 출발했습니다. 저는 휴대폰으로 초시계를 가동했습니다. 5km 뛰는 사람들은 대회본부 측에서 시간을 체크해주지 않습니다. 참가자 본인들이 알아서 챙겨야 합니다. 지난번에 저는 40분 만에 5km를 뛰었습니다. 이번에는 10분 정도 단축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복장을 나름대로 완전히 갖추었고, 많은 연습을 한 것은 아니지만 몇 차례 달리는 연습을 하였고, 또 길을 가다 혹은 지하철을 탈 때, 계단이 나오면 연습 삼아 뛰어서 오르내리기도 했습니다. 거기다 바람은 등뒤에서 부니 순풍에 잘 뛸 것 같습니다.
30분에 완주하려면 반환점에는 15분에 도착해야 합니다. 지난번에는 천천히 느긋하게 달리는 사람 뒤를 따라갔는데 오늘은 속도를 더 높여봅니다. 지난번에 달렸던 속도를 기억하면서 그보다는 더 빨리 달립니다. 천천히 달리는 사람들을 제치고 달립니다. 한참을 달렸더니 숨이 가빠집니다. 그래도 공기가 차니 마스크는 벗지 않습니다. 첫 번째 언덕 길이 나왔습니다. 경사가 심하지 않으니 계속 뜁니다.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참고 계속 뜁니다. 속도는 차츰차츰 느려집니다. 숨이 차서 마스크를 벗었습니다. 의외로 공기는 차지 않습니다.
다시 언덕 길이 나왔습니다. 이제는 경사가 심한 길입니다. 앞서가는 사람들 중에 걷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저도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어서 걸었습니다. 처음 달릴 때 보다 길은 더 멀어진 것 같습니다. 15분에는 반환점을 돌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집니다. 경사진 길은 계속되고 택시와 버스가 다니는 도로와 접한 지역까지 왔습니다. 강변북로와 잠실 대교가 만나는 지점입니다. 이 부근에 차들이 막혀 있습니다. 날씨가 추우니 다들 히터를 틀어서 그런지 차량에서 나오는 배기가스가 신경을 곤두서게 합니다.
배기가스를 피해서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비탈의 정상을 지나 내려가는 곳이 나왔습니다. 조금 속도를 내서 달립니다. 오른쪽 한강 너머로 롯데타워 건물은 이제 보이지 않습니다. 한참을 가니 잠실 철교가 보이고 반환점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제 곧 반환점입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반환점을 돌면서 급히 휴대폰을 꺼내봅니다. 초시계는 벌써 18분이 경과했습니다. 컵에 담긴 물을 집어드는데 다리 힘이 빠집니다. 아니 그럼 30분 만에 완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돌아가는 길은 아무리 빨라야 18분이 걸릴 텐데 그러면 이번에도 40분은 걸릴 것 같습니다. 바람을 타고 달렸는데도 이렇게 느리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마스크를 썼다가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완전히 벗었습니다. 그리고 경사진 길을 힘껏 뛰어 올라갑니다. 다시 차량들이 몰려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매연은 더 심하게 느껴집니다. 한참을 달려서 천천히 비탈길을 내려갑니다. 젊은 사람 두 사람에게 추월당했습니다. 그 뒤를 따라가려고 했으나 힘이 부칩니다. 빗물이 고인 웅덩이가 드문 드문 나타나 길을 가로막습니다. 앞에 가는 사람 중에 걷는 사람이 있어 같이 걷습니다. 30분 완주는 포기하고 40분 안에 완주하면 다행입니다.
아침에 밥을 너무 많이 먹은 모양입니다. 좀 더 무리하면 넘어올 것 같습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점심 먹고 바로 뛰어도 문제없었는데 확실히 지금은 그때와 다릅니다. 나이를 먹으니 소화기관도 늙었습니다. 천천히 달리면서 상태를 살핍니다. 멀리 왼쪽 한강 너머로 잠실 운동장이 보입니다. 속이 거북하니 머리도 혼란해집니다. 아무래도 준비가 덜된 모양입니다. 30분에 완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잘못된 착각이었습니다. 운동 복이며 러닝화를 잘 준비한다고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뒤에서 뛰어오는 사람들이 자꾸 추월해서 갑니다. 마지막으로 전속력으로 달려보려고 하는데 골인 지점은 아직도 한참 남았습니다. 잘못했다가는 다 달리지도 못하고 기권해야 할지 모릅니다.
바람은 앞에서 불어옵니다. 다행히 바람은 그렇게 세차지 않습니다. 좀 더 빨리 달려보려고 해도 이제는 발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무릎을 높이 올려야 속도가 조금이라도 빨라질 텐데 더 쳐져서 몸으로 끌고 갑니다. 멀리서 결승점이 보입니다. 속도를 높여 봅니다. 왼쪽 무릎에 무리가 갔는지 불편합니다. 달릴 때 왼쪽에 너무 힘을 많이 준 모양입니다. 다음 준비할 때는, 맨 먼저 할 일이 달리는 자세부터 바로 잡아야겠습니다. 혹시 힘을 안 들이고도 잘 달리는 비결이 있는지도 조사해 봐야겠습니다. 처음 달릴 때보다 더 힘들고 기록도 좋아지지 않으니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겨우 결승점을 통과했습니다.
숨을 할딱이며 휴대폰을 꺼내 초시계를 확인합니다. 35분입니다. 어찌 된 일이지? 반환점 이후에 17분이 걸렸습니다. 더 힘들고 먼 길이었는데, 그리고 더 느리게 달린 것 같았는데 1분이나 빨랐습니다. 대회 본부에서 주는 메달을 받고, 물 1병, 빵 1개, 주스 1개, 그리고 바나나 1개를 받았습니다. 물을 마시면서 메달을 꺼내봅니다. 힘들게 달려서 그런지 메달이 정말 메달 같습니다. 자랑스러운 메달입니다. 맨 처음 달릴 때 보다 5분 을 단축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출발선에서 반환점까지는 올라가는 길이 많았습니다. 반환점을 돌고는 내려오는 길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반환점을 돈 뒤에 1분이 단축된 것입니다.
마라톤을 처음 뛴 날, 집에 와서 밤에 잠을 자고 그다음 날 일어났는데 온몸이 개운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뻐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상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잠을 잔다는 것은 머리만 쉬는 것이 아니라 온몸이 쉬는 것이라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이날 두 번째 마라톤을 뛰고 나서는 마라톤 뛴 날, 그리고 그다음 날도 그런 상쾌한 느낌을 경험했습니다. 열심히 뛴 결과입니다. 온몸의 근육을 전부 사용해 뛰니 온몸이 피곤해지고, 모든 근육들이 밤에 푹 쉬게 된 것입니다. 쓰지 않은 근육을 더 많이 사용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뛰는 자세를 잘 배워야겠습니다. '운동은 자세'라고 외쳤던 친구의 말을 되새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