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휴지에서 살펴본 전통 채소농사>

2023년 농부학교 수업일지

by 임태홍

2024년 1월 3일, 전통농업연구소에서 주최하는 겨울 농사학교 7번째 강의가 있었습니다. 강사는 풀무농업 고등기술학교 오도 교수님이었습니다. 제목은 <관휴지에서 살펴본 전통 채소농사>입니다.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관휴지(灌畦志)' 가운데 관(灌)은 물을 댄다는 뜻입니다. 휴(畦)는 밭두렁을 말하는데, 밭두렁은 밭의 경계, 즉 뙈기입니다. 그러므로 '휴전(畦田)'이란, 밭두렁으로 사방을 둘러싼 두렁밭을 말합니다. '관휴지'의 의미는 밭에 물을 대서 작물을 가꾸는 것에 관한 책이라는 뜻입니다.


『관휴지(灌畦志)』는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가운데 『본리지』 다음에 나오는 서적입니다. 4권 2 책으로 권 14와 권 15가 한 책, 권 16과 권 17이 또 한 책입니다. 식용 작물과 약용 작물에 관한 서적으로 온갖 채소류, 나물류, 해초류, 약초류의 재배법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말하자면 채소농사와 약초농사의 백과사전입니다.


먼저 관휴지의 전체구성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풍석문화재단에서 2022년에 번역 출판한 관휴지는 2권(『관휴지 1』과 『관휴지 2』)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와당에서 2010년에 출판한 『관휴지』는 번역상의 많은 오류가 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관휴지 1』은 권 1과 권 2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권 1은 총서로 밭 관리(농지 만들기), 파종, 모종 심기, 물 주고 북돋우기, 수확 및 저장하기 관련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농지 만들기를 살펴보면 1) 채소류를 심기 위한 두렁밭(휴전) 만드는 법, 2) 풀 열매를 심기 위한 구전(區田) 만드는 법, 3) 채소나 과일나무를 심기 위한 포전(圃田) 만드는 법, 그리고 4) 약초밭 만드는 법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과일나무를 심는 포전 만드는 법을 살펴보면 "밭가에 농막을 짓고, 밭 주위에는 뽕나무를 둘러 심어서 양잠의 이익을 도모하고, 안쪽에는 모두 채소를 심는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채소를 심을 때는 한쪽에 여러 해 오래도록 자라는 부추를 심고 철에 따라 새로 나는 채소를 번갈아 심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땅이 더 넓다면 채소 외에도 삼, 모시, 과일, 곡식 등 작물을 함께 심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권 1에는 또 종자 고르는 법, 종자를 보관하는 법, 종자 담그는 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으며 채소 재배법, 싹을 틔워 종사를 심는 법, 씨앗을 심고 즉각 채소 싹이 나게 하는 방법, 씨앗에 물을 대어 발아를 촉진하는 법, 종자를 덮어 발아를 촉진하는 법, 그리고 물 주기와 거름 주기, 거름 저장법, 벌레 물리치는 법, 거름이 되는 똥떡을 만드는 법, 채소 보관법 등에 대해서도 자세한 소개가 담겨 있습니다.


참고로 『관휴지』를 읽으면서 알아 두어야 할 농사 용어로 '삶다'의 뜻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이 '삶다'라는 말은 물에 삶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밭의 흙을 잘게 부수어 부드럽게 만든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책을 읽을 때 주의해야겠습니다. 또 『관휴지』에 나오는 단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소개가 있었습니다.


1척 = 2.3cm (아마도 23cm.)

1보 = 5척(1.15m). 2보는 2.3m임.

1 묘 = 240보(약 150-200평)

1경 = 100 묘

1승 = 한 되

1석 = 한 가마(한섬)

1두 = 1말


참고로 1척의 길이는 후한(後漢) 때는 23cm, 서진(西晉)은 약 24cm, 동진(東晉)은 약 25cm, 백제 근초고 왕 때는 25cm, 조선은 약 31cm, 대한제국 시대는 약 30cm였다고 합니다.


권 2는 채소작물에 대한 설명이 실려있습니다. 채소 종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욱, 파, 자주색 파(紫葱), 부추, 염교(돼지파, 락교라고도 함), 마늘, 생강, 겨자, 개람, 순무, 무, 배추, 쑥갓, 운대, 시금치, 나팔꽃나무, 근대, 상추, 개자리, 비름, 고추, 양하, 고수, 층꽃나무, 나리, 석잠풀, 차조기, 회향, 미나리, 순채, 여뀌, 버섯, 두릅, 기타 참고할 만한 채소, 산과 들에서 나는 채소, 그리고 바다에서 나는 채소 등입니다.


참고로 순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노련한 채소 농부들은 8월 22, 23일경, 처서가 되기를 기다린 뒤에 비로소 순무와 무를 심는다. 순무 싹이 나면 김을 매지 않는다. 씨앗을 심을 때는 흙의 습기를 이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흙이 습하면 마르면서 땅이 굳어져서 새로 나온 잎이 타버리기 때문이다."


한편, 서유구는 배추를 고랑에 심기를 권했는데, 고랑에서 배추가 자라면 바람을 맞거나 햇볕을 쬐지 않으므로 노란색 속잎이 통통하며 부드럽기가 다른 지방에서 나는 배추 중에 대적할 만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시금치에 대해서는 심을 때는 반드시 그 종자를 으깨서 껍데기가 벌어지게 해야 씨앗에 물이 스며들어 불어나기 쉽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금치가 자랐으면 더 이상 똥거름을 써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또 봄에 심은 시금치는 벌레가 많아서 가을에 심은 시금치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권 2는 각 작물별로 키우는 방법에 대한 상세한 요령을 제시하였습니다.


이외에도 각 작물별로 섞어짓기 사례도 서술되어 있으며, 녹비작물로 활용하는 방법도 적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파의 경우, 봄에 녹두를 심은 다음 5월에 녹두를 갈아엎어 죽인 다음에 대파를 심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돈이 되는 작물에 대한 소개, 벌레를 피하는 요령, 저장하는 방법, 열매를 무성하게 키우는 방법 등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관휴지 2』는 권 3과 권 4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권 3은 열매 작물, 권 4는 약용 작물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권 3은 오이, 동아, 호박, 참외, 박, 가지, 토란에 관한 내용입니다. 권 4는 인삼, 둥굴레, 지황, 당귀, 도라지, 모싯대, 삽주, 쇠무릎, 천문동, 맥문동, 결명자, 더덕, 궁궁이, 노야기, 형개, 박하, 방풍, 우엉, 질경이 등 약으로 사용하는 작물에 관한 설명이 들어 있습니다.


참고로 가지를 수확하고 저장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오에 통통하고 큰 가지를 딴다. 꼭지를 제거하지 않고 밀랍을 녹여 여기에 꼭지와 가지 사이를 담가 밀랍을 굳힌다. 이에 앞서 촘촘하게 짜인 대바구니에 대껍질을 바닥에 깔고, 재를 두 층으로 두껍게 깐다. 재 위에 가지를 놓고, 가지 위에 다시 재를 덮는 다. 이런 식으로 가지와 재를 층층이 놓아서, 가득 차면 대껍질로 윗면을 덮은 다음 기름 먹인 종이로 두껍게 봉한다. 그런 다음 석회를 발라 깨끗하고 건조한 곳에 둔다. 이렇게 하면 겨울이 되어도 방금 딴 가지와 같다."


이렇게 『관휴지』에는 각 작물별로 키우는 방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저는 수업 맨 처음에 선생님이 설명한 '휴전', 즉 '두렁 밭'에 대해서 흥미가 생겨 『관휴지』를 읽어보고 선생님이 제공한 자료를 다시 읽어본 뒤,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여기에 정리하여 소개합니다.


먼저 『관휴지 1』의 밭 다스리기 중에서 두둑 만드는 법을 읽어보면 "두둑을 길이 2보, 너비 1보로 한다. 땅을 깊이 파고 숙성된 분뇨 거름을 흙과 1대 1 비율로 섞어서 그 위에 1치 두께로 뿌린다.(畦長兩步,廣一步深掘,以熟糞對半和土,覆其上,令厚一寸)"라고 했습니다.(이 번역은 2010년에 소와당에서 출판된 번역본 17쪽을 참고했습니다.) 이 번역을 보면 밭은 두둑으로 되어 있고, 길이가 2보(2.3m), 너비가 1보(1.15m)입니다. 그런데 풍석문화재단의 홈페이지에 게시된 관휴지 소개 자료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습니다.


"휴전(畦田)은 풍석(저자 서유구)이 생각할 때 채소·약초 농사를 짓는 밭의 기본 구조를 의미한다. ‘휴(畦)’를 이랑, 두둑, 고랑으로 옮겼는데 의미가 통하지 않아 ‘두렁밭’으로 풀었다. 풍석은 채소 재배법으로 ‘구종법(區種法)’과 ‘휴종법(畦種法)’을 소개한다. 구덩이에 재배하는 법(구종법)과 두렁밭에 재배하는 법(휴종법)으로 간추릴 수 있다. 구종법은 지금도 오이 호박 같은 넝쿨 채소를 키울 때 쓰이지만 휴종법은 당시에도 지금도 쓰이지 않는 재배법이다. 휴전은 밭을 6척(약 140cm)마다 두렁으로 두르고 습기(물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 다음 두렁 위에 앉아 김을 매도록 만든 중국식 밭이다. (서유구가) 중국 농서를 검토해 찾아낸 농법으로 조선에서 꼭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주1)


그러니까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관휴지 1』의 밭 다스리기 중 '두둑 만드는 법(治畦法)'은 '두렁밭 만드는 법'으로 고쳐야 되고, '두둑을 길이 2보, 너비 1보로 한다.'는 말은 '두렁밭을 길이 2보, 너비 1보로 한다.'라고 고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두렁밭은 두둑이 위로 튀어나온 모양이 아니라 땅을 파낸 모양이 됩니다. 그러고 보니 수업시간에 오도 선생님에 배포한 자료('두렁밭 만드는 법')에 두렁밭의 모습이 그림으로 잘 그려져 있습니다. 그 그림에 두렁밭은 마치 텃밭 상자같이 보입니다. 두렁밭은 '길이가 2보(2.3m), 너비가 1보(1.15m)' 크기이며 그 안을 파내고 거기에 작물을 심는 것입니다. 이런 크기의 밭이 여러 개 연달아 이어져 있는 것이 두렁밭의 전체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풍석문화재단의 앞의 인용문을 보면, 휴전(두렁밭)은 우리나라에는 없는 형태의 밭으로, 중국식 밭이라고 합니다. '휴(畦)'라는 글자는 밭두둑, 경계, 두렁 그리고 구획된 밭을 표현하는 한자입니다. 그래서 휴(畦)라는 글자가 원래 밭의 모습을 나타내는 상형 문자일까 조사해 보니 아닙니다. 『설문해자』를 보면 '휴(畦)'는 밭(田)을 세는 단위입니다. 50 이랑(畝)을 '휴'라고 하였습니다.(田五十畝曰畦) 두둑이나 밭의 경계는 반(畔)이라고 하였습니다.(田界也.) 『설문해자』의 저자 허신(許愼, 58? ~ 147?)은 후한 때의 학자이니, 휴(畦)는 그 당시까지는 밭을 세는 단위로 사용하다 나중에 밭두둑의 뜻으로 전용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밭(田) 50이랑을 휴()라고 부른다.'는 말을 곰곰이 살펴보면 밭(田)과 '휴(畦)'자 왼쪽에 붙은 밭전 부(田)가 두렁밭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말하는 밭의 모습을 살피려면 단위를 말하는 휴(畦) 자를 볼 것이 아니라, 밭 '전(田)'자를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휴전이라는 두렁 밭의 모습은 '田'와 같은 모습입니다. 사방에 두둑이 있고 그 가운데는 물을 가두고 작물을 심는 곳입니다. 갑골문의 밭 '전'자는 '口'가 9개 혹은 12개가 함께 모여있습니다. 그런 것이 원래 전통 중국식 밭의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런 밭의 모습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아마도 중국문명이 시작되고, 한자가 태동된 장소였던 황토고원에서 중국식 두렁밭의 원형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황토고원은 비가 아주 적게 내리고, 고산지대에서 바람이나 빗물에 의해서 쉽게 황토가 날리고, 떠내려가는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황토고원은 요즘도 연 강수량이 300∼450㎜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연평균 강수량 1,300mm의 1/4 정도입니다. 세계 평균 강수량은 880mm라고 합니다. 그러니 황토고원은 세계 평균의 반에도 못 미치는 비가 내립니다. 황토고원은 높이가 1,000m에서 2,000m 정도이며 연 강수량의 60∼70%가 7월∼9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내린다고 합니다. 그때에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하여 황토가 평지로 쏟아져 내립니다. 그래서 비가 적게 왔을 때나 혹시 많이 왔을 때도 물과 황토를 가두어 두고, 작물을 키우기 위해서 땅을 파고 사방에 두둑을 올린 두렁밭이 생긴 것입니다. 물이 적은 아프리카의 사막 지역에도 땅에 구덩이를 파서 작물을 심는 농법이 있습니다.(주2) 아프리카식 두렁밭입니다. 그러나 강우량이 충분하고, 장마철에는 많은 비가 쏟아지는 우리나라에는 그런 두렁밭이 필요없습니다. 그래서 발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 전(田)은 물이 담긴 밭을 뜻합니다. 그러니 논이나 밭은 모두 '전(田)'이라고 표기합니다. 엄밀한 표현이 필요할 때 밭은 '한전(旱田, 마른 밭)', 논은 '수전(水田)'이라 부릅니다. 우리나라는 밭에 물이 없으니 '전(田)'이라고 할 때는 물이 마른 밭을 뜻하며, 물이 있는 논을 표현할 때는 답(畓)이라는 우리식 한자를 만들어 썼습니다. 두둑이 특별히 중요하지 않으니 땅을 파내지도 않고 밭마다 빙 둘러 두둑을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두렁밭이 없었던 것입니다.


한편 일본어 '타(田)' 혹은 '덴(田)'은 논을 뜻합니다. 밭 안에 물이 있는 중국식의 '밭(田)'의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아마도 이유는 일본이 영향을 많이 받은 중국 강남지역의 논(田) 문화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밭'에 해당하는 한자는 따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일본식 한자 '하다케(畑)'입니다. 일본의 하타케는 '불(火)'이 있습니다. 불로 만든 밭, 즉 화전이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화산 폭발이 많아 화산재로 만든 밭이라는 의미도 담겨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사람들은 '田'자를 보고 마른 밭으로만 생각하고 논의 뜻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논으로만 생각하고 불탄 재가 가득한 밭의 뜻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중국의 두렁밭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중국적이고, 매우 특이한 형태의 밭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 1) 관휴지 소개, http://pungseok.net/?page_id=205, 풍석문화재단, 2024.1.23. ( ) 안은 필자가 추가.

주 2) 크랩, 「아프리카의 황량한 땅에 ‘구덩이’를 파자 나타난 놀라운 변화」, https://www.youtube.com/watch?v=eP8ZBbnUGjA, 202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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