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을 까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텔레비전만 켜둔 거실에, 엄마가 말을 건넸다.
“그날은… 괜찮았어?”
손끝이 잠깐 멈췄다.
귤껍질을 반쯤 벗기던 손, 텔레비전 소리를 따라가던 눈길이 엄마 쪽으로 돌아갔다.
“그날..?”
“그날… 너 밥 먹자마자 8시도 안 됐는데 홀랑 방에 들어가서 안 나왔잖아. 이틀 전인가, 삼 일 전인가.”
나는 속으로 곱씹었다.
이틀 전… 그날 뭐 했더라.
지하철에서 졸다 내렸고, 집에 와선 밥을 먹고, 윤아랑 말없이 이어폰을 나눠 낀 채로 누워 있었다.
그날은 이미 저녁 먹은 설거지도 끝냈고, 종량제 쓰레기도 버렸고, 나름 할 일을 모두 마치고 하루치의 피로가 접혀 침대 속에 누워버린 날이었다.
“그날, 뭐… 그냥 피곤한 거 말곤 별 거 없었어. 왜?”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귤을 깠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하지만 그 ‘피곤해 보이던 얼굴’이, 이틀 동안 엄마 마음에 걸려 있었단 걸 나는 알았다.
엄마는 늘, ‘그날’을 몇 밤 지나서 묻는다. 그날이 당일이면 좋겠지만, 엄마의 시간은 걱정이라는 곡선을 따라 조금 늦게 도착한다.
아빠도 비슷하다.
어젯밤, 맥주캔을 따며 내게 물었다.
“너 목요일 저녁에… 목소리가 좀 안 좋았어. 무슨 일 있었어?”
나는 목요일을 떠올렸다.
이미 냉장고 속 반찬이 두 번은 리필된 날.
“아니, 그냥 목이 좀 잠겨있던 거야. 아무 일 없었어.”
아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뉴스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말았다.
가끔, 부모님의 걱정은 양자역학처럼 도착한다.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 장면에, 파동처럼 도달하는 감정.
사건은 과거지만, 걱정은 현재에 도착한다.
우리는 대개 하루를 살고, 잊는다.
그날 일은 그날 저녁이면 희미해지고, 그저 그런 날들로 덮인다.
하지만 부모는, 지나간 날을 되감는다.
마음속에 ‘괜찮았는지’ 한참을 묻다가, 어느 조용한 날, 아무렇지 않게 꺼내 묻는다.
사과 껍질이 탁자 위에 동그랗게 말렸다.
그날도 괜찮았고, 오늘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나는 안다.
이틀 늦은 안부가, 때로 가장 따뜻하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