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싸움 뒤엔 항상 깊은 침묵이 따라왔다. 식탁은 조용했고,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바닥을 긁는 것처럼 거슬렸다. 아빠는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며 밥을 먹었고, 엄마는 설거지를 하며 등을 돌렸다. 동생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정적의 균열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때를 재고 있었다. 언제쯤 우리가 다시 말할 수 있을까.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결국 먼저 말문을 여는 건 대부분 나와 동생이었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우리 오늘 영화 볼까?” 동생이 나지막이 말하면, 나는 마치 오랜 준비를 마친 사람처럼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바깥으로 나섰다.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함께 웃었고, 돌아오는 길엔 근처 공원을 걸었다. 강변길을 따라 손등에 부딪히는 바람을 느끼며, 서서히 서로의 온도를 되찾아갔다. 저녁이 되면 엄마가 묵은 김치를 꺼내고, 아빠가 술을 따르며 어느새 옆자리에 앉았다. TV에서는 예능이 흘러나왔고, 누군가 연예인의 얘기를 꺼내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그렇게 다시 하나가 되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니, 사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우리는 무너졌고, 다시 쌓아 올리는 중이라는 것을. 매번 무너졌다가도,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완전히 부서지지 않으려는 어른들의 깊은 양보와 다짐이 만들어낸 화해였다. 그들의 자존심과 고집은 잠시 내려놓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다시 맞닿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어느 주말, 또다시 아빠가 말한다.
“우리 정선이나 갈까?”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둘,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챙기고, 현관문 앞에 운동화를 나란히 둔다.
다시, 네 사람은 차에 오른다.
창밖엔 느지막한 햇살이 흘러내리고, 라디오에선 오래된 발라드가 흐른다.
엄마가 따라 흥얼거린다.
아빠는 그 소리에 괜히 창문을 조금 더 열고, 바람을 끌어들인다.
정선을 향해 핸들이 부드럽게 돌아가고, 아스팔트 위로 우리의 무거웠던 나날들이 묵묵히 미끄러져 나간다.
정선의 공기는 여전히 고요하고, 무겁도록 맑았다.
시장 입구에서 퍼지는 강냉이 향이 길목을 채우고,
우리는 메일 전병 하나, 올챙이국수 4인분을 포장한다.
익숙한 동선처럼, 익숙한 침묵처럼, 아무렇지 않게.
정선 어귀, 오래된 여관의 구석.
벽지는 군데군데 벗겨졌고,
창밖으론
미등이 꺼진 채 선 채소 트럭 하나가 잠든 골목.
그런 방이 우리를 다시 이어놓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넷이 마주 앉았다.
아직 김이 남은 올챙이국수와
가지런히 썰어놓은 메밀 전병이 식탁을 채운다.
양은잔도 놓인다.
아빠가 막걸리를 따르고, 나도 사이다를 따른다.
그 순간, 동생이 나를 바라본다.
그 애의 눈이 아주 살짝, 웃는다.
나는 그 눈길을 놓치지 않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
우리는 서로를, 이렇게 다시 품는다.
비워졌다가도 다시 채워지고,
상처 입히다가도 곁에 앉아 밥을 먹는 사이.
무너졌다가도, 어떻게든 다시 세우며 살아내는 가족.
언젠가는 이 조용한 균열마저
지독히 그리워질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 짧고도 맑은 평화가
조금만 더 오래 머물다 가기를 바란다.
가족은 조용히, 아주 조용히 각자의 잔을 든다.
이 순간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