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몰랐다. 우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태풍이 몰아치기 전 바다는 오히려 고요하다는 것을.
열두 살. 계절로 치자면 늦여름, 태양은 여전히 맹렬했지만 그 속에서 서늘한 바람이 깃들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 해 여름, 나는 처음으로 부모의 싸움을 또렷이 기억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전에도 다툼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어렸거나, 혹은 그 싸움들이 아직 나를 흔들 만큼 거칠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날은 아마도 생활비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확한 단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엄마의 목소리는 얇고 날카로웠고, 아빠의 목소리는 눌리고 둔중했다. 나는 식탁 한 귀퉁이에 앉아, 밥을 씹는 둥 마는 둥 하며 그들의 말다툼을 귀로 들이마셨다. 귀로 들었지만, 가슴이 아팠다. 뼈가 욱신거렸다. 이건 단지 소리의 문제는 아니었다. 말의 칼날이 우리를 자르고 있다는 것을, 나는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그 후로, 싸움은 간헐적으로 반복됐다. 평소엔 우리 가족도 여느 가족처럼 웃고, 함께 밥을 먹고, 서울로 나들이를 가고, 정선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빠는 가족을 사랑했다.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땐 늘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가고, 맛있는 걸 사주고, 사진도 찍었다. 엄마도 웃을 땐 정말 예뻤고, 동생과 나는 그 품 안에서 안심하며 자랐다.
하지만 그런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생활비는 늘 빠듯했고, 엄마는 가난한 친정 식구들에게도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말하지 않아도 집 안의 공기는 점점 무거워졌고, 나는 그 무게를 어린 어깨 위로 끌어안고 방으로 도망쳤다. 싸움 다음 날이면 밥도 먹지 않았고, 오줌도 참다가 겨우 화장실 한 번 다녀오는 게 전부였다. 방 안에서 시들어가는 건 나 혼자만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나는 참는 아이는 아니었다. 싸움이 반복되자,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 아빠가 서로를 찌르는 말들을 쏟아내면, 나도 불안의 심연에서 튀어나와 그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나는 중재자가 아니었다. 어린 심장으로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웠다. 침묵하지 못했고, 무너지는 집을 혼자 떠받치려는 듯, 울부짖고 다그치고 애원했다. 그런 나를 보고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애는 침묵으로 저항했다. 방 문을 닫고 이어폰을 꽂고, 자기만의 세상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가 그 애를 지키기 위해 애써야 했던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은 종종 행복했다. 정말 그랬다. 광장시장에서 빈대떡과 막걸리를 나누며 웃었고, 동묘의 골목을 걸으며 시간을 잊었으며, 정선의 펜션에 가서 곤드레밥을 비벼 먹고 홍게를 손으로 뜯으며 밤새 웃고 떠들었던 순간들도 있었다.
집 앞 전기구이 통닭을 사 들고, 뜨거운 닭다리를 서로에게 양보해 가며 하하 호호 웃던 그 순간들도 떠오른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너무 행복한 날이면 불안해졌다. 마치 폭풍 전야처럼. 지금 이렇게 웃고 있으니, 곧 무언가 부서질 거라는 예감이 불쑥 다가왔다. 행복할수록 그 예감은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런 삶이었다. 서로를 미워하고, 다시 사랑하고, 상처를 주고, 함께 울고 웃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평범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꼭 써야 했다. 기억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잊을 수 없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