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분명히 식탁 위에 뒀는데 왜 없어졌지?”
윤아가 부엌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소파에 누운 채 리모컨을 돌리다 말고 한마디를 던졌다.
“네가 그걸 거기 뒀다는 기억이 틀린 거겠지. 그럴 리 없다고 단언하지 마.”
“와 진짜, 언니는 맨날 말을 그런 식으로 하냐.”
툴툴대는 말투였지만, 정작 윤아는 곧 발걸음을 느릿하게 옮겨와 내 옆에 푹ㅡ하고 주저앉았다. 등과 등, 뺨과 뺨이 아닌 어깨로 느껴지는 체온. 대단한 말 없이도, 우리는 오래전부터 그런 식이었다.
우리는 어릴 적엔 정말 많이 싸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발끈했고, 서로의 방문을 꽝 닫으며 전쟁처럼 하루를 끝내기도 했다. 고무줄을 어디에 뒀느냐, 물을 누가 다 마셨느냐, 심지어는 누가 더 엄마한테 혼났는가 같은 사소한 걸로.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싸움은 다음날 아침이면 꼭 풀려 있었다. 냉동실에서 꺼낸 쌍쌍바 하나가 그 역할을 하기도 했고, 먼저 씻고 나오며 “욕조에 물 새로 받아 놨다”는 말 한마디가 그랬던 날도 있었다.
우리는 여느 자매들처럼, 함께 컸다. 그리고 다투면서,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있었던 것 같다. 상대의 맥락을 읽는 법, 혼자 있을 때보다 둘일 때 더 단단해지는 법. 그건 학교나 책이 가르쳐주지 않는 종류의 성장이었다.
진짜 변화는 윤아가 창업을 결심했을 때였다. 스물둘. 흔히 말하는 ‘아직 어릴 나이’였다. 세상은 경험보다 나이를 먼저 따졌다. 하지만 윤아는 그 기준과는 좀 달랐다.
꽃을 좋아하는 건 단순한 취향이 아니었다. 중학생 땐 학교 가는 길에 길가의 들꽃을 꺾어 책갈피에 눌러두었고, 고등학생 땐 계절마다 꽃시장을 검색하며 이름도 생소한 품종들을 외우고, 때때로 아빠를 졸라 양재 꽃시장에 갔다. 그녀는 꽃을 좋아했다기보단, 꽃을 다루는 손길에 마음이 담긴다는 사실을 일찍 알아챈 아이였다. 나와는 달랐다. 나는 늘 결과를 먼저 생각했으니까. 수익성, 안정성, 효율성. 그런 말들에 목소리를 얹는 어른들의 세계에 일찍 발을 들인 쪽이 나였다.
그래서 더 놀라웠다. 윤아가 말했을 때, 그 조용한 선언처럼 들리던 첫마디.
“언니, 나 꽃집 해볼까 해.”
이건 ‘하고 싶다’의 투가 아니었다. ‘하려고 한다’는 의지였다. 마치 오래 품어온 마음을 내게만 처음 꺼내 보이는 듯한, 그 나직한 한마디에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금세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에게 얼마나 소중한 결정인지를, 말보다 침묵이 더 잘 지켜줄 거라고 생각했다.
가족들은 당연히 말렸다. 친척 어른들은 너나없이 말했다.
“꽃집? 요즘 같은 세상에 장사는 아무나 하니?”
“그렇게 감정만 앞세워선 안 돼. 냉정해야 해.”
“직장을 먼저 잡고 해도 늦지 않아.”
그럴 때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애는 감정만 앞세운 게 아니었다. 윤아는 이미 수개월 동안 화훼 유통 구조를 조사하고, 근처 임대료 시세와 상권을 정리해놓은 종이 더미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쌓아두었다. 엑셀을 다룰 줄 몰라, 대신 손끝으로 하나하나 숫자와 계획을 적어내며 차곡차곡 정리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돈이 부족해 처음엔 유동인구가 적은 동네의 2층짜리 작은 상가, 1층의 좁은 평수 가게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마저도 윤아는 “꽃은 햇빛보다 손길이 먼저야”라며, 그 작은 공간을 기꺼이 정리해갔다. 그런 아이였다. 나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렸다기보단, 물었다. “내가 뭘, 어떻게 도와주면 돼?”라고.
어쩌면 우리는 그때부터 조금 더 가까워졌다.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진 것 같았다. 내가 몰랐던 윤아의 단단함, 윤아가 모르던 내 속마음. 싸우다 화해하는 그 반복 속에서도, 우리는 한 번도 놓지 않았던 손처럼, 더 익숙하고 편안해졌다.
요즘엔 그런다. 내가 늦게 퇴근하면, 윤아는 미리 알아챈 듯 냉장고에 내 최애 요거트를 하나 넣어두거나, 냉동실에 꽁꽁 얼어있던 만두를 미리 튀겨놓는다. 반대로 내가 그녀에게 ”요즘 피곤해 보여. 괜찮은거야 ?“라고 말하면, 윤아는 대충 웃으면서도 그날 밤엔 짧은 카톡 한 통을 보내온다.
“나 사실 오늘 좀 힘들었는데, 언니가 한 마디 해줘서 괜히 눈물 남. 고마워 ㅋㅋ.”
그런 말을 보면 괜히 뭉클해져서, 다음날 더 투덜대곤 한다. 괜히 머리 쓸어넘기며 “야, 감성팔이하지 마” 하고는 말끝을 흐리는 식으로.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윤아는 종종 웃는다.
“언니는 진짜, 겉은 제일 어른 같은데 속은 완전… 허당이야. 나는 알아. 언니 속마음.”
나도 안다. 윤아가 사람들 앞에선 웃고 떠들어도, 혼자 있는 시간엔 조용히 내면을 단련하는 아이란 걸. 그 단단함이, 나보다 훨씬 깊고도 건강하단 걸. 윤아는 엄마도, 아빠도 안 닮았다. 그냥 윤아였다. 우리 가족의 작은 꽃, 누구의 그림자에도 머물지 않는 자생적인 생명체. 그런 아이였다.
가끔은 그런 윤아 덕분에, 내 삶에도 봄이 온다.
그래서일까. 나도 가끔은 그 애가 부럽다. 그리고 고맙다. 내가 아무 말 없이 무너지려 할 때,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내 여동생이 바로 그런 존재라는 사실이.
진짜 가족이라는 건, 늘 잘 지내는 사이가 아니라, 싸워도 멀어지지 않는 관계 아닐까. 마주 보고 서 있지 않아도, 같은 계절을 느끼고 있다는 것. 나는 오늘도 그걸, 윤아에게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