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들
어떤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그것은 칼처럼 날카롭지 않아 더 무섭다.
무딘 말은 천천히, 깊게, 오래 상처를 남긴다.
그날, 나는 사람을 다치게 했다.
눈에 보이는 찢김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내 말은, 한 사람의 마음 어딘가를 건드렸다.
바쁘고 거친 회의 중이었다.
피곤한 얼굴들이 모니터에 반사되어 있었다.
상사는 마음에 들지 않는 자료를 앞에 두고
어떤 식으로 말할지, 말을 고르기라도 하듯
잠시 말을 멈췄다.
그 고요가 길어지자, 매워지지도 않은 공백을
견디지 못한 나의 입이 먼저 열렸다.
“그건 제가 아니라 박 주임이 정리했던 자료입니다.”
말을 뱉고 나서야 느껴지는 그 뉘앙스.
책임을 분명히 하려 했던 말이,
책임을 떠넘기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
그가 정면을 보던 눈을 잠시 떨구었을 때,
나는 직감했다.
지금 이 방 안에서 가장 불편한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그라는 것을.
그리고 가장 무례한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말한 나라는 것을.
우리는 회의실에서 흩어졌다.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고,
내 말은 공기 중에 잠시 맴돌다
이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아무도 그것에 오래 머물지 않았고,
아마 대부분은 금세 잊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날 저녁, 퇴근길 전철의 창에 비친 내 얼굴은
어딘가 낯설었다.
눈빛도, 입술도, 표정도 모두 평소 그대로인데
그 속에 들어 있는 사람만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비열하지도, 악의적이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를 다치게 했다는 사실은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되어, 묵직하게 나를 안에서부터 갉아먹기 시작했다.
기계음처럼 반복되는 역 안내 속에서
나는 조용히,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 감정은 내 안에 오래 남았다.
마치 몸속 어디에 작은 유리 조각 하나가 박힌 채
그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그 감정.
나는 그날 이후로 종종 나 자신을 미워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타인으로부터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고통의 근원이었음을 인식할 때
진정한 절망에 빠진다고 말했다.
나는 그 절망을 아주 일상적인 장면 속에서 경험했다.
사실 나는 그날,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저 정직하고 싶었고,
상황을 바로잡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정직함도 때론 폭력적이다.
사실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말들이 있다.
그리고 말은, 의도가 아닌 결과로서 남는다.
며칠 뒤, 나는 조심스레 그에게 말을 건넸다.
“늦었지만 그날 회의 때 미안했어요.“
그는 가볍게 끄덕이며 괜찮다고 했다.
그것이 용서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 끄덕임 하나에 매달려
오래도록 나를 붙들었다.
이후로 나는 말을 늦게 한다.
누군가를 향한 판단은, 그 사람을 이해한 다음에야
조심스레 꺼내기로 했다.
그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아무 말도 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말은 빠를수록 가볍고, 무거운 말은 언제나 늦는다.
살면서 우리는 많은 실수를 한다.
그리고 어떤 실수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내 어딘가에서 숨을 쉰다.
그날의 말처럼.
나는 아직도 가끔 그 회의실을 떠올린다.
조용했던 공기, 얼어붙은 얼굴,
그리고 내 무심했던 목소리.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을 자각하는 능력은,
어쩌면 우리에게 유일하게 남겨진 윤리일지 모른다.
그 자각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바로 그 고통이,
우리가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낳는다.
그날의 실수는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기억 안에 주저앉지 않기로 했다.
말이 지나간 자리에서, 나는 사람을 배웠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그 깨달음이 나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천천히 말하고,
조심스럽게 듣는다.
그것이 사람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이고,
과거의 나를 용서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