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어린이에게

by 난화

우리는 모두, 한때 어린이였다.

이 문장을 조용히 되뇌는 순간,

우리 안에 조용히 숨어 있던 누군가가 눈을 뜬다.

낡은 운동화 끈을 풀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던 아이,

언젠가는 커서 멋진 사람이 되겠다고 믿던 아이,

혼자 이불 속에서 울음을 삼키던 아이.

그 아이는 아직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어린이라는 단어는 작고 가볍지만,

그 속엔 온 우주의 가능성이 접혀 있다.

언어를 배워가기 전에도 아이는 사랑받고 싶어했고,

걷기 전에 먼저 품에 안기길 바랐다.

세상에 왔다는 이유만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

그게 바로 어린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 순서를 자주 뒤집는다.

먼저 일하고, 먼저 상처받고,

먼저 견디는 아이들이 있다.

전쟁터에서 무너진 학교 책상 위로

손가락을 올리는 아이,

비닐하우스 안 작은 탁자에서

밤을 지새우는 이주노동자의 아이,

게임 속 세계가 유일한 탈출구인 방 안의 아이.

그들에게 ‘어린이날’은 하루의 쉼이 아니라,

삶 전체를 묻는 질문이다.

“이곳은 너에게 안전한가?”

“우리는 너를 지킬 준비가 되었는가?”


어린이날은 사실, 어른을 시험하는 날이다.

우리가 어떤 세상을 남기고 있는지,

그 세상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바라보게 하는 날.

풍선과 인형의 날이 아니라,

무릎을 꿇고 눈을 맞추는 날이다.

우리가 만든 이 거대한 구조물 위에

아직 서툰 걸음으로 서 있는 존재들에게

다정한 길잡이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 앞에 서는 날.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향한다.

당신 안에도, 언젠가 멈춰 선 채

지금까지 따라오지 못한 한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에게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었어.”

“네가 겪은 일은 충분히 아팠고,

그럼에도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

그 말이 꼭 세상의 어린이에게만 필요한 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겐,

아직 품어야 할 ‘어린 나’가 있다.


그러니 오늘 하루는,

세상의 모든 아이와

그 아이였던 우리를 위해,

우리가 진심으로 어른이어야 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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