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은 왜 태양계에서 퇴출당했을까?

by 난화

퇴근길 지하철이었다.

지하철은 늘 그렇듯 붐볐고,

나는 늘 그렇듯 에어팟을 귀에 꽂았다.

플레이리스트는 랜덤이었다.

스킵도 귀찮아져서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었다.


그런데 그때, BTS RM의 134340이 흘러나왔다.

가사 한 줄이 내 귓가를 붙잡았다.


“무너진 왕성에 남은 명이 뭔 의미가 있어…”


134340.


어릴 적 과학 시간,

교과서 맨 뒷장에 실린 태양계 그림이 떠올랐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

그 마지막, 명왕성.


지금은 그 이름이 없다.

2006년, 국제천문연맹(IAU)은

‘행성’의 정의를 다시 정리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명왕성은

태양계 행성에서 제외됐다.


그 기준은 이랬다.

1. 태양을 공전할 것.

2. 스스로 중력을 가져 둥근 형태일 것.

3. 공전 궤도 내 다른 천체를 밀어내고 지배할 것.


명왕성은 앞의 두 기준은 만족했지만,

세 번째 조건 [궤도의 지배력]에서 탈락했다.


그 주변에는 ’카이퍼 벨트(Kuiper Belt)’라 불리는,

수많은 얼음 조각과 암석들이 있다.

명왕성은 그들을 ‘밀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행성처럼 생겼지만 행성은 아님”이라는 결론.

대신 ‘왜소행성(Dwarf Planet)’이라는

새로운 분류가 생겼고,

명왕성은 그 첫 번째 대명사가 되었다.


그리고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은

소행성 번호 134340번으로 다시 태어났다.


나는 그 숫자가 차갑게 느껴졌다.

행성에서 숫자로 마치 이름을 지우는 일처럼.

하지만 곧 다른 생각이 들었다.

숫자는 기록이다.

사라졌다는 말 대신, 여전히 지켜보고 있다는 말.


명왕성은 여전히 궤도를 돈다.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248년.

지금 돌고 있는 이 궤도,

누군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살아생전

단 한 번도 못 본다.

햇빛 한 줄기가 닿는 데에도 5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

지구보다 6배나 작은 몸집, 영하 229도의 세계.


작고, 멀고, 어두운 그곳에서

명왕성은 자신만의 속도로 돌고 있다.


그 자리를 떠난 적 없는데,

세상의 기준이 바뀌었고,

그래서 제외되었다.


문득, 그게 사람 같았다.

기준이 변하면 어떤 사람은

‘중요한 사람’이 아니게 된다.

동료였던 사람이, 업무와 조직에 변화에 따라

이름 없는 존재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누구보다 열심히 돌고 있는데,

‘넌 행성이 아냐’라고 말하는 것처럼.


지금도 우리 중 누구는 134340이다.

한때 자랑스러운 이름이 있었지만

지금은 숫자처럼 취급되는 사람.

퇴직자, 계약직, 비정규직, 기간제, 혹은 단지 ‘너’.


하지만 그 숫자에는 다른 뜻도 있다.

아직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

누군가가 여전히 지켜보고 있으며,

여전히 이름을 잊지 않았다는 징표.


나는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내 속도로, 내가 가진 궤도를 따라.

누군가의 기준에 들지 못하더라도,

그게 내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명왕성도 그렇게 여전히 존재한다.

오늘도, 조용히.

다만 멀리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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