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떠난 뒤
집은 조금씩 식어갔습니다
가장 먼저 식은 건 마루 끝에 놓인 물잔
그리고, 매일 그 잔을 두던 할아버지의 손등
말이 줄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제 날씨보다 조용한 사람
밤이 내려오면 등을 돌린 옷걸이처럼
낮은 숨만 걸어두고 계십니다
자주 중얼거리시지요
“… 나 만나 고생만 하다 갔어 …”
그 말은 마치 오래 묵은 천처럼
접히고, 또 접히다가
가장 안쪽에서 울음을 묻어냅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병든 것도,
먼저 떠난 것도
당신 탓이라 하셨습니다
가난했던 청춘,
지켜주지 못한 시간들,
끝내 호사 한번 안긴 적 없었던
할아버지의 등짝
하지만 할머니는요
한 번도 등을 돌린 적 없었습니다
손등엔 당신보다 먼저 햇빛이 닿았고
발등엔 당신보다 먼저 비가 젖었으며
할아버지 늦은 날엔
늘 불 꺼진 창문 틈에서 기다렸습니다
참외 하나 고르느라 오래 망설이던 여름도
약봉투 들고 종종걸음치던 겨울도
할머니는 말없이
할아버지의 하루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그 빈자리 앞에서 너무 오래 서 있지 마세요
그 자리는 할아버지를 떠난 자리가 아니라
할아버지 곁에 머무는 자리니까요
오늘 밤은
할머니의 이름만 되뇌이지 마시고
그저 방 안에 앉아
할아버지 손 위에 내려앉는 온도를
가만히 느껴보세요
그 따뜻함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우리 곁에 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