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 잔의 계절

by 난화

반쯤 젖은 셔츠 틈새로

초여름 저녁 바람이 살며시 끼어든다

노란 가로등 아래,

피곤이 진하게 눌러쓴 어깨에

반짝이는 생맥주 한 잔이 놓인다


투명한 유리잔을 툭, 부딪히는 소리

그건 오늘 하루를 건너온 증명 같은 것

속이 텅 빈 날에도 거품은 넘치고

살얼음은 입 안에서 작은 축제를 벌인다


“역시 이 맛에 사는 거지”

누군가의 농담에

웃음이 목젖을 간질이며 넘쳐흐른다


바람도 우리 자리에 합석해서

말없이, 시원하게 목을 축인다

햇살보다 투명한 맥주 거품 위로

한숨이 가볍게 날아간다


지친 마음을 맥주에 적셔

털어내듯 마시고 나면

어깨 한쪽이 가벼워진다

이 계절, 퇴근길엔 그게 다다


사라지지 않아도 된다,

오늘은 조금씩 녹아 없어져도 괜찮다

생맥주 한 잔에

하루가 둥글게, 안으로 말린다


그리고 내일이 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이 계절의 거짓말 같은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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