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라에서 베닉스까지 산책하기 .
크레타 섬의 매력 중 하나는 여기저기 숨겨진 해안가다. 배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바닷가 , 육지로는 접근이 어려운 가파른 절벽 아래에 몇십명 만이 수영할수 있는 안전한 곳들이 있다는 건 환상적인 일이다. 그런 곳에 배를 타고 들어가 호젓하게 하루나 이틀 쉬다가 나오는 것이다. 매일 가는 배편이 있어 언제든 갈수 있다.
우리는 가우다 섬에서 배를 타고 스파키아 까지 오는 경로였으나 토요일에 들어가 일요일엔 배편이 없었고 그 다음날 월요일에 두번 갈아타는 배편으로 스파키아까지 돌아올수 있었가. 차를 가져갔기에 루트라나 베닉스에서는 내릴수 없고 (해안선이 작고 얕아 차를 타고 들어갈 순 없다. ) 어찌됬든 스파키아까지 가야한다.
마침 베닉스 항에서 잘 때 대보름이었다. 8월 한가운데 있는 가장 큰 날 한가위.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추석을 지내는 날이다. 둥근 달속에 가족의 얼굴들이 떠올라 반갑다가도 지중해에 비치는 일렁이는 달빛은 나를 너무도 외롭게 했다. 그래서 많이 슬펐다.
눈물
마음에 조금씩 커져가던
사랑의 풍선
부풀어 올라 날아가다
그만 찢어져버렸다.
사랑의 마음이 찢어지면
그 안에 담겼던 사랑이
눈물로 변하여 흘러내린다.
왜 사랑은 슬픔이 되었을까?
어쩌면 사랑은 기체요
슬픔은 액체인가보다.
사랑은 기쁨으로 넘쳐나.하늘로 올라가지만
슬픔은 감당할수 없어 밑으로 흘러내린다.
만남은 짧고 이별은 길다.
혼자 남은 내가 보인다.
나는 이제 혼자 남은 나를 끌어앉는다.
이제 영란아 그곳에 혼자 외롭게 서있지 말고 이곳으로 오렴. 이제 그만 너의 자리로 돌아오렴.
아직도 외롭게 울고 있는 나를 위로한다. 나는 나를 사랑할줄 알아야한다.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해야한다..
저녁무렵 남편과 루트라 해변길로 나 있는 산으로 산책을 갔다. 남편이 구글 맵을 통해 베닉스로 추정되는 고고학 발굴 장소를 찾아놓았다. 내일 아침에 다녀올 예정이지만 미리 한번 다녀와보기로 했다. 왼쪽에 지중해를 두고 산중턱을 오르는데 달빛이 아름답다. 외진 곳에는 아름다운 연인들이 밤달빛에 취해 사랑을 나누고 있다. 얼른 우리가 자리를 피해줘야할듯하다. 연인들을 뒤로하고 산으로 오라갔다. 중턱에 교회가 있는데 묘지가 있는 걸 보니 주민들을 위한 공동묘지같다. 지난번 로도 섬의 린도스에서도 교회터 안에 묘비가 있는 곳을 본적이 있다. 수도사님이 추도예배를 드리고 추모 행렬이 따라 가던 생각이 났다. 대체로 그리스 섬에는 이렇게 교회 터에 묘비를 세우는듯하다. 달빛만으로는 더 산속으로 들어갈수 없이 다시 내려왔다. 아까 보았던 연인들이 쑥스러웠는지 벌써 자리를 뜨고 없다. 달이 밝아 어디 숨을 곳도 없는 이런 날이지만 사랑은 더 깊어질것같은 그런 날이다. 우리도 겨우 하나 남은 호텔에 들어가 깊은 잠에 빠졌다. 방은 아주 작았지만 조용하여 숙면을 취할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은 호텔 거실에서 먹었다. 전날 먹다 남은 빵과 음료 토마토 이스라엘에서.가져간 올리브 오일 . 가우다에서 산 꿀이 전부였다. 그래도 점심은 잘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산으로 향했다. 이 더운날 물에 들어가야지 왠산인가 싶어 그 특유의 나의 그 못된 짜증 습관이 스믈 스믈 올라온다. 참자참자 하며 혼자 신나게 노래도 불러본다. 조금 걸으니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나는 계속남편을 찍으며 올라간다. 남편은 이곳이 뵈닉스이며 바로 바울 일행이 이곳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오려고 했건 곳이라고 말한다. 어제 배를 타고 오면서 안 사실이지만 이곳은 다른 곳에 비해 병풍처럼 돌산이 가로.막고 있어 정말고 바람에도 끋떡 없을 지형이다. 어제 배를 타고 오면서 실감했지만 작은 배 안에서 파도가 치니 무섭기도했다. 지금 9월인데.이러니 금식기간이 지난 10월 이후에는 북에서 불어오는 바라과 거센 파도에 배가 쓸려내려갈법도 하다.
한참을 걸어 내려오니 바로 루트라 옆의 베닉스 마을이다. 배로만 갈수 있는 이곳인데 루트라와 베닉스는 산을 하나 넘어 바로 갈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의 베닉스마을에 대해 현재 베닉스보다는 루트라일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어제도 큰배로 잠깐 들렀지만 큰배가 정박할수 있는 곳은 지금의 베닉스 마을이 아니라 루트라다. 그래서 학자들은 현 지명 루트라를 성경의 베닉스로 추정한다. 특히 북동 북서를 가리키고 있다는 표현이 루트라가 바로 성경의 베닉스라는 사실에 무게를 더한다.
베닉스 고고학 장소에는 5년 전 방문했을 때처럼 염소떼가 많다. 어딘가에 주인이 있을텐데 주인은 안보이고 방목한다. 하긴 이 염소들이 이곳 말고 갈수 있는 곳은 바다밖에 없다. 안전하다. 다시 베닉스 해안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남편은 드론을 찍었다. 마침 바다에 노를 저어가는 한 할아버지를 보았다. 아주 평안하고 차분하게 노를 저어 깊이 가시더니 그만 퐁당 빠지신다. 해안가에 할머니는 그저 책만 읽고 계시다가 멀리서 약간 애잔하게 남편을 바라보기도한다. 오히려 내가 멀리서 사진을 찍었다. 젊을 땐 저렇게 많이 타셨겠지 .. 지금도 아주 평안히 잘 타시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우리는 다시 오던 길로 돌아 오다 해안가쪽으로 방향을 바꿔 루트라로 돌아왔다. 중간에 유적지가 있고 바울 기념교회가 있다. 나도 요즘은 바위산도 잘 탄다. 모든게 적응과 훈련이다. 이스라엘의 엔게디 갈릴리의 헬몬산 그리고 하르 하호르 하르 카르쿰 요르단 페트라 아론의 무덤 이집트 시내산 . 몇몇 굵직 굵직한 산들을 매년 오르내리며 다져진 몸이다.
베닉스 고고학 유적지를 돌아 해안가로 올라오니 어제 봤던 교회 묘지가 보인다. 이렇게 산 중턱을 돌아 해안가로 돌아오는 산책길이 있었다. 땀이 나는 날이었지만 새로운 루트를 발견하고 새로운 도전을 해낸 날이어서 더욱 뿌듯한 날이다. 괜히 바다에나 들어가고 산을 넘는 수고를 하지 않으려 했다면 오늘의 이 성취감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산을 돌아 내려와 오늘은 맛있는 오징어 구이와 문어 구이 그리고 새우구이 그리고 그릭 샐러드를 먹을수 있다.
베닉스는 어떤 곳인가?
피닉스 또는 포이닉스(그리스어: Φοίνιξ)는 고대 크레타에 있는 두 마을의 이름이며, 둘 다 남쪽 해안에 위치해있다.
한 곳은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을 죄수로 로마로 데려가는 배의 항해에 관해 언급되어 있으며, 그곳에서 항구였다고 한다. 북서쪽과 남서쪽을 바라보았고 겨울을 보내기에 좋은 곳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폭풍으로 배가 그곳에 도착하지 못했다. 현대의 루트로와 동일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