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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순례를 마치며

by 이스라엘 이영란

순례자들은 피라미드를 보고 아부심벨 카르낙 신전 왕가의 무덤등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 보기도 쉽지 않은 곳에 간걸로 만족했다. 이제부터 보는 것은 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이제 이집트의 역사를 보았다면 유대인들이 이 땅을 떠나 이제 출애굽을 하는 여정을 시작할 때다 . 시작은 고센지방 타니스에서 시작이 되었다.


타니스부터는 경찰이 붙었다. 치안이 안전하지 않아선지 아니면 우리가 너무 귀해선지 안전을 우해 붙은 경찰차는 모든 우리 앞차들을 멈춰서게 했다. 버스 가에 선 사람들은 오랫만에 온 관광버스를 바라보며 웃음과 손인사로 우리를 반긴다. 오랫만에 보는 관광버스일게다.


순례객들은 히브리백성이 살았던 고센땅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눈으로 바라보는 고센땅은 참으로 비옥한 평야지대다. 우리가 배운 이집트 델타 지역이 바로 유대인들이 산 고센 땅이다. 이모작이 가능했던 (삼모작도 간읗핬을까?) 이곳에는 토마토를 실어나르는 트럭과 길가에서 파는 과일들로 그 풍부함을 알수 있다. 나귀마다 마차마다 실어나르는 짐들은 일하는 소와 말들을 위한 곡식이다. 소와 말을 먹이는 작물을 따로 재배하는 곳이 바로 고센지역이다. 아쉬운 점은 나일강 하구에 쓰레기들을 많이 버리고 있어서 강물이 오염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젖줄 나일강을 살리는 운동은 사실 이 하구에서부터 시작되어야할것 같았다. 룩소나 아스완은 참 맑은 물이 인상적이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고센 지역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일수도 있겠다 싶다. 이곳은 관광사업은 발달되어 있지 않다. 타니스등 고고학 박물관에는 경찰들의 검문이 강하다. 버스도 아예 박물관 안에 파킹을 히야한다. 삼엄하다. 하지만 사진으로 보는 농촌 풍경은 정겨운 농촌의 모습이다.


고센을 시작으로 우리는 히브리인의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며 시내반도로 향했다. 마라의 샘과 르비딤을 보고싶었지만 경찰의 통제로 갈수가 없다. 지난번 우리가 개인적으로 갔을 때는 그나마 볼수 있었는데 말이다. 특히 마라의 샘은 이집트에서 그곳을 통제하는 바람에 베두윈 상권이 다 죽었다. 지난번에도 남편이 갔을 때에 베두윈 상인들은 상업을 하고 있었지만 경찰의 통제로 들어갈 수 없을 뿐이다. 이집트인과 베두윈은 서로 상극이다.


시내산을 오를때 많은 순례객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카이로에서 아스완까지 가는 열차가 고난의 시작이었다면 시내산은 열차의 고난은 고난도 아니었다는 . 차라리 열차가 더 낫다는 고백을 하게 만든 여정이었다. 마치 이집트에 살던 히브리인들이 출애굽을 하면서 모세에게 불평을 하며 차라리 노예시절의 이집트가 먹을 것도 많고 좋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젊은 이들도 쉽지않은 길을 60대 70대 그것도 미국에서 늘 차로 이동하던 순례객들은 고난중에 고난을 경험해야했다. 다들 그 이후로 아무말이 없었다. 너무 극한 상황이면 아예 불평할수도 없다. 이동 내내 잠에 취하여 다들 말이 없다. 하지만 그 밤 가장 길고 편안한 꿀잠을 다들 잤다. 그 다음날은 더 맑은 정신으로 밝아진 얼굴로 서로에게 인사했다. 인생 최고의 경험을 한것에 감사했다. 다들 내가 해냈다는 뿌듯함에 모두 기쁨과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모두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가 되었다. 피라미드를 보았고 미이라를 보았다. 나일강을 보았고 나일강의 선물 이집트를 보았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꿈같았던 고대 문명 이집트에서 벗어나와 출애굽한 느낌일 것이다. 그리고 모세오경을 다시 묵상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 살고 있는 환경에 감사하게 될것이다. 출애굽 시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것이다. 한국인인것에 감사하게 될것이다. 여행과 순례가 주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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