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의 선행은 제사장과 레위인과 비교되며 더 돋보인다. 유대인들은 사두개인들이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므로 몸에 부정한 것을 무치면 안되기에 길에 쓰러져 피흘리고 있는 사람을 피해갈수 밖에 없었다는 역설을 말하기도 한다.선을 행함에는 주저함이 없어야한다. 그 순간 마음이 가는 대로 가장 선한 최선의 길을 하는 것이 맞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쓰러진 객을 보고 바로 지금 내가 돕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고 그 이후 그에게 필요한 것까지 그리고 그를 돌보아달라고 맡긴 여관주인에게까지도 후하게 마음을 쓰는 모습을 볼수 있다. 아프터서비스까지 하는 그런 모습이다.
이번 전쟁 피란을 통해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건 주님의 사람으로서 해야할 도리다. 마침 피란 나가야할 이들이 지인도 있었고 불가피하게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도망쳐 나오듯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분들도 있었다. 이러한 때에 한인회장이라는 신분으로 더 많은 교민들의 피란을 돕기 위해 3개국 한인회와 대사관 그리고 명성교회까지 공조하며 나설수 있었다는 것이 큰 성과였다.
올해 한인회장이 되지 않았더라면 광야의 외치는 소리에 불과했을텐데 말이다. 한인회장이 된것은 이때를 위함이라는.생각이 들정도다 에스더가 왕비가 된것이 유대인을 살리기위해 죽음을 무릎쓰고라도 왕앞에 나서기를 원했던 모르드개의 이때를 위함이라는 말씀처럼 말이다.
전쟁통에 갈바를 알지 못할 때 그 방향을 제시해 주고 이끌어 주는 지도자가 있을때 우왕좌왕 하지 않는다.
이집트 요르단을 여러번 오가며 연결되어 알게된 여러 한인분들과 현지인들 그리고 국경을 여러번 오갔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비할 수 있었던 피란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