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피아니스트 이야기
알리스 헤르쯔 좀머와 쇼팽 에튜드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쇼팽의 에튜드(연습곡 ) 를 공부하게 된다.
피어노를 배우는 초년생에게 아마도 체르니 연습곡은 지겨운 연습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쇼팽의 연습곡은 정말 매혹적인 곡이다. 그러나 그만큼 기교적으로 어려운 곡이다.
예고 시험 때부터 쇼팽 연습곡 8번이 시험곡이었으니 나도 중학교 때부터 이 쇼팽 연습곡을 접한 셈이다. 그 당시에는 입시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곡이 좋아서 열심히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쇼팽의 연습곡으로 학교의 당락이 결정되는 거지만 쇼팽을 연주함으로서 자신과 아들의 목숨을 구한 피아니스트가 있다.
알리스 헤르쯔 좀머.
유대인인 그녀는 독일 나찌 침공 당시 다른 가족들은 다 죽음을 당하였지만 피아니스트라는 이유로 어린 아들과 함께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사람이다.
어머니를 테레진 수용소로 보낸 이후 그녀는 쇼팽의 연습곡에 빠져들었다 . 이 길만이 그녀가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
" 이곡들은 참 어려운 곡이다 . 만약 내가 이곡을 연주한다면 그들이 나를 살릴것이다" 라고 그녀는 인터뷰에서 말하였다.
그녀는 5남매 중의 하나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인 독일어를 사용하는 세속 유대인 가정이았다 . 어머니는 예술가 써클에 들어가기 위해 도시로 이사하였다. 거기서 그녀는 카프카와 구스타프 말러 와 알고 지내게 되었다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16엔 프라하에 있는 콘서바토리에서 피아노에 전면하여 10대때 벌써 유럽 연주 여행을 다니게 되었다
나찌에 의해 테레진으로 끌려간 이후에는 그곳 오케스트라와 함께 부러지고 조율이 되지 않은 피아노로 100회 이상 연주하였다 한다
청중은 죄수들과 나찌 간수들 이었다.
연주회의 주된 목적은 선전용이었다. 적십자에서 매년 3회씩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모인 대부분의 죄수들은 병들고 나이들고 약한 소외된 자들이었는데 그들에게 이 음악은 음식과 같은 것이었다. 또한 이 음악이 바로 헤르쯔 좀머를 살린 것이다.
후에 같이 음악활동을 한 작곡가는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 죽었지만 그의 노트에는 같이 연주한 알리스에게 같이 연주하여 행복했다는 글을 남겼다.
테레진 수용소에 들어간지 1년 남짓 지났을 때 나찌 장교가 어느날 밤 알리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겁내지 말아요 . 감사해요 오늘 연주가 참 좋았어요 . 나에게 당신의 음악은 의미가 있어요 . 적어도 당신과 어린 아들은 살게해 줄께요 . "
그녀는 나찌에게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아들만 살아남았다.) 나찌에게 대한 증오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악을 증오하는것은 그녀에게 더이상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이 너무 낙관적으로만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
과거에 자신이 수용되었던 테레진에서 어떤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녀는 나찌에게 이용당한 이유만으로 바그너의 음악을 저주하지 않는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베토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