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떠났다. 성지가 좋다 500회 특집을 마치고 모든 공적인 행사를 마치고 나니 홀가분해진 남편은 이제 고향 파주에 가 쉬고 싶다는 말을 남긴채 떠나버렸다. 물론 남편이 같이 가자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 가면 이제 추석 명절이 돌아오는데 남겨진 부모님이 걱정되서 말이다. 여지껏 나 없이도 잘 지내셨지만 멀리 이스라엘에서 온 딸이 마침 추석을 맞아 부모님 곁에 있으니 그 기쁨을 감추지 못하신다.
물론 엄마와 나는 같이 있으면 늘 싸운다. 싸우는게 아니고 그저 티격태격이다. 엄마의 이런 모습이 맘에 안들거나 행동이 맘에 안들어 내가 많이 핀잔을 준다. 50이 넘은 다 큰 딸이 뭐가 그리 미더운지 계속 나를 주시하면서 행여나 잘못될까 걱정되시는지 안절부절 못하신다. 칼들고 있는 내가 불안하단다. 그저 믿어주셔야 하는데 말이다. 좀 그러시지 마시라고 바라보지 마시라고 . 나를 아직도 걸음겨우 뗀 어린아이로 보시는지 . 행여 넘어질까 부러질까 칼질하다 베일까 노심초사다.. 그러지 마세요 엄마해도 여전하시다. 막내딸이 늘 못미더우시다ㅡ
그래 나는 그렇게 컸다. 뭐든 내가 하는건 시덥잖으신지 이리줘 내가 해줄께 .. 좋은 교육법이 아니셨다.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 주셔야지 맨날 물고기를 잡아다 입에 떼어 주셨으니 말이다. 왜 그러셨을까? 그냥 믿어주면 좋았을것을...그래서 우리 딸 유정인 밥도 잘한다. 딸을 곱게 키우는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강하게 키워야한다. 어쩌다 보니 우리 딸은 이스라엘 군대도 나왔다. 나는 모진 엄마가 다 됬다.
나는 한국에 살았으면 맨날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와 엄마가 만든 김치를 맨날 들고 갔을것 같다. 주는게 행복이라고 엄마가 주시는걸 좋아했을거라 생각했을 게다. 엄마 고생하시는건 생각 못하고 말이다.
이스라엘에서 매주 교회 밥을 하면서 싫어도 해야할 때가 참 많았다. 집에 손님이 오면 밥을 준비해야했다. 요리를 할 때도 팔에 힘을 빼야한다. 싫어서 억지로 할때는 손에 힘이 많이 가는데 그러면 영락없이 팔이 아파진다. 그래서 나는 음악을 틀어놓거나 노래를 부르며 음식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좀 기분도 업되고 무료하지 않다.
뭐 한것도 없는데 집청소하고 나니 몸이 다운된다. 전을 부치시고 이것 저것 준비하시는걸 보고는 엄마 나 지금 피곤해요 좀 있다할께요 하고 들어가서는 좀 눈부치고 나오니 이미 전을 다 준비해놓으셨다. 이제 굽기만 하면 된다. 그거라도 도울 양으로 국자에 두번정도 담아 후라이팬에 지진다. 배합을 잘하셨는지 끊어지지 않고 잘된다.갖은 해산물과 양파 고추를 넣어 갈아 만든 후 파를 넣어 만든 속은 매콤하니 맛있다. 엄마는 이걸 다 갈아 넣으셨구나 . 정성이 많이 간 음식이다.
그날 밤은 엄마도 나도 곤히 잠을 잤다. 둘다 시간가는줄 모르게 서로 도와가며 신나서 전을 부쳤다. 엄마도 힘들지만 즐거웠단다. 결혼하고 엄마랑 처음으로 같이 전을 빚어본것이다.
영란아 엄마 금반지를 전 버무릴때 그 속에 떨어뜨린거 같아. 아침에 일어나니 없네 . 그 말씀을 들은 아빠는 아니 어떻게 반지 빠진걸 모르냐며 마구마구 언성을 높이신다.
어 엄마 그럼 전 먹다가 금반지 나오겠네요? 그거 찾는 사람이 임자에요. . 아빠 . 뭐 그렇게까지 화낼일은 아니에요 ...
워낙 나이드시면서 깜빡깜빡하는 본인들의 상실되는 기억력과 걷기도 힘들어지고 점점 쇠퇴해가는 몸의 감각이 점점 불안해지며 좌절되나보다. 물론 나도 그렇다 가끔 소화가 안된 상태에서 잠을 자다가 숨이 막혀 엠뷸런스에 실려간적도 있다 . 그 이후로는 밥을 꼭꼭 십어 먹으려하고 혹시나 가스가 차서 트름이 안나오면 안되니 밥먹고는 운동을 꼭 한다.
늘 부모님과 함께 하지 못하면 죄송한 마음 뿐인데 같이 있으면 늘 티격태격이라 뭐가 옿은지 헷갈리기도하다. 하지만 이런 티격태격이 가족이기에 가능하다. 이 나이에 누구랑 싸울 사람도 없지 않은가 . 가족 말고는 말이다.
어제 기독교 방송의 한 채널에서는 목사님 사모님 4분이 나와서 간증을 했다. 살아오는 동안 사모님들이 아팠을때 관심가져주지 않던 목사님들에 대한 원망들과 한편으론 그런 인내하는 아내를 감사해하는 미안해하는 목사님들의 진솔한 간증이었다.
다듣고 나서 엄마가 그러신다. 정말 좋다. 그런데 너랑 같이 보니 더 좋구나... 아.. 엄마 .... 저도 그래요 ...
남편이 혼자 자신의 고향을 향해 떠나듯 나도 내가 자란 곳 내 부모 곁이 그립다. 다른 곳에선 기분 나빠도 말도 제대로 못하고 속에 말을 제대로 내뱉지도 못한다. 하지만 부모님은 아직 내 어리광이 통하지 않는가... 너무 고맙고 감사한 분이시다.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정말 좋은 분이시란걸 느낀다. 아버지와 어머니 함께 하신 세월이 60년이 다되어가신다. 이 두분도 티격태격 말싸움하는 말하고 나서 돌아서선 잊어버리는 깨끗한 사이 . 우리는 그런 가족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파주에 가서 형님등 가족을 만난다.
추석엔 우리집에서 잠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점심먹고는 다시 파주에 가서 오후를 함께 지낸다. 그렇게 합의를 봤다.
물론 그러기까지 남편과의 티격태격도 쉽진 않았다. 간다 안간다. 너만가라 같이 가자 하루 하루 계속 바뀌는 감정 싸움에 남편은 그렇게 혼자 집을 나섰다.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스케쥴이 있고 나는 나대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있지 않은가 ? 어떻게 4명이 다 같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이번 추석은 부모님곁에서 지내고 있다.
추석 예배도 우리집에서 지내게되었다.이침나절 아이들과 남편이 다 우리집으로 왔다.엄마는 잡채와 갈비 그리고 몇가지 전을 준비하셨다. 상다리가 부러질순 없지만 상이 가득차게 음식을 준비하셨다.
요즘은 다들 밖에 나가 먹기도 하지만 집에서 차린 음식을 먹어야 정성이 느껴지니 여성들의 수고가 가장 돋보이는 날이기도하다.
우리 헌재말이 아빠는 정릉에 가면 자꾸 나가고 싶어하고 엄마는 파주에 가면 다시 나가고 깊어한단다. 그렇게 안절부절 멋하는 남편은 예배가 끝나자 마자 밥만 먹고는 집을 떠났다. 나가서 차를 뺀다는 핑계를 대며 먼저 나간다. 그래 이제는 파주로 가야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