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의 바울 기념교회
지금은 이슬람 국가가 된 튀르키에의 오래된 교회는 모스크로 바뀌거나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배가 없는 교회는 박물관이 될수 있다. )
스토아 학파가 기세를 부리던 이 땅 다소 땅에서 유대인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유학간 바울 .
하나님을 경배하는 신실한 유대인의 입장에서 기독교인은 젊은 혈기라 유대교를 회방하는 기독교인들을 잡으러 다녔을수도 있다. 우리 예루살렘에서도 보면 샤밧날 주차장에 들어가는 차들에게 샤밧을 지키지 않는다며 무리르 지어 야유를 보내는 청년들이 있다 그러면 경찰들이 와서 시위를 저지하다 충돌이 일어나기도한다. 적어도 예루살렘에서는 유대인들의 규율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날도 그는 기독교인들을 잡으로 가던 길이었다. 갑자기 그는 다메섹 도상 밝은 빛 속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아 . 만약 내 앞에도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왜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핍박하니 하고 꾸짖으신다면 나는 어떤 마음이 들까? 갑자기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지는 심정이다.
바울은 아예 예수님을 부정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빛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똑똑히 들은 이후에는 인생의 흐름이 예루살렘 유대인 중심에서 전세계 복음으로 바뀌었다.
복음 전파의 출발지였던 터키 지역은 지금은 무슬림으로 변하여 박물관이 되었지만 그 폐허 속에 바울의 이름으로 남아있다. 바울이 전파한 기독교는 꿈에 마게도니아로 오라는 제 3차 전도 여행 이후 그리스로 전해져서 신화와 철학의 본고장 그리스에서 꽃을 피우며 국교로 공인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와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과 관련된 곳에 기념 교회를 세우게 된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바울은 그렇게 땅 끝까지 예수님을 전하던 이름으로 이 땅에 남아있다.
복음의 전파자 바울 그의 생가와 그의 우물이 그대로 박물관으로 남아있고 옛 성문에 바울의 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씨앗을 뿌리고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전역에 기독교를 전파하다 로마에서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