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순례를 마치며 2026년 2월

by 이스라엘 이영란

이집트 성지순례를 마치며

남편과 처음본 영화는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였다.

당시 이집트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예술의 전당 이집트 전을 보며 신비의 세계를 경험하기도 했다. 신의 지문이라는 책을 통해 아프리카에서 떨어져 나간 대륙이야기 . 피라미드는 이집트에만 있지 않고 남미에도 있기에 예전에 붙어있던 땅이라는 그런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헌재 초등학교 때 처음 이집트를 방문했다. 아프리카라 더울줄 알았는데 이스라엘처럼 해가 지면 추워지는 날씨로 아들은 매일 감기에 걸려 괴로워 했다. 15년전에도 우리는 아부심벨을 보기위해 장거리 버스를 탔었고 피라미드 라이트 쇼를 보기 위해 추운 밤에 들리지도 않는 영어를 들으며 아들에게 설명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이집트 여행은 매우 고단했고 숙소는 매우 평범했다. 내 기억의 이집트는 역시 아프리카라 어쩔수 없군 하는 심정이었다.


물론 답사때는 가장 저렴한 호텔에 저렴한 현지식을 먹었지만 팀과 다닐 때는 좋은 호텔과 깨끗한 식당을 다니니 이집트 여행이 해볼만했다. 특히 지난 피란때 알게 된 한국 식당을 통해 이집트에 이렇게 많은 한국 식당과 저렴한 가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집트 살만하네 .


하지만 이집트인의 인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도로에서 운전하는 이집트인들은 거의 게임기를 연상시킨다. 규칙이 없다. 앞에 자리가 생기면 들어가고 우회전 좌회전도 비집고 들어갈수 있으면 뭐든 가능하다.


관광지에서 만나는 이집트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1불이라도 받아내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돈을 내고 들어간 식당이나 박물관에서도 화장실에 들어가려면 10기니 20기니 1불에 5명 . 혹은 그냥 1불 받고 쓰윽 주머니에 넣기도한다. 이집트에서 화장실 장사해도 벌어먹고 살만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그나마 화장실이 있는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할지 ..


물론 이집트인들과 같이 살아보지 않았기에 이집트인들을 모르는건지도 모르겠다. 이스라엘에 살지 않으면서 스크루지 영감만 알고 있어 수전노라 비판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집트 . 참 살기 힘든 나라같다. 특별히 우리나라처럼 기술이 있어 수출을 많이 하며 사는것 같지도 않고 . 그저 선조들이 남겨놓은 문명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래도 여행은 즐겁다. 특히 또래가 많았던 순례팀이기에 서로 사진 찍어주고 즐겁게 여행할수 있어 즐거웠다.


외국에 나와있다고 온갖 말린 나물을 사다준 친구. 화장품과 홍삼을 사다준 친구. 외국이서 고구마 심고 심다했더니 직접 고구마를 사다주며 심는 방법까지 알려준 농부 친구. 이집트 선교사님들 줄 선물을 부탁했더니 모두 하나씩 라면을 사와 다 종류가 다르게 50여개나 가져다준 순례자들. 그리고 아이들 간식을 주라고 쵸코파이 등 온갖 과자를 한아름 선물 받아 이집트 한인교회와 선교사님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특별히 순례기간중에 생일을 맞아 생일 잔치 해주세요 요구했던 자매가 내게 다가와 사모님도 같이 생일이시고 축하할수 있어 너무 좋았다고 수줍게 얘기해준 자매 .모두 한분 한분 귀한 분들이었다.


나는 순례기간 동안에 출애굽기를 다 읽었다. 한자 한자 이집트에서 읽는 감동이 남달랐다. 이 척박한 땅에 복음을 전한 마가로 통해 기독교인이 된 이집트 콥틱 교인들이 귀했다. 수도원의 시초 안토니우스 수도원 70인역이 씌여진 알렉산드리아 . 하늘 땅 바다의 모든 곳에 신을 믿는 이 이집트 땅에서 나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나는 시기하는 신이라고 말씀을 전한 하나님의 음성이 더 가깝게 들리는 여정이었다.


어렵고 힘든 여정이었지만 그만큼 더 깊어진 신앙심으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 한분만을 믿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복된 삶이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