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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양 May 24. 2023

아기가 구내염에 걸렸다.

맞벌이 부부 퐁당퐁당 연차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와이프 직장 동료의 집들이에 갔었다. 사실상 집들이라기보다는 그 집 남편, 직무 관련 손님맞이라고 해야 할까, 그 후 음식이 많이 남아 와이프 친구분이 우리를 초대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와이프만 가려고 했는데, 23개월 아들이 엄마에게 달라붙어 같이 가게 되었고,

가는 길에 “네 남편도 같이 올 수 있으면 데리고 와라”해서, 와이프는 차를 돌려 나를 픽업해 갔다.

갑작스러운 방문이었다. 그 집에는 7살 큰 딸과 5살 남아가 있었는데, 이미 우리 집 아이를 몇 차례 봤던 터라 잘 데리고 놀아 줬다.    

  

좋은 시간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그 뒤에 생겼다. 그 집 아들이 구내염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싶어 와이프에게 주의하라는 연락이 왔는데, 당시에 아들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 괜찮을 거라 여겼었다.      

그러나 3일 정도 지난 저녁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잠복기가 3~5일이니 딱 발병할 때가 된 것이었다.

열이 39.5까지 오르고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모든 게 처음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아이의 구내염 경험도 처음이었다."


          

애가 아픈 거야 자연스러운 일인데, 문제는 역시나 어른들의 사정이었다.    

  

다음날 나는 모친 병원 관련 문제로 연차를 낸 상황이었고, 와이프 역시 학교 기능경기 대회 준비와 연수로 주말 내내 바깥 업무로 심신이 지쳐 있는 상태였다. 둘 다 열이 나는 아이 때문에 새벽잠을 설치는 건 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급한 대로 병원 진료 예약을 위해 오전 5시 30분 아동병원에 가서 대기 표를 뽑기 위해 기다렸다. 이미 병원 앞에는 다른 부모들이 10명 정도 줄 서 있었다. 내 대기표는 9번, 표를 뽑고 바로 집으로 왔다. 병원 방문 때마다 이런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도 의문이 생기긴 하지만, 일단은 눈 앞의 일이 급하니 깊게 생각하기 힘들다.

          

와이프는 학교에 상황을 설명하고 연차를 냈다. 아이 진료 후 수액을 맞히고 나니 오후 1시가 넘었고, 이후에도 열이 떨어지지 않아 차로 50분 정도 걸리는 다른 아동 병원에 애를 데리고 갔다고 했다. 나는 모친 일을 보기 위해 충북 영동으로 떠났고, 대구와 김천, 다시 영동과 대구를 오가는 일정을 소화했다.   

   

전염성이 있는 병이라 아이는 어린이 집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와이프와 나는 오늘 일부터 처리하고 아이 간호에 대해 다시 논의하자고 한 상황이었지만 딱히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와이프는 서로 퐁당퐁당 연차를 쓰며 아이를 보자고 했지만 내 상황이 녹녹지 않았다. 이미 내 연차는 다 소진한 상황, 회사에서 정말 편의를 많이 봐줬는데 바쁜 시기에 연달아 또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와이프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어머니 일로 연차를 안 썼으면 좋겠어요.”


어머니 일로 연차를 다 쓴 것이 아니냐는 말과 함께 자신은 지금 화가 난다는 마음을 전해왔다.    

  

나는 당장 뭐라고 할 말이 없어 순간 얼어붙었던 거 같다. 섣부르게 무슨 말을 덧 붙이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떠오르는 많은 것들을 말로 꺼내는 게 지금 상황에서 맞을까 하는 생각이 빠르게 오갔다.     

모친과 와이프 사이에는 여러 가지 일이 있어 감정의 골이 있고, 이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결국 내가 질 수밖에 없다.     


사실 연차의 경우 어머니 문제로 쓴 게 그렇게 많은가 하면, 꼭 그렇다고 할 순 없다. 근본적으로 내 연차소진의 이유는 지금 마무리 짓지 못한 대학원 과정에 있었다. 수업이 있는 날은 조기 퇴근을 하다 보니 정기적으로 쪼개서 사용하는 연차에다 각종 집안 일로 연차를 이미 다 소진한 것이었다.      


문제는 운전하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슴이 답답했다는 것이다. 아니 맞벌이하는 사람들은 애를 도대체 어떻게 키우라는 건가, 누가 애 봐줄 사람이 있어야 애도 낳고 일도 할 것 아닌가? 돈을 많이 벌면 해결될 일이겠지만, 그게 생각처럼 쉬운가?


간혹 프로그램에 결혼 안 하는 청년들, 아이 못 낳겠다는 부모들은 질타하는 듯한 내용이 나오면 정말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외벌이로 가계의 생존이 가능한 경우가 많았고, 부모 중 한 명은 육아를 전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이의 성장, 교육, 보살핌을 전적으로 맡아 줄 존재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이다. 육아휴직을 쓰는 것도 어렵지만, 설령 눈치 안 보고 쓸 수 있는 일터에 있더라도 가계 형평 때문에 장기 휴직이 불가능한 집안도 부지기수다.  

   

장모님께서도 일을 하시고, 장인어른은 경주에, 부친은 포항에, 충북에 요양 중이신 모친은 본인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운 상황이시다.      


누구를 의지하고 도움을 청하겠는가? 심적으로 쉽지 않다.


다중이용시설에서 케어를 받는 아이는 상대적으로 각종 전염병에 노출되기 쉽고, 발병하면 최소 3-4일 정도 이용이 불가능하다. 이런 경우가 계속해서 발생하는데, 맞벌이 회사생활을 하는 부부가 그때마다 퐁당퐁당 연차를 쓴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생산 현장에서 근무하는 분들을 마주하는 경우가 많은 나 같은 경우에는, 애초에 하루 14시간 이상 바깥에 있어야 하는 직작인에게 어린아이를 낳고 케어한다는 게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그 시간 동안 아이를 봐줄 수 있는 기관은 거의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이 지나도 그 자녀는 반 강제로 방치하다시피 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을 학원이니 뭐니 뺑뺑이 돌리는 것도 보육의 개념으로 이뤄지는 게 많지 않은가?  생각하다 보니 답답함에 이래 저래 쏟아내게 된다.


이후 와이프와 얘기는 잘했다.

와이프는 다음날 조퇴를 했고, 오전에는 처남이 아이를 봐줬다.

그다음 날 와이프는 마지막 남은 연차를, 그다음 날은 장모님께서 연차를 내셨다.

하고픈 말은 많지만 이렇게 지나가는 것도 진심으로 감사하게 여긴다.

그래도 답답함은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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