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삶이란 그런 것이겠지.
어디서부터 말을 이어갈까 싶다.
타인의 이야기 일 땐 그저 그런가 보다 하게 되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텐데
어머니 암이 재발하셨다.
예전 항생제 부작용으로 청력을 상실하신 이후,
난소암으로 인한 항암 치료로 그나마 남아 있던 청각신경을 거의 잃으셨다.
후에 인공와우 수술을 했지만, 재활은 제대로 할 수가 없었고
자신의 소리를 기계음으로 들을 수 있는 정도에서 만족해야 했다.
소리가 안 들리는 것은 여러 가지로 불편함을 야기한다.
경도인지 장애로 치매가 올 확률이 높으며,
자주 물을 틀어 놓는 등 실수가 잦으며, 대인관계가 급격히 축소된다.
한 번은 집 마당 아궁이에 불이 나서 큰일 날 뻔한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께선 전혀 인지하지 못하셨다.
당시 어머니 댁에 들렸던 내가 무슨 연휴에선지 자정이 다 돼 가는 시간에 밖에 나가보니
마당에 적재해 둔 장작과 정자가 다 탈 정도로 불이 크게 났었다.
급하게 수화기를 들고 와 큰 불을 재우고 1시간 동안 호스로 물을 뿌려댔는데도
잔불이 남아 있었다. 쇠덩어리는 가열되어서 비가 와도 붉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귀가 안 들리는 것뿐 아니라 균형감각에도 문제가 있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곤할 때, 특히 날씨가 흐리거나 기압에 변화가 있을 때면
웅웅 거리거나 찡찡 거리는 찢어지는 소리가 머릿속을 맴돈다고 하셨다.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게 거의 불가능할 정도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불안증과 우울증, 망상증으로 괴로워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보면 대단하다고 할 정도로 엄격한 식단관리와 운동을 병행하셨기에
5년 뒤에는 완치 판정을 받으셨다. 그래서 같이 기뻐했는데...
6년째 되던 지난 6월 말
새벽에 출혈로 급하게 택시를 타고 김천 의료원에 가 검사를 받으니
큰 병원으로 이동하라고 했고,
병원에 가 검사하니 암이 재발했다고 하더라
직장과 대장, 질과 방광까지...
대화가 어려웠기에 정신적인 고통과, 고립감, 외로움이 크셨던 어머니
대인기피증까지 와서 상담이나 다른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었던 분이라
불안한 통증이 몇 달간 계속되었지만
각자 생활에 바쁜 나와 동생은 어머니 병원 방문에 일정 맞추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고
결국 피를 보고야 급하게 택시를 불러 혼자 어머니를 보내게 되었다.
수술 전 어머니께서는 나를 원망하셨다.
자신이 아프다고 할 때 병원에 왔어야 하는데
내가 데려다 주지 못 했다고...
원망할 대상이라도 있는 게 다행이라 생각한다.
죄책감은 가지지 않으려 한다. 나는 최선을 다 했고,
이 역시 받아들여야 할 상황일 테니까.
12시간이 넘는 대 수술 끝내 2주 후 퇴원하시고
3일 뒤인 오늘 어머니께서는 항암을 위해 재입원하신다.
3주 간격으로 6회,
내성이 생긴 암으로 항암과정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모친의 의지가 꺾이지 않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