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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양 Mar 13. 2024

나를 감동시키는 것

인간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

고귀한 인격을 목격할 때 나는 감동한다.     


염세적이고 회의적이었던 내 어린 시절, 영원한 것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좀 더 지속적인 것들에 대한 원의,      

먹어 없어지는 것보다는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더 좋았고

물건보다 객관적 기록으로 남는 것들이 더 좋았다.      

그러나 영원한 건 없고, 모두 사라지고 말 것들, 나도 세상도 시작이 있듯 끝이 있다.     

내게 인생은 의미 있는 것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었다.      


의미의 추구는 생존과 안정의 기본적이 하위 욕구가 채워졌을 때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당장 배고픈데 의미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역시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영역에서의 담론이고, 예외는 늘 존재하는 법이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상위의 것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이들은 늘 존재해 왔다. 그것은 일순간의 기회에 이뤄지는 선택이라기보다, 일관된 삶의 태도와 방향성에서 결정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인간의 양면성을 쉽게 접한다. 추악함과 고귀함은 저마다 지닌 독특하고 개별적인 인격에서 발현된다. 비율로 따지자면 악의 평범성을 논할 수밖에 없다. 그 극단성을 보자면 때에 따라 인간은 한계가 없다.      

말 그대로 자신을 죽이고 세상을 파괴하고 신까지 죽일 수 있지만 가장 미소한 보잘것없는 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눈앞의 것에 매몰되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 시•공간을 초월한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하고 탐미할 수도 있는 존재이다.           



간혹 위대한 인격을 목격하곤 한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어 놓고, 평생을 공동선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 숭고함을 알게 해 주는 사람을 간간히 볼 수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정신이상적이고 비상식적인 행위, 진화의 결과이자, 이기적인 유전자의 행보라고 폄훼하거나 가치절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느낀다. 정말 위대한 인격을 목격할 때, 눈물이 흐른다.       


우리 삶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인격의 성숙을 위한 과정이라고 말한 학자의 말에 공감한다.

내가 고결한 인격자이진 못 하지만 자식을 키우면서 삶의 모든 과정이 인격의 성장임을 새삼 느낀다. 더 인내하고 절제하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그 성장한 인격이 자신의 사랑을 더 넓은 대상으로 확장시켜 나눌 수 있길, 개인의 영달과 성취만을 쫓는 삶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걸어갈 수 있길 희망하며 나를 감동시키는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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