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친 여사친이 가능하냐고?... 친구야 당연히 가능하다. 친구가 되는데 성별, 국가, 종교, 나이가 무슨 관계가 있겠냐, 세상에 불가능한 건 없고, 좋은 실례도 많지 않은가. 그렇지만...
왜 굳이 여자 사람 친구, 남자 사람 친구라고 일컫는가, 그 표현에 이미 함의가 내포돼 있다고 봐야겠지.
사람의 인격을 논 함에 있어, 성별은 매우 결정적인 요소이다. 성별은 존재의 뿌리이자 삶의 토대, 목적성과 방향성과 연관된다. 친구관계의 질을 논할 때 동성과 이성의 차이는 그 성차가 본질이다. 본인의 성적 취향과 별개로 이성과의 성적인 관계가 가능하다는 그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당사자들 뿐 아니라 주변인과의 관계설정에서도 성적 긴장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왜 굳이 친구에 성별을 붙여 표현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 이성의 친구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감정선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지만 교제하고 있는 대상이 있거나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이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우선되어야 한다. 기존의 이성 친구들의 관계가 아무리 건정하고 부적절한 요소가 없다 하더라도, 내가 교제하는 이가 그것을 불편해하거나 불안해한다면 이에 대해선 더욱 신중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이지만 이 주제 역시 맥락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 간엔신의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며, 여사친 남사친을 인정해달라고 한다면, 그 신의가 일방적인 요구가 아니라 상호 노력과 헌신의 결과물임을 간과하는 것이다.서로 그런 관계를 오케이 한다고 해도? 그것 역시 진정 서로를 위한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성적 긴장감이 없는 남사친, 여사친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면 의심스러운 것이다. 같이 1박 2일 여행이라도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이는 정신이 이상한 것 아닌가. 그게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우리 내면은 무의식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성적 관계의 가능성이 있다면1:1의 관계는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 알코올과 같이 중추신경계를 마비시킬 만한 것들과 늦은 시간 감정이 고조된 상황에 스스로를 노출시킨다면 그건 의도성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냥 친구라고 말하는 건(일방적인 관계이냐 아니냐나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성적 긴장감은 있는 그대로 누리면서 그러한 위험요소를 굳이 외면하겠다는 방어적 태도다.
나는 질문한 동료에게 위와 같은 논조로 말했고 그는 추가 질문을 이어갔다.
지인이 여성과 피상적인 만남, 성관계도 있지만 그렇다고 애인은 아닌 그런 수많은 여성들과 여사친이라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본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이건 또 다른 차원에서 논해 볼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누군가 조금은 특이한 다중관계를 이루고 있을 때, 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개인이 처한 환경과 더불어 유년시절의 애착관계 형성과정에서의 특이점은 없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잠깐 얘기해 보니 이해할만한 요소들이 있었다.
깊고 진지한 애정관계를 형성하지 못해, 그냥 여사친이니 남사친이니 지칭하는 건 처음 주제와 동떨어져 보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인가, 육체적 관계가 사랑 없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관계를 일반적인 친구관계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더 나아갔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그 가능성의 측면에서는 동일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특히나 교제하는 이가 있다면, 정서적인 불륜이냐, 육체적인 불륜이냐, 상대에 대한 기만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가능성 열려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성 간의 친구는 가능하다. 그러나 남사친, 여사친? 글쎄,
언어는 그 자체로 갖고 있는 힘이 있다. ‘친구’와 ‘남사친’, ‘여사친’은 강조하는 포인트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