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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양 Apr 26. 2023

'부자의 언어'에 대한 단상

어느 날 내가 싫어하는 류의 책을 집어 들었다.

몇 년 전, 와이프가 책 하나를 구입해 왔다. 제목은 ‘부자의 언어’.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류의 책 제목이라 어떻게 이런 책을 사 왔느냐 핀잔을 줬었다.  

    

부러움을 조장하는 사회, ‘부자’라는 말만 붙여 무분별하게 사람들을 현혹하는 수많은 콘텐츠들, ‘부자’라고만 하면 ‘발바닥의 때’라도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돈’과 관련된 자기 계발 및 투자 서적이 범람하고 있는 시기에 하필 내 배우자가 이런 책을....     


시류에 편승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함께 그러한 대부분의 정보 90% 이상이 별 의미 없는 것들이라는 생각에, 새 책이라 차마 버리지는 못 하고 책장 한 곳에 방치해 두었다.  

    

그렇게 한참을 잊고 지내며 아이와 함께 동화책, 그림책들을 읽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며칠 전 나도 뭔가 글을 읽고 싶다는 마음과 아이에게 책 읽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에 아이 책장에 있는 책들을 빠르게 훑어보다가, 그 책이 눈에 들어왔다. ‘부자의 언어’      


내가 투자나 자기 계발 관련 서적들을 잘 읽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정보가 일정 부분 왜곡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90%의 진실에 10%의 애매한 정보가 섞여 있으면 사전 지식이 없는 이들은 그 정보를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출처도 알 수 없는 검증되지 않은 내용들, 객관적이지 않은 근거들로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중하거나, 너무 단순하게 내용을 전달하여 큰 실수를 범할 수 있게 의도한 것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내용이 비일비재하다. 너무 어렵게 꼬아 놓거나 너무 쉽게 단순화시키거나 다분히 악의를 품은 정보들도 그럴듯한 타이틀만 붙이면 장사가 된다.    

  

자기 계발 서적도 결국 요지는 비슷하게 수렴한다 자신의 변화, 성장 그것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 하지만 대부분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쉽지가 않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다. 본질은 결국 다이어트나 금연을 시도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장사 같이 비슷비슷한 콘텐츠를 그럴싸한 말마디만 바꾸어 파는 것과 다르지 않다. 너무 극단적인가? 물론 개중에는 좋은 콘텐츠들도 섞여 있고, 새로울 것은 없지만 환기할만한 유의미한 내용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시간에 굳이 그런 서적들에 눈길을 돌리기엔 내 생명이 아깝다는 생각이다.      


참으로 모순적인 것이 그럼 여유 시간이 생기면 뭘 하는가라는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별 의미 없는 것들로 시간을 많이 보내왔다. 쉽게 중독될 수 있는 것들로 말이다. 멍 때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훌륭한 휴식 방법이지만, 바쁠 때는 바쁘다는 이유로 피곤할 땐 피곤하다는 이유는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로 시간을 할애했다. 절제와 인내의 과정을 요구하면서 긍정적인 결과물을 가져다준다면 취미라고 부를 수 있을 테지만, 즉각적이 쾌락과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중독이라고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사설이 길어지는데, 그래서 여하튼 읽어 보았다. 중간 아무 곳이나 펼쳐 읽었는데 글은 젊은 이와 어른의 담화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술을 먹지 않는 이유를 역사적 사실과 비유들로 꽤나 흥미롭게 풀어내는데 뭔가 이 책의 제목만 보고 너무 쉽게 넘겨짚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놀아달라고 붙는 아이의 요구에 곧 책은 덮었지만, 저녁에 와이프에게 그 책에 대해 얘기하며 사과했다.  


짧은 부분을 읽었지만 내가 관대해진 건지, 오랫 만에 독서다운 독서에 가까워서였는지 거부감이 적었다. 그렇다고 내용이 엄청 참신하다는 건 아니었고, 적당한 수준에서 나를 돌아보고 생각할만한 거리를 주었다. 스스로를 나름 성찰을 많이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변화는 정말 어렵다. 중독도 마찬가지다. 습관을 바꾸고 삶을 변화시키는 것에 무엇하나 쉬운 건 없다. 안 될 것도 없지만 쉽다면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관련 콘텐츠 시장도 설 자리가 없어지겠지.     


인생에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변화는 없다. 제품에서의 혁신은 쉽고 좋고 저렴한 것으로의 변화이다. 하지만 삶에는 그런 혁신은 없다. 왕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싫은 것을 꾸준히 해내는 끈기와 인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얻게 해주는 길이다. 도 닦는 마음으로 어려운 것을 다시 해보자고 다잡아 볼뿐이다.      



ps 그렇다고 권장할만한 책은 아니다. 

좋은 예화가 항상 좋은 목적과 부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생은 관리이지 도박이나 환상이 아니란 것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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