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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과 나

김주영

by 김주영

설이 다가올수록 어르신들의 마음이 바쁘다.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초조하고 분주한 느낌이다.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아우라도 느껴진다. 설이라는 디데이에 맞춰 큰 이벤트를 준비하는 대형기획사의 마음이랄까... 몇 주전부터 시동은 걸려져 있었다.(하이브리드 아니고 디젤엔진으로) 어제같은 괴산 대목장에는 화려한 전야제의 불꽃처럼 긴장감이 폭발한다. 시대가 변해도 어르신들에게는 설이라는 명절이 얼마나 큰 의미이길래 모두 다 명절을 흥분하며 맞이하는 걸까... 단 이런 이야기도 아직 건강이 허락하신 분들의 이야기겠지만...

나야 명절이 큰 의무감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명절이 아니어도 가족행사 때 부모님을 뵙기도 해서 그런 것 같다. 설에 해외여행도 갈 수 있고 가족여행도 갈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할 정도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는 명절에 어른들은 집에서 파티를 즐기시고 사촌 형들과 나는 극장에서 '영구와 땡칠이'도 함께 보는 큰 이벤트였구나 싶다. 하룻밤도 같이 자며 형들 문화도 체험하고 축제를 즐겼다. 다음 날 아침에는 뜨듯한 떡국을 같이 나눠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설이 우리나라 사람들 DNA에 각인되어 있는걸까? 모든 것이 부족한 옛 시절에는 더욱 소중한 시간이었을테다.

명절을 맞이하는 어르신들의 루틴은 이렇다. 이미 자식들 노나주려고 들기름, 참기름, 고춧가루를 준비해 놓고 볕 좋은 날 마당에서 10분도로 정미기로 방아를 찧는다.(도지로 받은 쌀) 그 쌀을 전날 4시간 이상 불려 보자기에 싸서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읍내 방앗간에서 가래떡으로 뽑아온다. 무게도 상당한데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나른다. 오후에 돌아올 때도 버스를 이용한다.(그래서 버스터미널 근처 방앗간에 손님이 많다.)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썰어도 주지만 그러면 돈이 더 드니 집에서 일일이 떡을 썬다. 가래떡은 가래떡대로 방아찧어 놓은 쌀은 쌀대로 챙겨 설에 온 자식들에게 올려보낸다. 자식 뿐 아니라 결혼한 손주들 몫까지 분배한다. 아저씨가 살아있으면 더 풍성하게 준비할텐데 혼자 계신 어머님의 능력으로는 이 정도가 최대치다. 큰 숫자가 적힌 달력을 보며 전화통화로 자식들 언제 내려오는지 체크하고 자식들이 편히 지내다 갈 수 있게 집 전체를 전반적으로 돌본다. 이불이며 난방이며 청소도 깨끗하게 하고 말이다. 혼자 있으면 커 보이는 집이지만 가족들이 모인 명절만큼은 집이 좁게 느껴질 것 같다.

나도 명절에는 부모님을 뵈러 가는데 괴산에서 나가는 도로는 한산한 반면 마주오는 방향은 수많은 차들이 줄지어 내려온다. 괴산에서 낳은 자식들이 도시로 나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떼처럼 도시에서 산전수전 겪은 자식들이 위로받는 시간

"엄마~ 나 왔어."

숭고한 마음으로 설을 맞이하지만 TV에서 대통령이 구치소에 들어가는 모습이 연실 나온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3평 독방 감옥에 갇힌 대통령을 딱하게 여기며 하는 어르신 말씀, "갇히더라도 설은 세고 갇히지..." 명절이 뭐길래 싶지만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고 딱한 것은 딱한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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