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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과 나

김주영

by 김주영

괴산 어느 마을 이름 중에 양짓말 음짓말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양지마을, 음지마을이라는 뜻이다.


양짓말에 사는 할머니가 해가 어느 정도 떴을 무렵(오전 9시 쯤) 집 앞에 앉아 있다. 왼쪽에서 떠오르는 볕을 온전히 받고 있다. 영하 10도 이하인 기온인데도 바람이 안 부니 볕의 따스한 온기만으로 있을만 하다. 할머니는 맞은편 응달에 있는 집을 바라본다. 산 그림자가 든 집 굴뚝에서 연기가 솔솔 피어오른다. 한참은 있어야 볕이 들 것 같다. 화목보일러를 떼는지 그 옆에는 많은 양의 장작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 집을 바라보던 할머니가 "여기서 응달 쳐다보니까 서글프네."라고 말씀하신다.


양달에 사는 집은 볕도 일찍 들고 늦게 지는데 반해 응달에 사는 집은 볕도 짧게 지나간다. 그만큼 불 떼는 시간도 길다. 지금은 돈으로 에너지를 살 수 있지만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는 최대한 양달에 살며 자연에너지를 쓰는게 생존에 필요했겠다. 괴산은 산골이라 차 타고 집으로 돌아올 무렵에 이미 해가 져 있는 마을들을 볼 수 있다. 그런 마을은 어김없이 연기가 피어오른다. 늦게까지 해 드는 마을은 집들도 많고 집 주변으로 산소도 많다. 사후에도 볕을 잘 받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느껴진다. 산골의 해 혜택은 평야가 있는 지방과 비교할 형편은 못되지만… 시골에 살다보니 자연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밤에 일찍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해가 떠 있는 동안 생활하는 삶이 되었다. 푹 자고 다음 날 좋은 컨디션으로 지내는 게 좋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누구는 도시 습관이 베어 밤중에 일하는 게 편하다고 한다. 밤새 일하고 해가 뜰 때 잠을 청한다고 한다. 그동안 막연하게 양이면 좋고 음이면 좋지 않다는 이분법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음과 양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상반된 힘의 조화와 균형 속에서 이루어지는 개념이라고 한다. 히어로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좋고 빌런은 나쁘기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막연하게 느낀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항상 평온하기만 할 수 없고 고통도 따라오는 인생처럼. 모든 것이 자연의 조화와 연결되어 생각하게 되었다.


14년 전 인천에서 배를 타고 칭따오에 간 적이 있다. 마침 도착한 날이 정월대보름 날이었다. 하루종일 거대한 폭죽 소리로 가득한 도시였다. 밤이 되니 커다란 불꽃들이 여기저기서 정신없이 터지고 있었다. 누구는 길가에 쭈구려 앉아 종이 쪼가리들을 태우고 누구는 차가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불을 붙여 거대한 불꽃을 쏘아올렸다. 아시아에서는 예부터 새해 처음 맞는 대보름이라 큰 의미를 가진 날로 지내왔나보다. 음력 1월 15일 정월대보름 날 내가 사는 마을에도 달집태우기를 한다. 새해 소원도 빌고 올 한해 안녕을 기원하는 신명나는 날이다. 생존을 위해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가짜뉴스가 판치는 혼란한 세상이지만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의 정도를 생각한다. 지금은 뜨거운 감자처럼 핫한 상황도 자연의 조화처럼 지나고 보면 군더더기 없는 정수만 남을 것이라 믿는다. 집으로 들어오는 빛의 길이가 점점 달라지고 있다. 새 봄을 맞이하며 새 기운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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