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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어르신 이동수단과 나

김주영

by 김주영


아침 아이들 등교길, 회전 로타리를 도는데 자전거 한 대가 앞서간다. 할아버지가 힘차게 페달을 밟고 뒤에 앉은 할머니는 옆으로 앉아 지나는 풍경들을 응시한다. '옛날에는 저렇게 옆으로 앉기도 했다.'고 아이들에게 말해줬다. 속력을 내는 할아버지의 다리는 젊은 날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옆으로 앉은 할머니도 중심 잡기 쉽지 않을텐데 익숙해 보인다. 할아버지가 이끄는 삶에 온전히 의지한 세월이 엿보인다.


시골에서 살다 보니 어르신들의 이동 수단을 보게 된다. 할아버지가 모는 경운기 뒤에 할머니가 앉아 있는 두 사람의 풍경. 점점 보기 힘든 풍경이다. 오토바이는 아직 꽤 보인다. 읍내라도 가려면 버스나 택시를 이용한다. 가까운 거리는 전동스쿠터를 타기도 한다. 읍내나 면소재지에는 자전거 타는 어르신들을 볼 수 있다. 그것도 안되면 지팡이 집고 휘어진 다리를 이끈 채 걷는다. 보통은 유모차같은 걸 앞세우고 걷는 할머니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래서 경로당 앞에는 유모차(노인 보행기) 몇 대가 늘 세워져 있다. 이 모든 게 걸어다닐 수 있는 어르신에 한한 얘기지만(무릎이 불편해 신작로는 커녕 삽작 밖도 못 나가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길도 좋아지고 자동차도 많아진 돈만 있으면 좋은 세상이지만 옛날에는 무조건 걸었다고 한다. 산 넘어가는 학교는 물론 장에도 걸어갔다. 장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술 취해 쓰러져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시계도 없으니 동 트면 일하는 곳까지 걸어갔다. 미원에서 살았던 어르신은 친정 장연까지 별 수 없이 걸어갔다고 한다.(아이 데리고...) 구루마, 자전거는 형편이 좋은 사람들 얘기였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들 세대는 운전면허증은 고사하고 오토바이 면허증도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나마 자식 세대에서(지금은 70대 이하) 자가용을 몰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운전면허증이 다 있는 건 아니다. 아버지가 돈을 안 줘서 운전면허는 못 따고 오토바이 면허증 밖에 없는 어르신도 있다. 친구들은 운전면허증 다 있는데 자기만 없는 설움은 평생 가져갈 것 같다. 오토바이로 일터에 나가고 오토바이로 다닌 세상이 그 분 세계의 한계였다.


요즘은 전동스쿠터를 탄 어르신을 자주 볼 수 있다. 마치 월-E가 지나다니는 것 같다. 장에 가거나 농협에 가거나 병원, 한의원에 가거나 필요하면 이발소나 면사무소에도 간다. 걸어서는 엄두도 못할 거리를 스쿠터가 대신해 준다. 운전도 쉬워 보인다. 미리 충전해 두었다가 도로 가장자리를 천천히 달린다. 내가 볼 때 어르신의 운전 길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자신은 아무리 조심을 한다고 해도 차들이 워낙 쌩쌩 달리니 불안하기만 하다. 간간이 사고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무릎으로 고생하는 어르신들은 스쿠터를 포기할 수 없나보다. 젊은 날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하루죙일 일만 하며 살아온 어르신들의 현주소다.


며칠 전부터 옆집 차가 안 보인다. 알고 보니 연세가 많으셔서 폐차를 했다고 한다. 반면에 얼마 전에는 93세 할아버지가 운전면허증 갱신하신다고 사진 찍으러 오셨다.(저 사진관하고 있습니다.) 이래도 되나 싶지만 그만큼 이동의 자유의지는 꺾을 수 없나 보다. 언젠가 아내에게 아내가 늙어 몸이 불편하면 내가 지게를 지고 데리고 다니겠다고 했다. <토지>의 서희와 길상이처럼. 아직은 정신없이 일만 하고 있는 시절이지만 가끔 나의 노후를 상상해 본다. 삶의 동반자와 건강하게 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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