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달의 뿌리』를 곁에 두고
어느 날 책 한 권이 조용히 말을 건넨다.
“마음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라석 손병철 시인의 시전집 『마음달의 뿌리』는
대답을 서두르지 않는다.
대신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
우리 손에 얹어 준다.
이 책은 단순한 시집이 아니다.
1974년 첫 시집 『정화도선』부터,
가야 기행과 역사적 상상력,
중국 유학 시절의 철학적 사유,
그리고 불환산방에서의 은거 이후에 이르기까지—
한 시인의 생애와 사유가
‘마음’이라는 하나의 뿌리로 엮인 기록이다.
시(詩)와 철학이 갈라지지 않는 자리
라석의 시는 감정의 장식이 아니라
사유의 운동에 가깝다.
북경대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심물일원(心物一元)의 관점에서
내면과 외부 세계를 함께 사유해 온 그의 글은
시와 철학의 경계를 굳이 나누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아름답다’ 가보다
‘가만히 멈추게 된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시 한 편이
개념을 설명하지 않는데도
개념보다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순간,
우리는 이미 마음의 다른 층위에 들어가 있다.
마음달(心月), 흔들리되 사라지지 않는 것
책 제목에 담긴 ‘마음달’이라는 말이 오래 남는다.
달은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매번 다른 얼굴로 떠오른다.
마음도 그렇다.
감정은 변하고 생각은 흘러가지만
그 변화를 비추는 자리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라석의 시는
그 비추는 자리,
곧 마음의 근원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처럼 읽힌다.
그래서 이 시집은
위로보다는 정직함에 가깝고,
설명보다는 침묵에 가까우며,
속도보다는 깊이를 선택한다.
번역 시집 부록이 말해 주는 것
이번 시전집에는
중국 독자를 위해 번역된 한시 시집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이는 단순한 부록이 아니다.
한 시인의 사유가
언어와 국경을 넘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동아시아 사상과 시의 전통 속에서
마음과 세계를 함께 사유해 온 여정이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을 덮으며
『마음달의 뿌리』는
빠르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그러나 오래 남는 책이다.
이 책은 묻는다.
우리는 지금
마음을 얼마나 얕게 쓰고 있는가.
그리고 조용히 덧붙인다.
마음은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돌아가야 할 자리라고.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고
자기 마음의 뿌리를 살펴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줄 것이다.
달이 떠 있는 한,
마음은 아직 길을 잃지 않았으므로.
참고로 락석 손병철 작가님이 제 박사학위 논문도 심사를 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