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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품은 산, 사람을 품은 하루

— 응봉산·설흘산에서 느낀 대산회의 온기

12월의 남해는 바다부터 다릅니다.

차가운 계절임에도 바다는 넓고 깊게 숨을 쉬고, 그 위로 쏟아지는 빛은 산의 능선을 따라 천천히 번져 갑니다. 응봉산에서 설흘산으로 이어지는 길, 칼바위 능선을 타고 걷는 동안 우리는 바다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걸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은 늘 묵묵하지만, 그날 산행은 유난히 말이 많았습니다.

바닷바람에 실려 온 웃음소리, 잠시 멈춰 서서 나누는 안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를 살피는 발걸음. 산행이란 결국 정상에 오르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확인하는 일이라는 걸 다시 배웠습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남해바다는 말 그대로 ‘확 트인 시야’였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넓게 열린 것은 마음이었습니다.

선배님들이 먼저 건네는 한마디 격려, 후배들의 자연스러운 웃음과 농담. 그 속에서 “선배님들과 후배님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느꼈습니다.

산행 뒤 이어진 따뜻한 시간도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26회 김광섭 후배님이 마련해 준 이디야 사천점의 유자차 한 잔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하루를 감싸는 배려였습니다.


다랭이마을 주차장에서 유대인 선배님 부부께서 건네주신 차 한 잔 역시, 말없이 전해진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29회 후배님들, 강훈·인호·재홍과 나눈 담소와 웃음. 그 웃음 속에서 우리는 나이와 기수를 잠시 내려놓고, 같은 길을 걸은 동료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대산회 산행은 풍경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사람이 있어서 더 빛났습니다.

산은 매번 그 자리에 있지만, 함께 걷는 사람은 매번 다릅니다. 그리고 그 다름이 모여, 한 번의 산행이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12월의 산길에서 저는 다시 다짐합니다.

천천히 걷되 함께 걷고, 앞서기보다 살피며, 정상보다 사람을 먼저 기억하겠다고.

오늘 함께해 주신 모든 선배님·후배님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늘 그렇듯, 건행(健行)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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