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한쪽 벽에 붙은 30개의 삶
— 자기소개는 언제부터 ‘사람을 드러내는 교육’이 되었을까요?
교실 한쪽 벽에 포스트잇들이 붙어 있다.
색은 연노랑, 글씨는 삐뚤삐뚤, 문장은 비슷하다.
“저는 ○○에 열정을 느끼고
○○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 없이는 못 사는
○○입니다.”
형식은 같지만, 내용은 전부 다르다.
그 차이가 바로 이 교실에 모인 서른 개의 삶이다.
누군가는 가족을 썼고,
누군가는 친구,
또 누군가는 게임, 음악, 운동, 꿈, 성실, 배려, 책임을 적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돈’이나 ‘성적’을 적은 학생은 거의 없다.
대신 관계와 감정, 좋아하는 것과 지키고 싶은 것이 먼저 나왔다.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다
무엇이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인지
우리는 종종 묻는다.
“너의 강점은 뭐니?”
“장래희망은?”
“성적은 어느 정도야?”
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를 소개할 때 선택한 언어는 달랐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무엇에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인지?
나는 무엇을 잃으면 흔들리는 사람인지?
나는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싶은지?
이건 단순한 자기소개가 아니다.
이미 하나의 가치 선언문이다.
‘자기소개 활동’이 ‘시민 교육’이 되는 순간
이 포스트잇들이 인상적인 이유는,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문장이 없기 때문이다.
비교도 없고,
서열도 없고,
정답도 없다.
그저
“나는 이런 사람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뿐이다.
이 순간, 교실은 시험장이 아니라
존재가 존중되는 작은 민주주의 공간이 된다.
자신을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자신의 가치를 언어로 표현해 본 사람만이
공동체의 가치를 함께 고민할 수 있다.
교육은 결국,
‘사람을 말할 수 있게 하는 일’
이 포스트잇들은 묻고 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얼마나 자주 자기 언어로 자신을 말할 기회를 주고 있는가
성적표 말고, 삶의 문장으로 자신을 소개해 본 적이 언제였는가
어쩌면 교육의 본질은 거창하지 않다.
한 아이가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돕는 일일지도 모른다.
“저는
무엇에 열정을 느끼고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이것 없이는 못 사는
사람입니다.”
그 문장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지워지지 않게,
벽 한쪽에 당당히 붙일 수 있도록 말이다.
교실 한쪽 벽에서,
미래가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오늘도 아이들은 그 벽 앞을 스쳐 지나간다.
아마 별생각 없이 지나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저 포스트잇 하나하나가
미래의 선택, 관계, 시민으로서의 태도로 이어질 거라는 것을
믿는다.
교실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문제 풀이로만이 아니라,
자신을 말할 수 있는 용기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교육은 그 순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사람을 키우는 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