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형 인재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우리는 다시 교육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이 길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가

통섭형 교육을 향한, 작은 도시의 큰 질문


어느 순간부터였다. “이 길이 나에게 맞는가”보다 “이 길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가”를 먼저 묻게 됐다.


교단에서, 마을에서, 강연장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럴수록 확신이 커졌다. 단순한 지식 전달, 스펙 쌓기, 취업 기술 훈련만으로는 사람을 회복시킬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건 교육의 근본을 다시 묻는 일이다.

나는 윤리교육학을 전공했고, 오래도록 중·고등학교 교사이자 교육 연구자로 살아왔다. 그러는 동안 불편한 질문과 마주했다. 도덕 시간에 ‘정의’를 가르치면서도, 학교 밖에서는 구조적 불의가 반복되는 현실. 시험 문제로 ‘양심’을 평가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양심을 침묵시키는 시스템. 그 모순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씩, 교육의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시민교육, 마을교육, 인성교육, 전통사상과 명상, 종교와 윤리를 넘나들며 정말 ‘회복’을 만들어 내는 교육을 찾기 시작했다.


통섭, 사람을 잇는 감각

그 여정에서 붙잡은 한 단어가 있다. 통섭(Consilience).

내가 말하는 통섭형 인재는 ‘다재다능한 사람’이 아니다.

서로 다른 영역을 가로질러 사유하고, 공감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인간과 자연, 과학과 철학, 기술과 도덕, 지역과 세계를 하나의 생명선으로 잇는 감각. 그 감각으로 오늘 살아가는 시민—그가 통섭형 인재다.


윤리는 행동의 철학이고, 통섭은 그 윤리를 삶에 뿌리내리게 하는 구조다. 그런 인재는 서울의 거대한 캠퍼스가 아니어도, 진주의 골목길에서도, 작은 마을 사랑방에서도 탄생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지역에서 교육으로 살아남기, 아니 살아내기

많은 이들이 말한다. “지역에서는 교육으로는 먹고살기 힘들다.”

나는 되묻는다. “교육이 없으면, 지역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지역이 살아 있으려면, 그곳의 사람이 깨어 있어야 한다.

사람이 깨어 있으려면, 그 안에 살아 있는 교육이 있어야 한다.

그 교육은 위에서 떨어지는 매뉴얼이 아니라, 현장에서 함께 숨 쉬며 만들어가는 삶 중심의 교육이어야 한다.


지금 나는 진주라는 도시에서 사회적 협동조합 ‘공감나침반’과 함께 인문학·윤리교육·지역 연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다. 하지만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길을 찾고, ‘살아 있는 교육’을 실현한다는 감각 하나로 버틴다.


교육은 결국 사람이다. 오늘도 이 작은 도시의 작은 공간에서 사람을 만나고, 사유를 나누고, 가치를 회복한다.


골목에서 시작하는 통섭형 교육: 작지만 단단한 루틴 4

1. 질문 한 줄: 오늘의 수업·회의 앞에 “이 선택은 누구를 살리는가?”를 적는다.

2. 요약 후 반론: 대화 규칙은 간단히—상대의 말을 10초 요약한 뒤에만 반론한다.

3. 실패 회고 5분: “어디서 막혔고, 무엇이 도왔는가? 다음 시도는?”을 기록한다.

4. 연결 과제 1개: 배우는 내용을 사람·마을·자연 중 하나와 연결해 작은 행동으로 옮긴다.

루틴은 길수록 멈춘다. 짧고 되풀이되는 의식이 문화를 바꾼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

통섭형 인재는 미래 인재상 포스터 속에만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오늘도 사람답게 살고자 애쓰는 당신일 수 있다. 골목길에서 이웃을 환대하고, 회의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를 살리고, 교실에서 한 아이의 가능성을 믿는 순간—통섭은 이미 시작되어 있다.

나는 계속 묻겠다. “이 길이 나에게 맞는가?”

그리고 더 자주 묻겠다. “이 길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가?”

그 질문이 내 나침반이고, 교육이 내가 걷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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