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덕의 통섭적 재구성

공의·공정·공평·형평으로 다시 그리는 윤리의 지평

3줄 요약

1. 정의(justice)와 덕(virtue)을 공의·공정·공평·형평의 네 축으로 재구성해 동서양 사상을 한 자리에 놓습니다.

2. 무어·칸트·비트겐슈타인·비고츠키, 그리고 동학·성덕도의 관점을 개인–사회 / 규범–관계의 격자에 맵핑해 실천 가능한 틀로 제안합니다.

3. 교실·조직·도시에서 바로 쓰는 판단 질문 4·수업 루틴·의사결정 카드를 제공합니다.


1. 왜 지금, 네 개의 언어가 필요한가

우리는 같은 현상을 두고도 “옳다/그르다(공의)”, “정당하다(공정)”, “공평했나(공평)”, “형평에 맞나(형평)”를 혼용합니다. 단어가 섞이면 논쟁은 길어지고 해결은 멀어집니다. 네 개념을 구획하고 연결하는 프레임이 필요합니다.

2. 네 개념, 한눈에 보기

윤리 판단은 보통 “무엇이 옳은가”에서 출발해 “그 옳음을 어떻게 모두에게 적용할 것인가”, “그 과정이 공정했는가”, “결과가 실질적으로도 균형을 이루는가”로 이어진다. 이 흐름에 맞춰 공의→공정→공평→형평은 서로를 전제하거나 보완하는 네 개의 단계로 정리된다.

첫째, 공의(rightness)는 가장 기초적인 층위다. 어떤 행위가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옳은가를 묻는다. 여기서의 기준은 원칙·가치와 같은 내용의 정당성이며,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이 시험대가 된다. 공의가 확보되지 않으면 이후의 적용·절차·분배 논의는 모두 불안정해진다. 즉, 공의는 필요조건이다.

둘째, 공정(justice)은 공의로 확인한 원칙을 보편 규칙으로 일관되게 적용하는 문제다. 같은 사안에는 같은 규칙이, 다른 사안에는 합당한 차별 규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칸트식 표현을 빌리면 “내 규칙이 모두에게 법이 되어도 괜찮은가?”를 자문하는 단계다. 공의가 내용의 옳음을 보증한다면, 공정은 적용의 일관성을 보증한다. 공의 없이 공정만 강조하면 “형식적 공정”에 갇히고, 공정 없이 공의만 강조하면 선택적 원칙 적용의 함정에 빠진다.

셋째, 공평(fairness)은 규칙 적용의 절차와 상호성을 다룬다. 같은 규칙이라도 결정 과정에서 말할/들을 기회, 정보 접근, 심리적 안전이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당사자에게는 불공평하게 체감된다. 비트겐슈타인·비고츠키가 강조한 것처럼 의미와 규범은 언어적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공평은 “그 결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점검하며, 절차적 정당성을 통해 공정의 신뢰를 뒷받침한다.

넷째, 형평(equity)은 같은 규칙·같은 절차를 거쳤더라도 출발선의 격차 때문에 결과가 치우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실질적 기회를 보정하는 단계다. 동학의 시천주(모든 인간의 존엄)와 성덕도의 원자(圓慈)(보편적 자비) 전통은 바로 이 보정의 윤리적 근거를 제공한다. 형평은 똑같이 대우함으로써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형식적 평등’의 오류를 막는다. 다만 형평은 앞선 세 단계—옳음·규칙·절차—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설계되어야 하며, 그 정당성은 투명한 기준과 공개적 설명으로 담보되어야 한다.

정리하면, 공의는 내용의 옳음을, 공정은 규칙의 일관을, 공평은 과정의 상호성을, 형평은 결과의 실질을 다룬다. 실제 의사결정에서는 (1) 공의 검토로 원칙을 세우고, (2) 공정 점검으로 규칙의 보편 가능성을 확인하며, (3) 공평 보장으로 참여·정보·발언 기회를 균형 있게 설계하고, (4) 형평 설계로 취약 집단의 불리함을 합리적으로 보정하는 순차적 절차가 바람직하다. 이 순서가 지켜질 때, 네 개념은 서로 충돌하는 깃발이 아니라 한 결을 이루는 팀으로 작동한다.


3. 2 ×2 윤리 격자: 개인–사회 × 규범–관계

개인 ×규범 = 공의: “나는 무엇을 옳다 말할 수 있는가?”

사회 ×규범 = 공정: “우리의 룰은 보편화 가능한가?”

개인 ×관계 = 공평: “말할/들을 기회가 균형적인가?”

사회 ×관계 = 형평: “출발선의 격차를 줄였는가?”

이 격자는 논쟁의 쟁점을 분리해 줍니다. 예컨대 입시·복지·노동 이슈에서 “공정하냐”만 반복하기보다, 공의–공정–공평–형평을 차례로 점검하면 논의가 짧고 정확해집니다.


4. 교실·조직에서 바로 쓰는 판단 질문 4

1. 공의: 이 행동은 원칙 없이 이익만 따진 것은 아닌가?

2. 공정: 같은 상황의 사람에게 동일 기준을 적용했는가?

3. 공평: 의사결정 과정에서 목소리의 균형이 있었는가?

4. 형평: 취약한 이들에게 실질적 기회가 갔는가?

회의·수업·정책 검토 문서의 첫 페이지에 이 4문을 넣어 보세요.

결정은 빨라지고, 납득은 깊어집니다.


5. 교육 적용: 50분 수업 루틴(예시)

5분: 개념 카드 – 공의/공정/공평/형평 간단 정의

10분: 사례 읽기 – 갈등 상황 요약

15분: 공평 토론 – “요약 후 반론” 규칙으로 상호성 확보

10분: 형평 설계 – 출발선 보정 방안(장학·보조·대안 과제)

10분: 공정 점검 – 규칙의 일관성·보편 가능성 확인

과제: 공의 일기(오늘의 옳음 한 줄 기록)


6. 시민성 프로그램: 의사결정 카드(팀용)

공의: 원칙 1줄

공정: 적용 규칙 2개

공평: 발언 균형 타이머(60–90초)

형평: 취약집단 영향 분석(플러스/마이너스 각 1)

카드 1장으로 절차·내용·결과가 동시에 보입니다.

7. 동서양 사상의 연결고리(요지)

무어는 ‘선’의 객관성을, 칸트는 이성의 보편 법칙을 세웠습니다.

비트겐슈타인·비고츠키는 의미·규범이 언어와 상호작용 속에서 자란다고 봤습니다.

동학은 모든 사람의 존엄(시천주)을, 성덕도는 보편적 사랑(圓慈; 완전하고 원만한 자애)과 관계의 선용을 강조합니다.

이 흐름을 네 축에 얹으면, 규범(공의·공정)과 관계(공평·형평)가 충돌이 아니라 상호 보완임이 드러납니다.

8. 맺음말: ‘옳음–룰–대화–배려’가 한 팀이 될 때

정의는 한 단어가 아니라 네 개의 렌즈입니다.

공의로 방향을 잡고, 공정으로 룰을 세우며, 공평으로 대화의 장을 만들고, 형평으로 결과의 불리를 보정할 때—갈등은 줄고 신뢰는 자랍니다. 교실·조직·도시 어디서나 판단 질문 4로 시작해 보세요. 윤리는 철학을 넘어 일상의 기술이 됩니다.


더 읽기(안내용)

G. E. Moore, Principia Ethica

I. Kant, Groundwork of the Metaphysics of Morals

L. Wittgenstein,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L. S. Vygotsky, Mind in Society

J. Rawls, A Theory of Justice / M. C. Nussbaum, Upheavals of Thought / A. MacIntyre, After Virtue

김용옥, 『동학과 한국 종교사상』 / 이광호, 『한국의 신종교와 사상』 / 송재룡, 『한국 신종교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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