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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예술 Oct 03. 2023

파멸이란 놈의 나이는

「리버스 엣지」, 1994

몇 년산인가요?


오묘한 표지

「리버스 엣지 (RIVER'S EDGE」 1994

오카자키 쿄코 (おかざききょうこ) 작품


  오카자키 쿄코의 연재작  「리버스 엣지」는 일본의 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년물입니다.


  오묘하긴 해도 우중충하지 않은 표지와 다르게 작품은 그 안에 있던 청소년들과 혼란한 당대 상황을 묘사했으며, 동성애, 마약, 매춘 등 꽤나 노골적이고 수위가 높은 이야기들을 풀어내기도 했죠.


  개인적으론 딱히 어떤 것과도 닮아있지 않던 유려한 문장과 이 만화의 강점으로 단순히 수위만을 꼽을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이었던 연출들과 대사들이 정말 기억에 깊게 남습니다.


  '비극'을 주 소재로 담아낸 여러 작품들이 끔찍한 서사를 담담한 시선과 연출로 담아낸 이야깃거리로 찬사를 받았다면,


  「리버스 엣지」는 더 나아가 그러한 비극들을 해체하고 바닥에 늘어놓은 뒤 결국엔 우리에게 납득시키기까지 합니다. 아무리 무서운 살인 기계더라도, 분해하고 또 분해하면 그저 볼트와 너트에 불과하다고. 

      


만화 공식 소개문

  성장과 반성장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그려낸 오카자키 교코의 대표작. 이야기는 1990년대, 도시 근교의 강 어귀를 배경으로 한다. 우리들의 청년기가 대개 그렇듯. 

  만화의 주인공 야마다는 늘 멍투성이다. 또 다른 주인공 하루나는 제 남자친구의 괴롭힘을 당하는 대상으로서 야마다를 처음 인식한다. 여기에 학생이라기보다는 사회인에 가까운 모델 고즈에가 더해진다. 

  이 접점 없어 보이는 셋에게는 공유하는 비밀이 있다. 그것은 강둑의 웃자란 수풀 속에 잠자코 누워 있는 시체다. 그 시체를 가만 바라보기를, 그들은 따로 또 같이, 자주 한다. 

  누군가에게 삶은 짧고 덧없기 때문에 공포스럽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 있는 누군가는, 삶이 너무도 예측 가능하고 고리타분하며 가혹하리만치 늘어져 있기에 겁에 질린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존재가 썩을 수 있다는 것, 썩어 없어져서 흔적도 남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서 오는 자유도 있으리라. 

  다만 이러한 비관적인 위안에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괴상한 취미와 비밀을 공유하는 끈적이지 않는 관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지적으로 효과적으로 발신하는 것이 이 작품의 고유한 에너지다.      




I

줄거리


야마다의 모습

  괴롭힘 당하는 소년 야마다. 그는 간논자키하루나의 연인 패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소년입니다. 야마다에 대해 하루나가 말하길,   


얌전하고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같은 반 남자애인데,
세련되고 얼굴이 예쁘장해서 여자에게 은근히 인기가 있다      


 또한 그러한 점이 다른 남자애들의 공격성을 자극하는 거라고도 덧붙이기도 합니다.  


  하루나는 그러한 야마다를 여러 번 구해주며 간논자키를 나무랍니다. 매번 자신을 구해주는 그녀에게 야마다는 친구로서의 호의를 베풀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사적으로 약속을 잡아 만나는 등 조용하게, 하지만 무겁게 가까워져 버립니다. 게다가 야마다는 대뜸 하루나에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고백하기까지 해요.


  "마음 편하게 말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라고 덧붙이는 야마다를 보며, 하루나는 알게 된 작은 비밀에 대해 '처음'이라는 꼬리표를 조금 의심해 보진 않았을까요? 비밀이든 성관계든, 그냥 처음이 주는 의미가 있으니 말입니다      


덤불 속 비밀

  그리고 어느 날, 야마다는 하루나에게 자신의 보물을 보여주겠다며 그녀를 깜깜한 밤에 강가 덤불로 부릅니다. 사람의 키보다 크게 자란 것들을 치우고 짓밟아 하루나에게 길을 안내한 야마다는 그렇게 깊은 덤불 속에서 자신의 보물을 보여주게 되죠. 


  그것은 다름 아닌 다 썩어 문드러진 시체.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결국 산 사람들이 연기하던 죽음이 아니라, 죽음 그 자체요 이미 죽음이 씹다 뱉은 찌꺼기. 야마다는 넋이 나간 하루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시체를 보면 용기가 나.
왠지 이 시체를 보면 안심이 돼.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언제나 헷갈려서. 


  단편만화  「룰렛」에 등장하는 대사인 "죽어가는 건 저지만, 죽어있는 건 당신 아닌가요?"가 생각납니다. 결국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방법은 죽음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것뿐.


  결국 썩어문드러질 것이란 사실의 끈적함이 발목을 덮쳐올 때쯤, 자신은 이 덤불을 발로 걸어 떠나 죽음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이 시체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또 한 명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유명 모델로 살아가는 한 학년 후배, 요시카와 고즈에. 그녀 역시 동성애자이며 덤불에서 처음 마주친 하루나를 짝사랑하게 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쯤의 성적인 긴장을 간직하며 사는 소녀치곤 살인적인 스케줄과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일반인은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기도 하고요.


  스포트라이트가 꺼지면 찾아오는 공허함과 배고픔. 그녀는 상상을 초월하는 폭식을 자주 하고, 생각보다 조용하게 모든 것을 토해냅니다. 


  너무 조용하고 간결해서 처절함과는 거리가 먼 되새김질. 어쩌면 일찍이 페이와 관리에 대해, 그리고 화면과 그 속의 따가운 조명에 대해 익혔던 사회인. 어쩌면 야마다처럼 자신의 살아있음을 자꾸 되묻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야마다와 하루나


  그렇게 하루나, 야마다, 요시카와 세 명은 하나의 비밀을 공유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셋의 관계는 생각보다 건조해요.


  오히려 이 비밀 주위에서 기웃거리는 이들의 관계가 갈수록 엉키고 뜯어지며 까마득한 파멸을 가져오고, 동시에 주요 인물들은 코앞의 시체와 자신의 살아있음 사이의 빈약한 간극 앞에서 간절해지고 또 무관심해질 뿐입니다.


  야마다가 동성애자라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위장 연애하는 타지마 칸나.

  치기 어린 모습에 반했던 모습은 어디 가고 반강제 스킨십만 남은 하루나와 간논자키.

  간논자키와 바람을 피우며 문란한 삶을 사는 하루나의 친구 루미.

  A와 ?한 관계를 맺으며 B를 향한 증오심으로 살아가는 C.

  .

  .

  .

  .

  끝없이. 글로 나열하면 별것 아닌 것들 때문에 이야기는 파국으로.





II

파멸의 미성숙함



   마약과 매춘, 쾌락과 소탈함. 그 모든 것은 강가 주변에 세워진 동네에서 흘러나옵니다. 빠른 물살과 진흙 간의 경계선. 손끝이라도 집어넣으면 이제 아주 먼 곳으로 흘러가야 할 것 같은 느낌.


  결국 이 만화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문장대로,


우리가 사는 동네에는 강이 흐른다. 강은 하구와 꽤 가까워서 넓고 흐름이 정체되어 냄새가 심하다. 개발되지 않고 방치된 강변에는 미역취가 무성하게 자랐고, 종종 고양이 시체가 굴러다닌다.  


  위에서 말했듯이 작가는 단순히 비극을 담담하게 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러한 상황을 해체하고 또 부숴 우리 앞에 늘어놓습니다.


  결국 쇳조각들이 되어버린 커터 칼과, 플라스틱 찌꺼기가 되어버린 임신 테스트기. 또한 그들이 청소년임을 알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그들의 비행을 더 그럴듯하게 만들어주죠.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나열이 단순한 곁다리 서사가 아니라, 모든 일의 발단이 되어줌을 상기시키며 이제 쇳조각과 플라스틱 찌꺼기 따위가 없다면 아무것도 만들 수 없음을 일러줍니다.   

치기 어린 광

  등장인물들의 치기 어림은 소위 성숙한 사람들의 그릇된 욕망과도 비슷해 보입니다. 심지어는 주요 등장인물 중 제일 정상적인 것 같고 무덤덤한 하루나가 더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람보단 욕망이 나이를 먹어가는 것만 같은 느낌. '너 정말 성숙하다'라는 말은 곧 '넌 어디까지 가봤냐'라는 질문인 것처럼, 또 그런 말들이 시체 속 덤불처럼 숨겨져 있을 뿐 먼 곳에 자리하지 않은 것처럼. [라떼는 말이야]의 절망 편. 

  학교 다닐 때 사고 쳐서 더 이상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선배나, 또 동성애자라고 소문이 났던 후배. 그들의 간극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파멸이란 게 나이가 있다면, 수많은 파란을 겪고 자라온 철부지가 아니던가요. 

  분명 무덤덤함에 통제받는 것이지만, 동시에 무덤덤함을 부술 수 있는 가장 모난 돌이지 않나요.      



역병이 돌던 이 거리는 우리의 짧은 영원을 알았다
우리의 짧은 영원, 우리의 사랑

우리의 사랑은 알았다
거리의 새하얗고 평평한 벽을

우리의 사랑은 알았다
침묵의 주파수를

우리의 사랑은
평지를 알았다

우리는 현장 담당자가 되었더랬다
우리는 격자를 해독하려고 했다

새로운 정렬로 위상을 바꾸기 위하여
깊은 파열을 감독하려고
흐름의 지형도를 그리려고

저 낙엽을 봐. 말라버린 분수 속에서 뒹구는 모습을
평탄한 전쟁터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모습을      


 - 작품에 등장하는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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