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 2004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 「터미널」은 뉴욕의 공항을 방문한 크라코지아 출신 남자가 모종의 사건으로 공항에 발이 묶여 체류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놀랍게도 프랑스 국제공항에서 무려 18년을 머물렀던 이란인 '카리미 나세리'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각색되었는데요.
스필버그 감독의 필모에서 비교적 무난한 작품으로 거론되지만 톰 행크스의 연기력과 바쁘게 돌아가는 생생한 공항의 모습, 눈이 오는 겨울에 마음 따뜻하게 볼 수 있는 휴머니즘이 잘 드러나 수작의 반열에 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빅터 나보스키는 가상국가 '크라코지아'에서 온 남자입니다. 볼일이 있어 방문하려던 미국땅을 코앞에 두고 뉴욕의 JFK 국제공항 - John F. Kennedy International Airport - 에 도착한 빅터.
그러나 그 사이에 크라코지아는 내전이 발발해 무정부상태나 다름없게 되어버리고, 이내 크라코지아 국민들의 여권이 정지되자 빅터는 순식간에 무국적자로 전락합니다.
가뜩이나 입국심사에 철저한 미국은 빅터의 비자를 취소시키는데요. 결국 빅터는 공항 밖으로도, 전쟁이 터져버린 크라코지아로 돌아갈 수도 없는 황당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문제가 해결되려면 일단 여권 정지가 풀려야 하기에 빅터는 언제 끝날지 모를 공항에서의 노숙을 시작합니다.
어렴풋이나마 영어를 숙지하기 위해 책자와 TV를 이용하고, 공항 이용객들이 남겨놓은 카트의 동전들을 모아 끼니를 사 먹는 등 나름 잘 지내나 싶었으나, 승진을 앞둔 공항의 관세국경보호청 책임자이자 작품의 빌런 격 캐릭터, 프랭크 딕슨의 눈에 띄어 크고 작은 어려움에 놓이게 됩니다.
무국적자가 공항에서 벗어나 미국 땅을 밟는 순간 경찰의 관할이 되기 때문에 딕슨은 '공항을 공항답게' 이용하지 않는 빅터를 쫓아내려고 합니다.
영어도 잘 못할뿐더러 순박해 보이는 빅터에게 사실상 불법입국을 교묘하게 설득하거나 빅터가 스스로 해결하던 의식주를 방해하는 등 자신의 승진을 위해 빅터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을 보이죠.
한 편 공항에는 딕슨과 빅터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빅터는 다른 공항직원들과 유대를 쌓기도 하고 손재주가 있어 보수 공사에 참여하는 등 사회적인 활동까지 해나갑니다.
결정적으로 한 러시아인, 아버지에게 줄 약을 공항에 들여왔으나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못해 약물소지로 압수, 체포될 위기에 처한 남자를 구해주면서 공항 내에서 영웅 취급을 받기도 하죠.
언제나 남을 도와주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선한 마음씨의 빅터는 승무원 아멜리아의 굽을 고쳐주며 그녀와 만나게 되고, 곧이어 사랑을 시작합니다.
애틋한 공항 직원 친구들과의 우정도, 미묘하긴 하지만 아멜리아와의 사랑도 이어가는 듯했으나 모든 것은 빅터의 '미국에 간다'는 초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흔들리기 시작하는데요.
아멜리아는 결국 빅터와 함께하지 않기를 선택하고, 고국의 소란이 끝나 임시 비자를 발급받은 빅터는 미국에 입국하기 위해 딕슨의 서명이 필요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빅터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공항이라는 공간은 특이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그곳에선 국적이 별로 의미 없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보다는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왜 이곳을 떠나는지 더 궁금해질 뿐이죠.
나라와 나라를 잇는 관문의 느낌이어서 그런 걸까요. 「터미널」에서도, 사실 빅터의 ‘뉴욕’과 ‘크라코지아’라는 키워드는 영화 중간에도 가끔씩 잊어버리곤 합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사건이자 빅터의 난관이 되는 크라코지아의 내전. 빅터가 뉴욕으로 갈 수 없는 이유는, 정확히는 공항 밖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도착지 없는 출발점은 있지만, 그 반대는 성립할 수 없으니까요. 도착한 곳이 있다면, 출발한 곳이 분명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사사건건 빅터를 내쫓기 위해 간섭하는 딕슨의, 그리고 공항의 이치는 논리적으로 틀리지 않거든요. 차가 없으면 고속도로에 오를 수 없는 것처럼요.
빅터는 자신의 출발점을 되찾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고, 그렇기에 표류합니다. 사방이 망망대해인데 어느 방향에서 온 지조차 헷갈린다면, 어떤 방향의 길도 정답이 될 수 없는 노릇입니다.
「터미널」 역시 톰 행크스 주연의 「터미널」처럼 ‘고립’이 시련의 주 무대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빅터는 여기서 조금 특별한 방법으로 고립을 해결합니다.
바로 자신이 지금 서 있고 숨 쉬고 있는 곳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 그는 돌아갈 수 없는 조국에서 쌓아온 일생의 가치로 새로운 친구와 새로운 사랑을 만납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엔딩인데요. 빅터는 공항에서 이룬 것들을 공항에 두고 가야만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크라코지아의 국가 회복으로 출발점은 명확해졌으니, 다시 뉴욕에 갈 이유도 명확해졌으니까요. 친구들의 환호와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의 도착지는 훨씬 가까워집니다.
자신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줄 뻔했던 아멜리아가
사실은 이정표였음을 깨달으며.
출발지와 도착지가 없다면 갈 수 없지만 또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만은 않은, 그저 사람이 오가는 공항. 그리고 터미널. 그렇게 재즈 뮤지션을 만나 아버지의 컬렉션을 완성하고 빅터는 새로운 도착지를 설정합니다.
집으로 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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