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참모 시절, 예하부대인 전차대대 4.2" 박격포 사격의 안전 통제관 임무를 수행했다. 혹한기 훈련과 병행하여 실시된 사격훈련이었다. 사격장 현장의 오전 8시 기온은 영하 18도, 체감온도는 영하 22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발끝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추위를 느끼며, 이 날씨 속에서 텐트에서 침낭 하나 덮고 자는 병력들의 노고가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
사격과 관련해 여단에서 지침이 하달된 상태였기에, 별문제 없이 사격 준비에 들어갔다. 242 장갑차를 정차한 후 포 방렬을 실시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포반 인원들의 모습에서 평소 얼마나 많은 훈련을 해왔는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곧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고, 긴장감이 고조된 가운데 OP(관측소)에서 관측자의 무전이 포진지로 날아왔다.
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사격 제원을 산출하고 있는 사람이 소위 계급장을 단 장교였기 때문이다. 통상은 계산병이 계산을 하고, 소대장은 지휘를 통해 전반적인 통제를 하는데, 이 부대는 지원소대장이 직접 계산을 하고 있었다.
‘소위라면 지난 6월에 부임해서 5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고 단 한 번도 사격을 해보지 않았을 텐데… 어찌 다른 이의 도움도 없이 저리도 당당하게 계산값을 산출하는가? 거기다 도판과 사격 계산기도 능숙하게 다루고 있잖은가?’
곁에 있던 전문 안전 통제관(상사)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정말 대단한 소대장입니다. 군 생활하면서 저렇게 계산 잘하는 소위는 처음 봤습니다."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곧 기준포 사격이 실시되었다.
“명중! 동제원!”
소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도 처음 하는 사격이었을 텐데 얼마나 떨렸을까? 그리고 지금 얼마나 큰 자신감을 얻었을까? 2탄 사격 준비가 한창일 때, 갑자기 응급 대기 중이던 군의관이 현장에 들어와 나를 찾았다.
" 기준포 부포수인 이등병이 손가락 감각에 이상을 호소하여 진료해보니 동상 초기 증상입니다. 더 이상 사격에 참가하면 악화될 수 있어 치료를 위해 훈련에서 제외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럼... 누가 부포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지?"
나는 군의관에서 해당 병사의 훈련 배제를 지시 후 대리 근무자를 찾았다. 순간 현장은 어수선해졌다. 부포수를 대신할 인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탄약수가 대신하기엔 숙련도가 부족했다. 그때, 누군가 외쳤다.
“제가 하겠습니다!”
지원소대장 A 소위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선 것이다. 과연 4.2" 포탄을 오늘 처음 본 그가, 부포수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의구심에 가득차 A 소위에게 물었다.
"괜찮겠나?"
"문제 없습니다. 평소 축사탄 사격 훈련 때 미리 연습해두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의 자신감 있는 목소리와 눈빛은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A 소위는 곧바로 부포수로 투입되었다. 사격 준비는 다시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고, 탄약수는 4.2" 박격포탄 한 발을 A 소위에게 인계했다. 분대장의 통제에 따라 포구장전을 실시했고, 부소대장의 사격 명령이 하달되었다.
“1번포 사격 개시!”
“꽝! 1번포 사격 이상무!”
잠시 후, OP에서 무전이 날아왔다.
“명중! 동제원!”
“와!!”
A 소위, 부소대장, 분대장, 탄약수가 서로 얼싸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정말 대단했고, 무엇보다 멋있었다. 이후 사격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고, 효력사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사격이 마무리되었다. 나는 A 소위를 불렀다.
"자네, 어쩜 그렇게 잘할 수 있나? 내가 당신을 보면서 정말 멋있고 부러웠다. 자네 같은 소위는 처음이야."
"이 모든 건 부소대장 B 상사님 덕분입니다. 지난 6월 제가 전입 와서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정말 친절하면서도 때로는 엄격하게 하나하나 가르쳐 줬습니다. 본인도 귀찮았을텐데 항상 저를 챙겨주고, 4.2" 주특기 훈련 전날이면 밤늦게까지 남아 병력들에게 교육할 내용을 함께 예습하고 토의했습니다.
훈련 중에는 제가 직접 병력을 교육할 수 있도록 기회를 배려해 주셨고, 이번 사격을 앞두고도 특훈을 받았습니다. 각 절차와 직책별 임무에 대해 '직접 해보십시오'라며 실습 중심의 숙제도 줬습니다. 오늘 그 효과를 본 것 같습니다. 모두 다 B 상사님 덕분입니다."
나는 사격 종료 후 장비를 점검 중이던 B 상사를 불렀다.
"B 상사, 당신의 역할이 정말 크고 훌륭했습니다."
"아닙니다. 저희 소대장님이 워낙 적극적이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정말 멋진 분입니다."
서로를 진심으로 챙기는 모습에서, 나는 오랜만에 고마움과 전율을 느꼈다. 부대로 복귀 후, 여단장님께 A 소위와 B 상사 관련 내용을 보고드렸더니 매우 기뻐하셨다. 그리고 연말 성과분석회의 시 우수사례로 전 부대에 전파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군단에도 관련 내용을 동일하게 보고하였고, 군단장님께서 직접 A 소위와 B 상사를 군단으로 불러 군단장 표창과 기념품을 수여하라는 지시를 주셨다.
A 소위와 B 상사가 보여준 장면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경험과 연륜을 지닌 부사관이 신임 장교의 임무 수행을 도와주는 영화가 종종 있었던 기억이 난다. 아니, 어쩌면 이는 군 내 많은 이들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P.S. 얼마 전, B 상사의 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문상을 다녀왔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더니 장례식장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중위로 만기 전역한 A 소위가 와서 묵묵히 장례를 도와주고 있었다. 전역 이후에도 이어지는 그들의 전우애를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깊은 감동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