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암

by 사선에서

군단 과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A 상사는 특유의 부지런함과 친절한 업무 태도로 주변의 칭찬을 받았고, 나 역시 그를 깊이 아꼈다. 내가 걱정하거나 고민하는 부분에 대해 유일하게 속 시원히 이야기할 수 있었던 부사관이었다.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다.


코로나19로 중단됐던 휴가가 가능해 지면서 오랜만에 가족과 캠핑을 떠난 6월의 오후였다. 해먹에 몸을 맡기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여유를 만끽하던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A상사였다.


"과장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야?"


"지난번에 위 내시경 받았던 검사 결과 나왔습니다."


"뭐래?"


"위암이랍니다."


"……."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말할 수가 없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이내 A 상사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겨우 서른 중반. 9월이면 그토록 기다리던 첫아이가 태어날 예정이었는데, 위암이라니…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부터 무너지면 안 된다.’ 나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A 상사, 내 말 잘 들어. 지금부터 다른 건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너 자신에게만 집중해. 업무는 이 시점부터 손 떼. 내가 다 처리할 테니까 넌 치료에만 전념해. 병가는 일정 맞춰서 조치할 테니 필요한 시간만 사무실에 알려줘. 마음 단단히 먹고 완쾌만 생각하자.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뭐든 다 도와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알겠지?"


"과장님… 그래도 진행 중인 업무는 마무리해야 합니다. 다음 주에 과장님과 함께 육본 출장도 다녀와야 하고요. 그것까지만 마치고 치료받겠습니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당장 치료에 집중해. 출장도 나 혼자 가면 되고, 업무는 내가 조정할 테니 신경 쓰지 마. 지금 너에게 필요한 건 치료를 위한 시간이야."


"죄송합니다. 과장님……."


나는 반드시 A 상사를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처장님께 보고했고, 업무 조정 방향과 병가 조치 사항에 대한 결심을 받았다. 출근해서 과원들에게 A 상사의 상황을 알리고 업무를 나눠서 처리하자고 양해를 구했다. 군단장님과 참모장님께도 직접 보고드렸다.


A 상사는 대학병원에서 재검을 받았고, 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 일정이 빠르게 잡혔고, 진단 2주 만에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은 잘됐고, 이제 항암치료만 잘 견디면 된다는 상황이었다. 수도병원으로 병원을 옮겨 치료를 이어갔고, 상태는 점차 호전되고 있었다.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사무실 동료 부사관이 서류를 들고 와 결재를 요청했다. 읽어보니 A 상사의 발병 경위서였다. 누가 작성했는지 묻자, A 상사가 구두로 말한 내용을 동료 B 상사가 문서로 정리했다고 했다.


‘아차, 내가 이걸 놓쳤구나.’


경위서를 작성해 군 병원에 제출해야 요양비 심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전화로 내용을 불러줘야 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질책했다. 그리고 A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건 나한테 직접 말했어야지?"


"일 못하는 것도 죄송한데, 이런 걸로까지 폐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 건 신경 쓰지 마. 내가 작성해줄게. 넌 치료에만 집중해."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내 군 생활 30년간 가장 가치 있는 그리고 성과 있는 보고서를 이때 작성해 본 것 같다. A 상사의 인사기록을 옆에 두고, A상사가 작성했던 각종 보고서들을 출력해 그의 건강에 조금이라도 힘들거나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는 요소를 찾아냈다. 이때 정말 머리가 창의적으로 돌아갔다. 나는 마치 A 상사가 된 것처럼, 그가 초급 하사 시절 GOP에서 근무했던 장면을 상상했고, 행정보급관으로 밤낮없이 뛰어다녔던 시간을 되새겼다.


보고서의 문장 하나하나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를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정리했고, 그 근거도 빠짐없이 붙였다. 동료 부사관이 가져온 문서는 2장이었지만, 내가 작성한 문서는 근거 자료를 포함해 36페이지에 달했다. 핵심 문장엔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견출지로 표시를 붙여 심사관이 내가 만든 논리를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정리된 보고서는 인사처 담당관을 통해 수도병원으로 전달하도록 하였고, 한건의 문서 누락이 없도록 몇 번이고 당부했다. 이 문서를 작성하며 나는 정말 행복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A 상사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고, 상관으로서 아픈 부하를 바라만 봐야 하는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A 상사는 국군의무사령부에 주관한 요양 심의를 통과했고, 9월에는 건강한 아들을 얻었다. 그는 지금도 지긋지긋한 항암치료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항상 웃으려 노력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웃는 A 상사와 함께 지낼 수 있어 행복하다.

keyword
이전 26화항상 전투현장을 생각했던 부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