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TC 훈련 (상편)

자만심

by 사선에서

21사단에서 근무할 때 일이다.


대대는 GOP 경계작전을 무사히 마치고 FEBA로 내려와 6개월의 정비와 훈련을 마친 후 KCTC(Korea Combat Training Center /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단) 훈련에 투입되었다. KCTC 훈련이 육군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정보도 부족했지만, 무엇보다 GOP 경계작전 간 부족했던 공격 및 방어작전에 대한 훈련량이 부족한 것이 걱정이었다. 대대장님과 중대장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열심히 준비했다.


그래도 메이커 사단인 '백두산 부대'아닌가?


사단장님과 연대장님께 출정신고를 하고 대대는 인제에 위치한 KCTC 훈련단으로 입소했다. 며칠간 부대원들은 훈련체계 및 마일즈 장비(레이저로 무기에 설치하여 사격을 해서 명중하면 상대방이 입고 있는 신호기에서 경고음과 표시창에 사망, 중상이 표시됨)를 소개받았다. 그리고 참모부는 대대장님과 함께 열심히 작전계획을 수립했다.


나는 군수과장으로서 먼저 대대 설영대를 편성 / 운영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작전계획을 수립하면서 워게임 과정에서 나는 창의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대대장님, 대대 지휘소를 빨리 설치하는 것이 방어준비에 시간을 단축하는 핵심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실시한 다른 훈련부대의 사례를 공부해 보니 대대 지휘소 설치가 지연되어 방어준비 시간도 종합이 안되고 전투지원 역시 늦어져 매우 힘들게 방어작전을 실시했다고 합니다. "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대대 지휘소를 빨리 설치하는 방안이 있나?"


"교리상에는 인사과장이 선발대로 이동해서 지휘소 위치를 선정하여 본대를 유도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부대는 인사과장이 선발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중간에 대항군이 습격을 많이 해서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제가 선발대장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그래도 중대장까지 마친 제가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인사과장도 잘하지만 아직 중위고 경험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제가 한번 잘 해보겠습니다."


"좋은 생각이야. 군수과장이 잘 준비해서 선발대로 이동, 지휘소 설치 준비를 신속히 마치기 바란다. "


나는 작전과장에게 본부중대 병력 20명을 선발대로 편성할 수 있도록 협조했다. 이후 본부중대장에게 병력 중 체력이 좋고 나름 똑똑한 인원을 20명 선발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대대 선발대 TF가 편성되었다.


다음날 방어작전이 시작되었다. 집결지에서 대대 지휘소 설치 예정 지역까지 거리가 약 20Km 정도 되었다. 나는 1/4t 1대, 5/4t 1대, 21/2t 1대에 병력을 탑승시켜 구간 전진을 하며 이동했다. 이동 간 대항군의 매복이 예상되는 지점이 보일 경우 병력이 하차해서 수색정찰을 실시했다. 나름 보병학교 고등군사반(OAC)에서 우등상을 수상했던 나는 철저하게 교리를 적용하여 수색작전을 지휘했다.


먼저 적이 은거가 예상되는 지점을 분석하여 지도상에 표시했다. 그리고 병력이 접근할 수 있는 지역과 병력이 접근하면 시간이 지연되는 지역을 구분하여 다시 표시했다. 이후 해당 지점에 도착하면 화력 수색과 병력 수색을 병행하여 실시했다. 대대 전술지휘소에 무전으로 확인점 좌표를 통보하여 대대 배속된 4.2인치 박격포와 81밀리 박격포로 화력 수색을 실시했다. 이후 근거리 능선과 같은 지역은 병력을 3개 조로 구분 투입해서, 동측 능선에 A조, 서측 능선에 B조, 나머지 C개조는 예비대로 운용했다.


1지역, 2지역, 3지역.... 차근차근 계획된 대로 수색을 하며 구간전진을 실시했다. 나를 따라오던 KCTC 훈련단의 통제관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김 대위! 현재까지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다른 부대는 통상 1지역도 통과를 못했었는데.... 준비를 아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다간 역대 최고로 빠른 시간 내 지휘소 설치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나는 계속 수색정찰을 실시해 나갔다. 아직 대항군과 직접적인 교전은 없었지만 2시간이 경과된 상태에서 한 건의 피해도 없었기에 나름 작전을 잘하고 있는 상태라고 평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화력과 병력 수색을 병행하며 6지역까지 통과했다. 이제 마지막 7지역만 통과하면 우리의 목표인 대대 지휘소 설치 예정지역에 도착이다. 대대장님은 무전으로 이렇게 말했다.


"군수과장! 아주 잘하고 있다. 이쪽 대대장 통제관이 그러는데 우리 대대가 아주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대대 지휘소를 빨리 설치하기 바람!"


대망의 7지역에 도착했다. 기존과 동일하게 원거리 화력 수색을 하면서 병력을 투입했다. 지형이 좌측 능선만 있고 우측은 낭떠러지였기에 A조만 투입했다. 그때 A조 분대장으로부터 무전이 날라왔다.


"전방 200mm, 확인점 34에 대항군으로 보이는 인원 2명이 식별됩니다! 화력 요청 바랍니다."


그때 나는 분대장의 의견을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욕망이 가득한 한 인간이었다. 내가 왜 그때 그런 생각을 했는지 훗날 엄청난 후회를 했었다.


바로 대항군을 생포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바로 무전을 했다.


"A조는 천천히 기도 비닉을 유지하면서 대항군에게 최대한 접근할 것. B조는 A조가 이동하는 방향 서측으로 돌아서 우회하여 능선으로 이동, A조가 접근하고 있는 확인점 34방향의 대항군 후미로 접근하여 대항군을 생포할 것! C조는 예비로 대기한다. KCTC 역사상 처음으로 대항군을 생포한 부대가 되는 거다! 알았나!"


잠시 후 A조는 포복으로 조금씩 이동하기 시작했고 2조는 약진으로 신속히 서측 능선에 진입했다. 나는 후면에서 대항군을 생포하는 달콤한 상상을 하면서 무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엄청난 여러발의 총 소리가 들렸다. 이것이 아군의 총소리인지 대항군의 총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기관총소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무전으로 애타게 1조와 2조 분대장을 불렀다.


"A조! B조! 상황보고하기 바람. 무슨 일이야 ?"


"치~~~~익"


"야! 김병장, 이 병장! 응답해! 무슨 일이야!"


애타게 찾는 내 무전기 소리에 응답은 없었다. 나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예비로 있던 C조와 함께 내가 직접 확인점 34로 가기로 했다.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총소리는 계속 들렸고 무전은 안되는 상태였다. 나는 언제 해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포복으로 배수로를 기어가기 시작했다. 팔꿈치와 무릎이 아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총에 맞을까 두려웠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포복자세로 돌맹이가 가득한 배수로 바닥을 기어야 했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기었다. 잔뜩 자란 갈대 숲 앞에 도달해서 나는 앞이 보일만한 곳을 찾았다. 그리고 갈대 숲을 양손으로 열고 얼굴을 내밀어 망원경을 꺼내 눈에 대던 그 순간!


"탕!"


단발의 총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내팔쪽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삐~~~~~~"


내 좌측 팔뚝에 달린 표시창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곳에는 이렇게 표시되어 있었다.


"AK 소총 사격. 사망"


잠시 후 나를 동행을 하던 통제관이 내 곁으로 와서 말했다.


"김 대위님! 대항군 저격수에 의해서 사망했습니다. 일어나서 차량 위치로 이동하세요"


나는 걸어서 차량 하자지점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검은색 침낭같은 비닐백이 보였다. 통제관이 말했다.


"김 대위님은 사망했으므로 현 시간부로 시체 보관 백으로 들어가 계십시오"


"대대 알려줘야 하는데요...."


"죽은 사람이 어떻게 무전을 합니까?"


"지금 무슨 상황인지 만 알려 주십시오. 당황스럽습니다."


"확인점 34 일대 대항군은 김 대위님 선발대를 유인하기 위한 인원들이고 그 뒤에 1개 소대 병력이 매복하고 있었습니다. 투입된 수색 병력도 다 사망했습니다. 잘하다가 왜 그렇게 했는지..... 사후검토반에서 아주 좋아할 것 같네요"


나는 시체 보관 백에 들어갔다. 무섭다는 생각보다 대대장님께 이 상황을 알려야 한다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나는 죽은 상태였다. 그리고 초조해하다가 잠들어 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통제관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김 대위님! 일어나세요. 훈련 안 합니까?"


"저.. 죽었다면서요?"


"훈련 목적 상 다시 살려드리겠습니다. "


나는 부활했다. 시계를 봤다. 3시간 정도가 흐른 상태였다. 통제관에게 물었다.


"현재 어떤 상태입니까?"


"대대에서 김 대위님을 무전으로 찾았는데 무전이 되지 않아서 많은 시간을 지체하다가 이곳에 정보과장이 왔었습니다. 제가 상황을 설명해 줬습니다. 이후 대대는 이동을 실시했고 인사과장이 설영대를 통제해서 대대 지휘소 설치 장소로 들어갔습니다. "


나는 참담했다. 무전으로 대대장님을 불렀다.


"너 어떻게 된 거야? 괜찮아? 통제관으로부터 상황 전달은 받았다. "


"죄송합니다."


이렇게 해서 대대는 훈련부대 역사상 가장 늦게 지휘소를 설치한 부대가 되었고 이로 인하여 방어준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게 되어 버렸다. 당연히 방어 작전도 엉망이 되었다.


모두 내 자만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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