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통방어
나로 인해 방어준비 시간이 줄어들어 100% 방어준비를 마치지 못하고 방어작전이 개시되었다. 대대장은 대대원 모두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 앞으로 오는 대항군은 한 명도 그냥 통과시키지 않겠다!'다는 굳은 의지로 방어작전에 만전을 기하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시간이 흘렀다. 19시에 방어작전이 시작되었는데 한 시간이 지난 20:00, 현재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야음을 틈타 대항군이 움직였던 기존 훈련부대의 사례를 기초로 우리는 더 침착히 기다리기로 했다.
21:00가 되었다.
"전방 중대! 아직 전방에 특이사항 없는가?"
작전과장이 중대장들에게 무전으로 상황을 물었다.
"없습니다. 아직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
"이상하네.... 이렇게 움직임이 없을까?"
대대장님이 혼잣말로 말했다. 작전과장은 이에 다시 무전기를 잡았다.
"각 부대는 병력들이 피곤한 상태이니 졸지 않도록 지휘자의 순찰활동을 강화하기 바람!"
그렇게 22:00, 23:00, 24:00 시간이 지나갔다. 하지만 대항군과 접촉이 전혀 없었다.
"대항군은 새벽시간을 이용해서 일거에 공격을 개시하려는 의도인가?"
대대장님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네, 통상적인 대항군의 공격작전 형태는 새벽에 집중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
"그래도 이건 너무 조용해... 전방 중대장들에게 다시 한번 전방 감시를 철저히 하라고 해. 졸지 말고.."
대대 지휘소의 구성원도 전날 새벽부터 집결지 이동과 지휘소 설치 등으로 많이 피곤해 하고 있었고 일부 인원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게다가 처음 착용하는 7kg에 해당하는 마일즈 장비는 온몸을 천근만근 짓 누르고 있어서 더욱 피곤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02:00 경이었다. 갑자기 대대 지휘소의 적막을 찢어놓는 무전기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왔다.
"여기는 전차 소대장! 지금 전차 집결지 전방 500M 지점에 정체불명의 인원 다수가 접근하고 있음이 식별되었음. 혹시 현재 이곳으로 이동하는 병력이 있는가?"
'전차 소대가 집결한 곳은 대대 후방지역인데, 그곳에 다수의 인원이라니?"
대대 지휘소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작전과장은 무전으로 현재 이동 중인 부대가 있는지 확인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현재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도대체 누가 움직인다는 것인가? 아군이 맞는가?"
대대장은 전차 소대장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현재 10여 명 이상으로 보입니다. 추가 확인을 위해 전차 제논 서치라이트를 활용해도 되겠습니까?"
당시 대대에 배속된 전차는 M48K 전차(현재는 도태됨)였다. 당시 M48K 전차에는 제논 서치라이트가 부착되어 있어 전방 원거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군 전차의 위치가 노출되는 약점이 있어서 사용 시 승인을 받도록 통제하고 있었다. 대대장은 제논 서치 라이트를 사용할 것을 승인했다. 잠시 후 다급한 전차 소대장의 무전이 들어왔다.
"대항군입니다. 인원은 1개 중대(-) 규모로 판단됩니다. 현재 우리 측에 사격하며 공격하고 있습니다. 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포수 전방 적부대! 고폭탄 1발! 준비되면 사격 개시!"
전차 소대장은 상황보고 후 전차 공격을 지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후방에서 대항군이 1개 중대 규모가 나타날 수 있나? 함께 있던 통제관에게 물었다. 통제관은 확인하시고 조치하라는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면서도 사후검토반에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보고 하고 있었다. 분명 큰일이 벌어진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얼마 후 대대장은 무전기 송수화기를 직접 잡고 전차 소대장을 찾았다.
"전차 소대장! 현재 상황이 어떤가? 정말 대항군이 맞는가?"
"------------"
"전차 소대장! 응답 바람!"
"------------"
전차 소대장과 더 이상 무전이 안되었다. 나는 직감에 전차 소대가 전멸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 역시 전일 아침에 선발대 임무수행 간 사망했을 때 무전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대장은 예비로 있던 3중대을 호출해서 전차 소대 지역으로 이동을 지시했다. 잠시 후 좌측 방어책임구역을 담당하던 1중대장으로부터 보고가 들어왔다.
"2소대 전방 적출현! 교전 중"
대대는 1중대 전방에 화력지원을 집중했다. 하지만 우측에 배치된 2중대에는 아직 적과의 접촉이 없었다. 대대는 이를 기초로 북한군 교리에 의거 2중대 전방으로 주타격이 지향될 것이라 판단했다. 통상 먼저 왼손 잽을 날리고 오른손 훅은 나중에 결정적일때 날리는 법이다. 1중대 방향은 잽이고 2중대 방향이 훅인 것이다. 그래서 2중대에 연락해 곧 대항군 주병력이 공격할 것이니 이를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때마침 전차 소대 지역으로 이동한 3중대장으로부터 상황 보고가 들어왔다.
"지금 1개 소대 규모로 예상되는 대항군과 접촉해서 교전 중!"
"1개 소대가 맞는가?"
"야간이라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고, 현재 교전하는 상태로 추측한 결과입니다."
그때 시간이 오전 03:00였다. 이해할 수 없는 대항군의 비선형 공격으로 대대 지휘소는 혼란에 빠졌다. 도대체 대대 후방에 들어온 대항군은 누구이고 어디로 침투했다는 것인가?
잠시 후 대대 지휘소 방호작전을 실시하던 본부중대장이 지휘소 텐트 내부로 뛰어 들어왔다.
"대대장님! 대대 지휘소 1지대 A 진지와 C 진지에서 교전이 발생했습니다. 진지별 3~5명 정도였고 수화를 하니 답변하지 않아서 사격을 했는데 도주했습니다. 피해는 없습니다. "
불길했다. 대항군의 침투조 일지 전차 소대를 공격한 부대일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교전과 사상자 발생이 전방이 아닌 후방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대장은 참모들과 토의 후 이렇게 지시했다.
"지금부터 대대는 전술지휘소를 구성하여 전방 중대 지역으로 이동한다. 이곳은 군수과장이 나머지 병력을 이용해 방호를 하면서 대대 전술지휘소에서 필요한 지시가 있을 때 지원하기 바란다."
대대장 및 주요 참모는 전술 지휘소를 구성해서 서측 1중대 방향으로 이동했다. 나는 본부중대장에게 기동타격대의 위치와 출동 가용상태를 확인 후 무전기에 귀를 기울이며 작전 상황을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1중대 지역에 위치한 대대전술지휘소는 1중대 전방에 화력지원을 지속하고 있었고 우측 2중대는 아직도 대항군과의 접촉이 없었으며 3중대는 1개 소대 규모의 대항군과 교전이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그때 대대 지휘소 안에 있던 통제관이 전화를 받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방어작전 종료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병력과 장비를 대대장님 통제하 한 곳에 집결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네? 아직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는데요?"
"지난밤에 대항군 2개 중대가 대대 종심까지 들어와 목표를 점령했고 현재 대대 지휘소 일대를 포위한 상태입니다."
"2개 중대 규모가 대대 종심으로 들어왔다고요? 어떻게 그런 일이..."
그 이유를 모든 훈련이 종료되고 실시된 사후검토에서 알게 되었다. KCTC 단장님이 주관하고 대대 전 병력이 참가하는 훈련 사후검토 시간에 사후검토 반장이 2중대장에게 물었다.
"2중대장님, 왜 2중대 전방으로 대항군이 오지 않았을까요?"
"저는 우리 중대가 방어준비를 잘해서 대항군 뚫을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한 명도 침투하지 못했으니까요"
"방어를 정말 잘 하셨군요?"
"네, 저는 지속적으로 진지 순찰을 다니며 병력들을 독려했고 수시로 무전으로 작전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우리 중대원은 정말 피곤하고 힘든 상황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작전을 실시했습니다. 한마디로 철통방어라고 자신합니다. "
"그렇군요. 좋습니다. 2중대장님의 말씀대로 혼신을 다한 철통방어를 하셨는지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KCTC 훈련 사후검토는 훈련 실시간 주요 장면을 야간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해서 사후검토 간 리얼하게 보여준다. 전방 화면이 바뀌며 2개의 영상화면이 전시되기 시작했다. 하나는 2중대 가장 오른쪽 끝의 방어구역을 담당한 분대 진지였다. 또 다른 화면은 해당 분대가 설치하고 감시하던 2단 3열 윤형 철조망 지대를 보여주고 있었다. 오른쪽 상단에는 녹화된 시간이 나타나고 있었으며 2개의 화면은 동시간대 촬영된 영상물이었다.
먼저 방어진지에서는 총 4명이 편성되어 있었다. 재생시간을 빠르게 돌려서 화면이 나오다가 22시부터 정상 재생으로 바뀌었다. 먼저 4명이 무엇인가 의논을 하더니 4명 중 2명이 뒤로 누웠다. 아마도 경계조와 휴식조를 구분한 것 같았다. 나머지 두 명은 야간투시경도 보고 전방 경계를 철저히 하며 무전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22:40이 되자 뒤로 누웠던 2명을 깨웠다. 그들은 몸을 일으켜 세웠고 자기들끼리 뭐라고 말을 했다. (음성은 녹음이 안됨) 아마 인계인수를 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경계를 했던 이들이 다시 뒤로 누웠다. 여기까지 본 나는 서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저렇게 하면 더 졸릴 텐데......
그리고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다 일어났던 이들 중 한 명의 고개가 앞으로 자주 떨어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흔들며 고통스러워하다가 냅다 뒤로 누워버리는 게 아닌가? 그 옆에 같이 일어났던 병사는 누워버린 병사를 보더니 무시하고 그저 앞만 주시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뒤로 누운 이가 상병이고 지키는 이가 일병이었다.)
그렇게 4명이 편성된 진지에서 3명이 잠을 자기 시작하고 일병 혼자서 졸음과 싸움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애처롭게 영상에서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졸음은 전염되는 법.....그리고 춥고 피곤한 상태... 혼자 이것저것 하던 그 일병도 얼마 지나지 않아 뒤로 누워버렸다. 그리고 모두 편히 잠들었다.
다른 화면에서는 일병 혼자 졸음을 참고 있을 때부터 대항군의 움직임이 식별되었다. 3명이 나타났고 이들은 2단 3열 윤형 철조망에 포복으로 기어 와서 절단기를 꺼내 조심스럽게 철조망을 잘라내고 있었다. 절단한 철조망을 한쪽에 밀어서 조그마한 통로를 만들고 포복으로 철조망 지대를 통과하더니 야간투시경을 꺼내 방어중인 전지 방향을 관측했다. 그리고 아주 은밀하게 조금 전에 졸기 시작한 분대의 앞까지 1명이 이동을 하더니 4명이 잠든 것을 확인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그대로 촬영되었다. (이 장면에서 나는 정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다시 철조망 지대로 조용히 이동하서 기다리고 있던 2명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이번에는 2단 3열 철조망의 폭 2m 정도를 통째로 잘라버려서 통로를 만들고 무전기로 보고하는 것이 보였다. 잠시 후 깜짝 놀랄만한 장면이 보였다. 철조망 지대 형성된 2m 통로를 통해서 2개 중대가 넘는 대항군이 유유히 걸어 들어오는 게 아닌가? 그리고 4명이 잠든 방어진지 앞으로 약 200명 정도가 되는 인원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너무도 은밀했지만 표정은 잠든 이들을 보면서 웃고 있었다. (이들이 통로를 모두 통과하자 최초 철조망 지대 통로를 개척했던 3명은 절단했던 2m 분량의 윤형철조망을 통로지점에 갖다놓은 다음 마치 한번도 절단된 적이 없는 것 처럼 위장을 해놓고 유유히 사라졌다)
화면이 정지되고 KCTC 훈련단 사후검토 반장이 말했다.
"다들 잘 보셨습니까? 2중대장님께 다시 묻겠습니다. "
나는 고개를 돌려 2중대장을 봤다. 얼굴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정말 혼신의 철통방어를 하셨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