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전투현장을 생각했던 부사관

by 사선에서

몇 해 전 만났던 특공연대의 A 부사관이 기억났다. 그를 처음 봤을 때, 그는 우람하고 건강한 체격에 전투 T셔츠(야전에서는 컴뱃 셔츠라 부른다)를 입고 있었다. 당시 같은 군단 소속이기에 자연스레 관심이 갔고, 지나가던 그를 불러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당신은 마치 유튜브에서 보는 피지컬 갤러리의 김계란 같아 보여."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실제로 제가 좋아하는 유튜버입니다. "


"운동을 좋아해서 그런 거야?"


"그것도 있지만, 김계란이 UDT 요원이었고 무싸트 회원이기도 해서 더 좋아합니다."


"당신도 특공연대 요원인데, UDT라서 동질감을 느끼는 건가?"


"아닙니다. 저는 '전투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에 아주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특수훈련을 받았거나 실제 작전에 투입된 분들의 노하우를 배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걸 준비하고 있어? 나도 관심이 많거든."


"제가 필요한 전투장구를 개인적으로 구입하고 있습니다. 어떤 장구가 실제 전투에서 효과가 있는지를 먼저 공부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가장 전투에 최적화된 장비를 선택하는 거죠. 이런 정보는 특수부대 출신들이 많이 알고 있어서, 그들과 소통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전투장구류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거야? 이미 군에서도 다양한 장비들이 보급되잖아."


"대표적으로는 방탄조끼, 방탄헬멧, 방탄 선글라스, 응급키트를 구입했습니다."


"그런 건 군에서 보급품으로 나오고 있는것 아닌가?"


"보급품의 성능도 좋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전투현장에서는, 저의 생존을 위해 장비를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보급된 방탄조끼는 무겁고 여름철에는 통기성이 떨어져 전투 효율이 낮습니다. 제가 구입한 외국산 제품은 전투 현장에서 효율성이 입증된 것으로, 불필요한 무게를 줄이고 급소 보호력은 강화했습니다. 또한 어깨에 있는 비상줄을 당기면 조끼가 즉시 해체되어 총상이나 파편상 시 신속히 벗을 수 있습니다. 반면, 우리 군 보급품은 구조상 해체가 어렵고, 지체되면 부상자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방탄헬멧도 무게를 줄이면서 방탄 성능을 높였고, 눈 앞의 돌출창이 제거되어 방탄 안경이나 야간투시경 사용 시 시야 확보가 더 좋습니다. 통신선로와 스피커도 내장되어 있어 전투능력을 높이는 데 매우 유용하죠."


"방탄 선글라스는? 군에서 자외선 차단용으로 보급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다. 하지만 보급품은 자외선 차단만 되고 방탄 기능은 없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제품은 방탄 기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사진을 보세요. 아프가니스탄에서 EOD 공격을 받은 미군 병사입니다. 눈 주변과 얼굴엔 파편이 박혔지만, 두 눈은 온전했습니다. 눈은 다치면 회복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방탄 선글라스를 사용합니다."


"응급키트는 어때?"


"현재 보급품은 간단한 지혈용 수준인데, 실전에서는 그걸로 부족합니다. 특히 화상과 동반된 출혈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군이 사용하는 응급키트를 따로 구매했습니다. 이 키트는 지혈과 화상 처치를 동시에 할 수 있고, 간단한 소규모 시술까지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죠. 모두 실전 경험에서 나온 장비들입니다. 다른 자잘한 장비들도 있지만, 그런 건 부수적인 것들입니다."


"그렇게 준비하려면 돈이 꽤 들었을 텐데?"


"수백만 원쯤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전투에서 제 생존을 확보하는 것이 곧 임무를 완수하고, 승리를 쟁취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전투력을 위해선, 그만한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럼 이런 내용을 정식으로 건의해보는 건 어때?"


"물론 건의도 했습니다. 하지만... 잘 아시잖습니까? 반영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걸요. 저는 오늘 밤 당장 전투에 투입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직접 구입한 겁니다."


"주변 지휘관이나 동료들은 뭐라고 해?"


"어떤 지휘관은 대단하다며 칭찬해 주시고, 또 어떤 분은 ‘보급품이나 잘 써라’고 하십니다. 동료들도 반응이 제각각입니다. 하지만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야 적을 한 명이라도 더 쏠 수 있죠. 그게 군인 아닙니까?"


그와의 짧은 대화를 마친 뒤, 나는 오랜 시간 생각에 잠겼다. 사실 지금까지 개인 비용으로 전투장비를 구입하는 인원은 종종 봐왔다. 그러나 이렇게 철학을 갖고 실천하는 이는 처음이었다. 나 역시 군인으로서 전투력 향상을 고민해왔지만, 정작 전투요원의 생존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A 부사관의 말처럼 “내가 먼저 살아야 적을 더 많이 사살할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는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전투의 원칙이었다.


그 후 다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무싸트에서 실시하는 개인 및 팀 전투기술 워크숍에 자비를 들여 참가하고 있다고 했다.


"부대 훈련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왜 굳이 사비를 써가며 그런 교육을 받는 거야?"라고 묻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전투에서 이기는 방법을 여러 개 습득해 놓으면, 실제 전투현장에서 제가 쓸 수 있는 대안이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적을 더 쉽게 사살할 수 있지 않겠어요?"


손자는 ‘자보이전승(自保而全勝)’이라 했고, 바둑에는 ‘아생연후 살타(我生然後殺他)’라는 격언이 있다. 자신을 먼저 보전한 후에야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A 부사관은 이를 실천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떠올릴 때마다 ‘이기기 전에 살아남는 법부터 준비하는 군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으로 대단한 부사관이다.


군인은 생존과 승리를 위해 누군가는 더 깊이 고민하고, 더 멀리 준비해야 한다. A 부사관은 그 역할을 이미 묵묵히 해내고 있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그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전투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이들을 기억해야 하고, 지휘관이라면 그들의 노력을 어떻게 조직 전체의 힘으로 확산시킬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 전투에서 이기는 조직의 조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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