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 간단 리뷰
전쟁 중이고 포로로 끌려온 이에게 이런 감정을 느낄지는 몰랐을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그의 눈을 볼 때마다 약해지는 마음.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그리고, 그와 마지막으로 대면하는 순간에 그가 나에게 건넨 볼 키스. 슬픔이 밀려 들어왔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포로로 끌려온 영국군 셀리어스 소령. 곧바로 처형을 시켜야 하는데 요노이 대위가 그에게 마음이 생겨 그를 살려 주게 한다. 그 이후로도 요노이 대위는 그에게 마음이 갖고 있으면서 마지막을 향해 간다.
사실 이 영화는 재밌진 않았다. 액션도 엉성하고 내용의 흐름도 들쭉날쭉이라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다. 요노이 대위와 셀리어스 소령의 캐릭터 말고는 다른 주연급 인물들은 말은 많이 하지만 그저 그 둘을 위한 소모폼으로 사용되는 느낌이었다.
이런 아시아인과 서양인이 같이 나오는 영화에서 동성애를 보여 주는 건 신선하긴 했다. 그걸 또 노골적으로 보여 준 게 아니라 보여 주다가 한 발 뒤로 빠지고를 반복하면서 애간장을 졸이게 만들었다.
결국, 셀리어스 소령은 죽음을 맞이하지만 요이치 대위와 마지막 볼키스를 하기까지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가슴이 달아오르고 나서 슬픔으로 가득 찼었다.
이 영화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작품이다. 이 감독의 영화는 날이 서있기도 하고 파격적이기도 하고 욕망이 가득하기도 한 이상하면서 자기 색깔이 뚜렷한 감독이다. 이전 <감각의 제국>(1976), <열정의 제국>(1978) 두 작품을 보면서 입이 안 다물어졌다. 그 정도로 파격적이고 끝까지 가는 영화들이었고, 그러면서 인간의 욕망과 본성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 작품 역시 동성애를 이렇게 색다르게 다루는 모습을 보고 약간은 파격적이라고 느껴졌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를 좋게 볼 수 있었던 건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 덕분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영화 음악을 시작한 게 이 영화부터였다. 여기서 웃긴 에피소드가 있는데, 원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그를 캐스팅했을 때는 영화 음악을 맡긴 게 아니라 배우로 캐스팅을 한 것이다. 그는 과거부터 오시마 나기사 감독을 존경했기에 바로 승낙을 하면서 그에게 이 영화 음악까지 맡기면 안 되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음악도 맡게 된 거고, 그렇게 <Merry Christmas, Mr. Lawrence>, <The Seed>, <Ride, Ride, Ride (Reprise)> 등의 명곡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영화보다 영화 음악이 더 유명하고 개인적으로도 음악 때문에 이 영화를 찾아봤었다. 그가 최근에 세상을 떠나서 그런지 요즘 부쩍 이 영화가 많이 생각난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초기작들은 이렇게 독특하거나 파격적이기보다는 비판적인 시선이 강하다는데, 언젠가 기회가 되면 초기작들을 보고 싶다.
별점 : ★★★☆
(5개 만점)
그의 음악으로 많은 위로를 받았고, 많은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긴 암투병을 끝으로 고통이 없는 그곳에서 하시고 싶은 음악들 작업하기를 바라면서, 편안히 눈을 감으세요.
그동안 좋은 음악들을 들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