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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인 Apr 06. 2023

축구에 빠졌었다. [1]

이 글을 쓴 사람의 성별은 남자입니다.

 지금은 회사 생활로 정신없을뿐더러 영화 보기, 농구 보기에 더 치중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축구를 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과거에 나는 정말 축구에 빠져있었다. 축구를 사랑했었다.



 힘들었던 학창 시절에 나의 취미는 온전히 축구를 보는 것이었다. 축구를 언제부터 좋아했냐고 물어보면 시기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학교 2학년 때쯤이었는데, 그때 당시 SBS ESPN에서 틀어 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정확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 선수를 보는 게 좋았다. 그를 보고 있으면 나까지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경기에 선발로 출전했으면, 아니면 경기에 출전했으면, 만약 경기에 출전했으면 실수하지 않고 좋은 활약을 펼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봤었다. 잉글랜드 현지 시간에 맞추다 보니 우리나라는 거의 새벽에 경기를 봐야 했음에도 그를 보기 위해 다음 날 학교를 가든, 쉬는 날이든 맨날 핸드폰 알람을 맞춰 놓고 새벽에 일어나며 경기를 봤었다. 일어나는 게 힘들고 졸렸지만 행복했었다.



 그렇게 축구에 빠졌던 나는 점점 박지성 선수의 출전 경기가 아닌 다른 팀들의 경기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 첼시의 모습도 기억이 난다. 지금이야 투헬 감독을 경질시키고 난 후 포터 감독 체제에서 정신을 못 차리며 11위로 곤두박질 치며 안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당시의 첼시는 강했다. 드록바, 램파드, 존 테리, 이바노비치, 애슐리 콜, 체흐와 같은 베테랑들이 제 역할을 해주면서 팀을 지탱했고, 로만 구단주의 소원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서라면 어떤 감독이라도 데려올 수 있는 자금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감독들이 성적이 안 나오면 가차 없이 경질시켰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금액을 부르든 데려올 수 있었다. 그런 첼시는 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었고, 결국 디 마테오 임시 감독이 로만 구단주의 소원을 이뤄내는 극적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했었다.



 당시 아스날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와 더불어 강한 팀에 속했다. 벵거 감독은 자신의 철학이 강했던 감독이고, 그 시스템에 많은 선수들이 거쳐 갔다. 하지만 우승컵과는 거리가 멀었고, 특히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더욱 거리가 멀었었다. 그래도 벵거 감독은 꾸준히 자신의 철학에 걸맞은 축구를 선보였었다. 그 축구를 잘 이해했던 선수가 아마 파브레가스, 산티 카솔라, 외질, 로시츠키 정도가 아닐까 싶다. 모두 미드필더 출신들이고, 패스의 중요도가 높았던 축구인 만큼 볼 간수를 잘하고 창의적인 패스를 할 수 있던 선수들이었다. 이들 덕분에 그래도 FA 컵 두 번의 우승을 챙길 수 있었다.



 박지성 선수가 뛰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좀 더 얘기하면, 당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팀이다. 박지성 선수가 있기도 했었지만 퍼거슨 감독의 지휘 아래 그들의 축구는 거의 환상적이었다. 앞에 루니와 베르바토프가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던 공격수가 있었고, 미드필더에는 긱스, 스콜스, 캐릭, 나니 등의 볼 잘 차고 활동량 넓고 드리블 능력이 좋았던 선수들이 있었고, 수비진에는 퍼디난드, 비디치, 에브라, 발렌시아 등의 철의 포백 라인이 형성되어 마지막 반 데 사르 키퍼가 골문을 단단히 지키고 있어 흠잡을 데가 없는 팀이었다. 실제로 항상 리그 1위 경쟁을 하고 있었고, 많은 리그 우승, FA 컵 포함 많은 우승을 일궈냈다. 어린 내가 봤던 당시 바르셀로나와 더불어 최고의 팀이었다.



 하루하루 힘들었지만 이런 축구를 볼 수 있어 맨날은 아니지만 다음 날을 기대하며 기다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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