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트 맥주 펍에서 어떤 라거를 팔아야 할까?

라거 맥주 이야기

by 정빈

한 때 크래프트 맥주 전문점에서는 라거 맥주를 취급하지 않는 문화가 있었다. 지난 「곳간 필스」의 글에서 다룬 것처럼, 크래프트 맥주집에서 라거는 '크래프트' 하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이유로 인해 오늘날 대부분의 크래프트 양조장에서는 라거를 양조하고 있으며, 자연스레 크래프트 펍에서도 라거를 취급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양조장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라거를 판매하면 그만이지만, 크래프트 펍에게는 수많은 선택지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크래프트 양조장의 라거는 비싸고, 일관되지 못하면서 특별하지 않고 맛이 없는 경우도 있다보니 크래프트 펍들은 본인 펍의 얼굴과도 같은, 라거 맥주를 선택하는데에 있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나 역시 펍을 운영 할 때 같은 고민을 했었는데, 오늘은 크래프트 펍과 라거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이천에서 펍을 처음 오픈할 당시 나의 꿈은 언제나 1번 탭에 '카스'를 태핑하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카스를 그리 싫어하지 않았고, 흔히 맥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가진 '카스나 테라는 질 떨어지는 맥주'라는 인식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맥주 덕후의 세계에서 극단적 위치에 있는 내가 운영하는 펍의 첫 번째 탭에 카스가 있다는 건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덕분인지 방문한 맥주 마니아들은 이를 마치 '웰컴 드링크'처럼 소비해 주었다.


하지만 뜻밖의 문제가 있었다. 맥주에 관심이 없는 일반 손님들은 오히려 "어딜 가도 마실 수 있는 카스를 굳이 여기서 마실 필요가 있나?"라고 반응했다. 그들은 카스는 싫지만, 향이 강하거나 쓴 맥주 또한 원하지 않았다. 결국 드릴 맥주는 카스밖에 없었고, 손님들은 메뉴판만 보며 고민하다 "다음에 또 올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는 오지 않았다.


결국 초기의 계획을 포기하고 크래프트 양조장의 라거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장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크래프트 라거는 단발적인 출시가 많았으며, 가격도 높고 품질도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아 만족스러운 선택이 어려웠다. 그런 고민 끝에 결국 선택한 것이 바로 '일본 대기업의 라거'였다.


일본 라거는 크래프트 펍에서 판매하기에 여러모로 유리했다. 첫째, 대중적 인식이 좋고, 둘째, '일본 생맥주'라는 환상 덕분에 약간 높은 가격도 용인되었으며, 셋째, 신선한 케그가 꾸준히 유통되고, 넷째, 가격 또한 합리적인 수준이었다. 비단 나만 이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였는지 다른 펍에서도 비슷하게 일본 라거를 취급하기 시작했고, 이 유행은 지금까지 이어져와 여전히 적지 않은 펍의 1번 탭은 일본 대기업 라거가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이런 경험을 겪으며 내가 을를에서 양조장을 가동하자마자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라거를 만드는 것이었다. 목표는 단순했다, 내가 펍을 하며 느낀 고통(?)을 분명 다른 점주분들도 느끼고 계실 것이라 생각했고, 그 문제를 내가 해결해보고 싶었다. 거기서 이어지는 스토리는 지난 곳간 필스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조금 더 설명되어 있기에 여기서는 쉽게 요약하자면 그렇게 꾸준히 라거를 깎고 깎아내었지만, 내 목표를 이루는 것에는 실패했다.


왜냐하면 결국 내가 갈증을 느꼈던 그 조건을 내가 만든 라거조차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맛이야 최대한 타협하지 않는 것이 목표였기에 3번 배치쯤부터는 궤도에 올랐지만, 다음과 같은 조건들은 도저히 만족 할 수 없었다.


1. 접근성 - 3개월이라는 긴 양조 시간으로 인해 수급이 어려웠다. 배치가 끝나면 다음 배치를 기다려야 하기에 솔드아웃 상황이 빈번했다.


2. 반복성 - 아직 레서피가 완전히 고정되지 않아 매 배치마다 약간씩 맛과 특징이 달라졌다. 이것은 소비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3. 가격 - 그리고 무엇보다 결국 점주분들이 만족할 수 있는 가격을 제시하지 못했다. 우리가 한 2,000L 발효조가 있었다면 얘기가 달랐겠지만, 바이어만 몰트, 액상 효모를 써서 양조한 뒤 3개월동안 탱크를 점유하고 있는 맥주를 10만원 언더로는 도저히 견적이 나올 수 없었고, 결국 웬만한 저렴한 수입 케그와 맞먹는 가격대로 올라가게 되었다.


접근성 문제는 좀 더 나은 생산 스케줄링으로 해결될 수 있겠지만, 반복성과 가격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이 요원하다. 다행인 점은 퀄리티는 충분히 인정받아 코어 팬층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조차도 곳간 필스의 맛이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황을 보면, 꾸준히 공급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 생각된다.


최근 국내 라거 시장을 보면 내가 펍을 운영했던 몇 년 전과 비교해도 품질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펍들이 국산 크래프트 라거를 메인으로 사용하기에는 망설이고 있다. 현재 시장 상황에서 국산 라거는 가격 면에서는 대기업 라거와, 이미지 면에서는 일본 라거와, 품질 면에서는 해외 고급 크래프트 라거와 경쟁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내 양조장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설득력 있는 라거'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작은 규모의 양조장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에, 맛의 완성도를 극한까지 높이고, 매력적인 브랜드 스토리로 소비자를 설득해야 한다.




라거는 어쩌면 가장 쉽고도 어려운 맥주다. 맥주를 처음 마시는 사람부터 맥주 마니아까지 모두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하기에 부담은 크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크래프트 양조장의 진정한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다. 결국 크래프트 맥주 펍에서 진정으로 팔아야 하는 라거는, 양조자가 자신의 신념을 걸고 지속 가능하게 양조한, 누구에게든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라거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크래프트 씬이 지향해야 할 '진짜 크래프트 라거'의 모습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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