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 2025/06/30
브루어리 을를의 거래처 중 하나인 '댕크야드'는 하남시에 위치한 펍으로 크래프트 맥주와 함께 음악을 메인으로 내세운 곳이다. 아무래도 조용히 맥주를 홀짝이며 홉이나 몰트 얘기 하기를 좋아하는 내가 처음부터 관심을 가질만한 곳은 아니지만 납품을 하게되며 알게 되었고, 이후 대표님이 몇 번 다녀오시더니 '맥주 행사에 나갑시다!' 라는 얘기를 우리 양조팀에게 하셨다.
맥주 행사의 이름은 '홉스 유나이티드'. 댕크야드의 주최로 우리 을를 뿐만 아니라 제주도의 탐라 에일, 강릉의 버드나무, 수원의 펀더멘탈 브루잉과 모여 맥주와 음악, 나아가 새로운 경험을 즐길 수 있는 컨셉의 행사였다.
행사용 맥주는 다 같이 콜라보레이션하여 만들고, 각자 세 개의 맥주를 챙겨 총 13개(3 + 3 + 3 + 1)의 맥주를 서빙하기로 계획했기에 콜라보레이션 맥주를 다 같이 양조하고(비록 나와 진형님은 선약으로 인해 양조에 참여하진 못 했지만) 을를에서는 매번 그렇듯 행사에 맞춰 새로운 맥주를 출시하기로 계획하였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니 금새 행사일이 다가왔고, 그렇게 우리는 아침 일찍 행사 장소인 수원의 펀더멘탈 브루잉으로 떠났다.
펀더멘탈 브루잉은 수원 영통에 위치한 양조장으로, 과거 8년간 영통에 살았기에 자주는 아니더라도 분기에 한 번씩은 방문했던 양조장이다. 그 당시에는 그저 맥주 마니아, 그리고 학생으로 맥주를 즐기는 입장이었으나 거의 5년만에 방문한 영통역은 감회가 새로웠다. 수많은 추억들과 기억이 담긴 곳에 다시 방문하니 뭐라 이루 말 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아침 10시 정도에 행사장에 도착하였다. 펀더멘탈 브루잉 역시 마찬가지로 이천으로 넘어온 뒤로는 가지 못했었는데, 기억을 되돌아보니 을를의 첫 회의가 이 펀더멘탈 브루잉에서 이루어졌었다. 당시 내가 영통에 살았기에 학생인 나를 배려해주시기 위해 대표님과 이사님이 수원으로 와 어떤 프로젝트를 하시고 싶으셨는지 나에게 얘기해주셨고, 이후 내가 팀원으로 진형님을 선택(?)했을때도 진형님을 수원으로 불러 맥주를 마시며 우리의 계획에 대해 말씀드렸었다. 그런 장소에서 이제는 내가 만든 맥주를 들고 와 맥주를 서빙 한다는게 부끄럽지만, 정말 뿌듯하고 감격스러웠다.
맥주의 진열을 끝마치고, 약간의 준비를 도와드리고 있다보니 금새 12시가 되어 첫 번째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하셨다. 진형님과 같이 맥주 행사를 하면 보통 진형님은 서빙 담당, 나는 밍글링 담당을 맡는다. 쉽게 얘기하자면 진형님은 일 담당, 나는 놀기 담당이지만 우리같은 극I들에게는 손님들과 술 마시고 노는 것도 분명 (즐겁지만) 일의 일환이기에 진형님은 이를 이해해주신다.
초반에는 손님이 적어서 여유로우면서도 손님들이 너무 적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으나 3시쯤 되기 시작하니 펀더멘탈의 넓은 공간이 손님들로 차기 시작했다. 놀라웠던 점은 수많은 업계 종사자분들이 방문하신 것으로 이 중 많은 분들은 참가자 중 한 분인 탐라 에일의 창수 양조사님 덕분일 것이다. 단순히 발이 넓으신 것을 넘어 수많은 분들과 이런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계신 것이 그저 감탄스러우면서, 덕분에 나도 알고 지내던 분들의 얼굴을 간만에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정신없는 첫 날이 지나고 두 번째 날에는 바 안으로 들어가 조금 더 바 전반의 운영을 도왔다(= 잡일을 맡았다). 첫 날의 피드백 중 맥주 설명이 부족해서 아쉬웠다는 얘기가 있어서 이를 좀 더 신경쓰기 위해 맥주가 나갈 때 마다 설명을 한 마디라도 더 덧붙였고, 주기적으로 손님들에게 다가가 테이블을 치워드리며 맥주의 감상에 대해 물어보고, 설명을 도와드리기도 했다. 모든 피드백들이 옳은 얘기가 아닐 수는 있지만 나 역시 브루어가 참가하는 행사는 브루어와 얘기 할 수 있는 부분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하기에 첫 날은 이런 부분을 너무 못 살리고, 지인 분들과만 얘기 했던 것 같아 조금 부끄럽고 죄송스럽기도 하여 두 번째 날에는 조금 더 안 하던 짓을 하며 노력했던 것 같다.
아쉽게도 이천행 막차가 일찍 끊겨 마감을 도와드리지 못하고 이른 저녁에 먼저 들어오게 되었고, 집에 와 잠시 숨을 돌리며 이렇게 감상을 정리하며 글을 쓰고 있다.
보통 맥주 행사가 있으면 주도적으로 많이 준비하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내가 평소 참가하던 행사와는 성격도 많이 달랐고, 참가사의 일원의 직원이라는 작은 퍼즐 조각으로 참가하는 것인 만큼 준비해주신 판 위에서 할 일을 하는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댕크야드와 다른 양조장들에서 너무 많이 준비를 해주셔서 편하고 즐겁게 행사를 돕고 올 수 있었다.
나도 언젠가 이런 재미있는 맥주 행사를 열고 싶은데, 아직은 경험과 지식이 많이 부족해 쉽지 않다. 더 많이 배우고 공부한다면 언젠가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날이 온다면 정말 모두가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오늘같은 행사를 주최하고 싶다.
행사를 준비해주신 댕크야드 사장님, 팀원들, 공간을 내주신 펀더멘탈 대표님과 함께 일한 팀원들, 탐라 에일, 버드나무의 팀원들, 그리고 진형님까지 모두가 너무 고생하셨고, 혹시라도 행사에 들러 맥주를 즐겨주셨다면 너무 감사하고 다음에는 더욱 더 즐거운 행사와 맥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