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트 맥주 마니아는 왜 갑자기 라거를 빚게 되었나

명품맥덕의 맥주 양조 수첩 : Batch 2 - 곳간 필스

by 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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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크래프트 맥주를 마셨던 때, 당시 크래프트 맥주 씬에는 하나의 암묵적인 금기가 존재했다. 바로 라거 맥주는 만들지도, 마시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물론 약간의 과장이 섞여있긴 하다). 이런 금기가 생긴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크래프트 맥주 자체가 애초에 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된 문화였기 때문일 것이다.


1933년, 영원할 것 같았던 14년간의 금주령이 끝나면서 미국에서는 다시 양조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금주령 직전에 800개가 넘었던 양조장들은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고, 살아남은 소수의 양조장들마저 시간이 흐르며 다른 양조장에 인수되며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1970년이 되자 미국 전체에 양조장은 100개도 남지 않았고, 그들이 생산하던 맥주는 오늘날 '미국식 부가물 라거(American Adjunct Lager)'라 불리는 획일적인 맛의 맥주뿐이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장인 음식(Artisanal Food) 붐이 일어나고 있었다. 큰 공장에서 대규모로 생산된 패스트푸드 대신 장인들이 손수 만든 슬로우푸드를 즐기자는 흐름이었고, 이런 관심은 자연스레 맥주로도 이어졌다. 소비자들은 천편일률적인 대기업 라거가 아닌 특별하고 전통적인 맛을 원하게 되었고, 몇몇 도전자들은 조상들이 고국에서 만들었던 특별한 에일들을 미국식으로 재해석하여 내놓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크래프트 맥주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크래프트 맥주가 가장 먼저 추구했던 가치는 '다름과 특별함'이었다. 그렇기에 크래프트 맥주가 대기업들의 전유물과 같았던 라거 맥주를 만들지도, 마시지도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몇몇 양조장들이 외연 확장을 위해 라거를 양조하기도 했으나, 이 맥주들은 크래프트 맥주 마니아들의 관심 밖이었다.


나 역시 크래프트 맥주를 처음 접했을 때는 '향과 맛이 풍부한 에일이 잔뜩 있는데 왜 굳이 라거를 마시지?' 라는 생각을 했고, 라거를 만드는 크래프트 양조장들은 시장 논리에 굴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는 나뿐만이 아니라 당시 대부분의 맥주 마니아들이 공유했던 생각이었고, 크래프트 맥주는 이런 이유 때문에 더욱 맛과 향이 강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점차 소비자들은 과도한 맛과 강렬한 맥주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대기업들이 만드는 라거 맥주가 단순히 싸구려 맥주가 아니고, 사실은 엄청난 과학적인 배경과 최신식 설비가 뒷받침되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차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유럽 본토의 전통적인 라거들이 가진 정교함도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IPA와 스타우트, 그리고 사워만 가득하던 미국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 하나 둘씩 라거 전문 양조장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라거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꾼 계기는 미국 콜로라도 덴버의 '비어슈타트 라거하우스(Bierstadt Lagerhaus)'라는 양조장이었다. '맥주도시의 라거 전문점' 이라는 이름의 이 양조장에서 나는 라거가 얼마나 정교하고 흥미롭게 만들어질 수 있고, 이를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 깨달았고 당시 을를의 코어 라인업을 고민하던 나에게 이는 큰 충격이었다. 그들의 라거는 마니아층도 만족시킬 만큼 뛰어난 품질을 가졌으며, 맛 외에도 서빙 방식과 분위기 등 모든 요소를 통해 그 특별함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런 종합적인 '서사'에 감명을 받은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당시 개발 중이던 을를의 라거 레서피를 완전히 폐기했다. '히비스커스 라거(가제)'라는 이름의 이 맥주는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붉은 색상이었지만 맛은 평범하고 사업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맥주였다. 그 맥주를 디자인하던 당시에는 그저 맥주 비관심층들을 위한 '적당한 맥주'를 만들 생각 뿐이었지만, 미국에서 진정으로 잘 만들어진 라거를 경험한 뒤, 나는 좀 더 특별한 것을 만들고 싶었다.


이후 나는 카스부터 시작해 눈에 보이는 라거라는 라거는 마시기 시작했다. 어떤 펍에 가더라도 라거 맥주를 먼저 주문해 목을 축였고(첫 잔으로 라거를 먼저 마시는 습관은 이 때 생겼다) 관심있던 라거들을 직구하여 주기적으로 마셔보며 맛의 기준을 세웠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깨달은 것은 너무나 단순하지만 중요한 사실이었다. 바로 "라거도 다르다"는 것.


라거는 단순히 가벼운 맥주가 아니라, 쓴맛의 차이부터 맥아의 고소함, 발효 특성, 산도, 신선도까지 수많은 디테일이 존재했다. 이에 민감해지자 라거를 마실 때도 나만의 까다로운 기준이 생겼다.


대기업 라거들은 홉의 존재가 너무 약해 구수한 맥아의 뉘앙스와 발효취가 튀었고, 그 중에서는 가장 좋아했던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와 필스너 우르켈은 국내 수입분은 대부분 홉이 열화되어 밸런스가 단맛 쪽으로 기울어 여러 잔 마시기 힘들었다. 국내 크래프트 라거들은 '필스너' 라는 이름을 달고 있음에도 향은 극대화시키고 쓴맛은 줄여 어설픈 밸런스가 오히려 마음에 안 들었고, 독일에서 수입된 유명한 필스너들은 피크를 지나 산화취가 느껴졌으며, 미국에서 수입되는 유명한 라거들은 맛은 괜찮았으나 너무 비쌌다.


이런 과정 끝에 내가 을를에서 만들고 싶은 라거의 모습이 명확해졌다. 바로 내가 마시고 싶은 라거였다. 진형님과 함께 을를의 전신이었던 '곳간'에서 라거 레서피를 다시 개발했고, 그렇게 탄생한 맥주는 100%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우리가 원했던 맛의 요소들을 담았다. 그래서 맥주의 이름을 '곳간 필스'로 정하고, 양조할 때 지켜야 할 원칙들을 정했다.


1. 최상급의 재료만 사용 할 것
2. 최소 8주 이상의 숙성 기간을 거칠 것
3. 우리가 마시고 취할 수 있을 것


이 기준을 정한 이유는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거 타입의 맥주를 우리도 만들지만,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재료비를 절감하면 이익을 늘릴 수 있어도, 그런 고민에서 벗어난 맥주가 되길 바랬으며 맥주를 만들기 시작하고 기준을 세우면 현실적인 문제의 고려가 들어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아 일부러 오픈 전 홈브루어의, 아마추어의 마음으로 기준을 세웠던 것이다.


오픈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곳간 필스는 네 번 양조되었고 최근 '곳간 헬레스'라는 바리에이션까지 출시하여 한 달 만에 한 배치를 모두 판매했다. 물론 빠른 판매의 이유는 높은 품질보다는 소비자가 원하는 드링커블한 라거였기 때문이겠지만, 언제나 우리의 곳간 시리즈에는 양조팀의 진심과 자부심이 담겨있다. 바깥에서 맥주를 마시다가도 가끔 '우리 곳간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양조사로서의 짜릿한 기쁨을 느끼곤 한다.


돌이켜보면 라거에 대한 인식을 바꾼 과정은, 내가 양조사로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제 나는 맥주를 만드는 과정이 단지 시장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맛과 철학을 담는 일임을 명확히 깨닫고 있다. 앞으로도 이 철학을 잃지 않고, 내가 좋아하고 마시고 싶은 맥주를 계속해서 빚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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